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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Apr 23. 2019

'환자경험 평가'를 알고 계세요? <1>

저는 막연히 거부하고 싶었습니다만,

'환자경험 평가'의 기억


'환자경험 평가'라는 단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다. 이는 바야흐로 내가 평가 대상이던 시절서부터 시작되었다. 2018년도,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환자경험 평가가 실시되었을 때 나는 종양내과에서 암환자를 간호하는 중간 연차 간호사였다. 내가 간호하는 환자들 중에서도 누군가가 '평가자'로 무작위 추출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극도로 부담스러웠다. 퇴원한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간호 서비스를 포함한 각종 설문 문항을 통해 입원기간 동안의 경험을 평가한다니. 솔직히 그때, 반항심도 살짝 들었다.


Photo by Paul Hanaoka on Unsplas


평가 그런 거 없어도 힘들어 죽겠는데, 평가까지 하겠다뇨!


특히, '환자 경험 평가' 실시 항목을 살펴보면 간호사와 관련된 항목이 다수이다.

출처 :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18.08


물론, 환자와의 접점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의료진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이 말은 즉슨, 간호사가 잘못하면 평가 점수도 꽝이라는 말과 다름없지 않던가. 평가당할 항목이 많았다. 환자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며, 환자의 호소에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적극적으로 처리하려고 노력하는 것. 나아가 투약, 검사, 처치 관련 이유와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통증 조절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질환에 대해서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는 것 등등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챙겨야 했다. 나와 동료 간호사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간호를 언제나 모든 환자에게 제공할 수 없는 현실 또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간호하는 모든 환자에게 '퍼펙트'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개인적인 욕심'이라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퍼펙트를 받을 수 있는'이란 말은 그 시절, 내가 '환자경험'과 '환자만족'의 개념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기에 쓴 표현이다) 때문에 '적당한' 수준을 찾아 모든 환자가 적당히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간호를 제공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란 생각을 했다. 특히나, '환자 경험 평가'가 N극이라면 S극이 되어 저 멀리 밀어내고 싶었던 반항심은, 평가의 목적과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더 심했던 것 같다.  


평가의 목적을 올바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런 실행 차원의 논의 못지않게
가치와 이론적 차원의 논의도 중요하다.

_ 『환자경험 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중에서 *


그랬다. 어느 누구도 '환자 경험'에 대한 개념과 '환자 경험 평가'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전체 인계 시간에, 몇일부터 몇일까지 입원한 환자들은 '환자 경험 평가' 대상이니 간호를 '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꼈던 기억만 난다. 물론 병원 내에서 '환자경험 평가'를 대비하여 전체 교육이 이루어졌을 테지만, 교육에 참석하지 못한 사원들에게까지 전달 교육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오직, 'How'가 중요했다. 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크리스트를 함께 읽으며 철저하게 공유했다. 예를 들어, '신체노출 등 수치감 관련 배려' 항목에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평소엔 말없이 자연스럽게 커튼을 치고 처치를 했더라도 "커튼 치겠습니다."라는 말을 함께 함으로써 환자 분들에게 '아, 이 의료진이 나를 배려하는구나.'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공유했다.


어쩌면 이런저런 이유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내 심리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간호사 1인분의 몫을 하는 것이 여전히 버겁게 느끼고 있었고 더 아찔했던 것은 연차가 쌓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깨우쳤다는 것이다.


간호사 경험은 누가 평가 안 해주나요?
 환자 경험을 위해 눈 딱 감고 나를 더 쥐어 짜내야 하는 걸까요.
Photo by Eric Han on Unsplash



도대체 '환자경험'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내게 거부감을 일으켰던 '환자경험'이라는 단어가 의료진이 아니라면 더욱이나 생소할 수 있다. 나 또한,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환자가 병원에서 경험하는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 뿐. 우연한 기회로 듣게 된 환자경험 관리 전략과정(헬스와이즈)을 통해 처음으로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고, 강의 내용과 공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환자경험'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환자 경험은 [               ]이다.



[       ] 안에 어떤 단어를 채워야 할까.

보통 공감, 역지사지, 만남, 주관적, 병원평가, 희로애락, 기본, 배려, 소통, 만족감 등등의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환자 경험’보다 익숙한 단어인 '고객 경험'의 뜻을 찾아보았다.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이란 제품의 구매 및 사용과 관련하여 고객이 기업과의 모든 접점에서 갖게 되는 접촉 및 상호작용이다. 여기에서, '고객'을 '환자'로 치환해보면 어떨까. 환자경험이란 병원 진료 및 입퇴원과 관련하여 환자가 병원과의 모든 접점에서 갖게 되는 접촉 및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병원과 환자 간의 접촉이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모든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환자 경험이란?

1. 병원을 선택하는 이유에 영향을 미친다.
2. 병원을 검색하거나 알아보는 과정부터 병원 방문 전 후, 전 과정에 형성된다.
3. 환자 경험은 환자 욕구를 기반으로 판단된다.
4. 환자의 경험은 진료 내용 이외에도 관련된 모든 요소에서 다양한 차원으로 인지된다.
5. 환자 경험은 우리병원의 환자의 특성에 따라 디자인되어야 한다.  

_ 제6기 환자경험 관리 전략과정(헬스와이즈)중에서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추가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환자만족''환자경험'의 차이이다. 기업이 고객만족도 조사를 하는 것처럼, 환자에게 의료서비스의 만족을 묻는 환자 만족도 조사는 이미 각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체 왜 '환자 경험 평가'라는 새로운 평가를 시행하는 걸까. '환자만족'과 '환자경험'은 어떻게 다른 걸까?


환자경험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8)


보다 쉽게 각각의 질문을 가지고 비교해보았다.

"입원 중 의료 서비스에 만족하셨나요?"와 "입원 중에 회진 시간 정보를 제공받으셨나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질문을 생각하며 아래의 발췌 글을 읽어보자. ‘환자만족'과 '환자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환자만족'은 의료의 질 평가 지표 중 과정(process) 지표보다는 결과(outcome) 지표의 성격이 더 강하다.

측정 면에서 진료 과정의 다른 요인과 개인 특성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활용 면에서도 구체적인 진단과 실행 전략 수립에 제한적인 효과를 갖는다. 또한, 국민 대중과 환자들 역시 환자만족의 향상을 현 단계 우선 목표로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환자만족 접근법은 현장 의료인의 진심 어린 동의를 확보하는 데 있어서도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_ 환자경험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8)
'환자경험' 접근법은 환자에게 중요한 대인적, 환경적 요소를 최적의 최저선(optimal minimum)에서 추출하고 그 요소의 실행 정도에 관한 관자의 경험이라는 과정(process)에 집중하는 접근법이다.
즉, 만족보다는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묻는다.

환자경험 평가 도구는 마케팅 관점의 '만족'에 관련된 문항보다는 오히려 좁은 의미의 의료적 성격이 강한 (회진 시간 준수 및 정보 제공, 의사와 이야기할 기회, 설명, 함께하는 의사결정)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구체적 문제 영역을 진단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_환자경험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8)

                             


그렇다면, '환자 경험 평가'를 굳이 왜 해야 하는 걸까?


실제 OECD는 한국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환자들이 자신의 진료 경험을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것을 권고한 바 있다.(OECD, 2012)

 

<제1차 환자경험 평가 주요 내용>에 대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환자 경험 평가'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의료서비스 영역에서 환자의 의견과 가치가 존중되고
환자중심의 의료문화 확산과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 질 향상



한마디로 말하자면, ' * 환자중심 의료문화'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이런 문화를 조성해나가기 위해서는 '환자 경험 평가'를 통한 지속적인 자료 수집과 더불어 자료 분석을 통해 개선점을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 환자중심 의료문화 : 환자의 요구, 필요, 선호가 반영된 의사결정과 진료에 의사결정 또는 참여할 때 필요한 교육과 지원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진, 환자 사이의 파트너십이 확립된 보건의료(WHO, 2001)

  

여기에 또 하나의 의의를 더하자면, '환자경험'을 평가하는 '측정' 그 자체에도 있다고 한다.

의료의 질에 관한 금언 중의 하나는 ‘측정 없이는 향상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측정은 모든 과학적 접근의 첫걸음이다. 측정은 비교를 가능케 하고,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경향을 포착할 수 있게 해 주며, 실험(experiment)과 시연(demonstrate)을 거쳐 중재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의 도구가 완벽할 수 없기에 더 나은 측정 도구의 개발을 자극하고, 수집된 자료는 문제의 심층 분석과 창의적 개선 시도가 꽃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_ 환자경험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8)





이처럼, 환자 중심의 의료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환자 경험 평가와 관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년이니, 얼마만큼의 과도기를 겪게 될지 가늠할 수 없다. 그저 '과도기에 접어들었구나. 그 시기의 한 복판에 우리가 서있구나.'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뿐. 사실, 지금까지 정도의 설명으로는 피평가자(피교육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한 감이 있다. 고개는 끄덕이게 만들 수 있을지언정, 마음을 흔들긴 어렵다. 환자 중심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가치 제안이 내가 처한 현실에 비해 거창해 보이기 때문이다.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어도 의료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란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평가'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심한 압박감과 약간의 반항감을 느꼈던 중간 연차 간호사의 입장에서, '환자경험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2> 부에서 덧붙이고자 한다.  



[참고 자료]

- 제6기 환자경험 관리 전략과정 교육 (헬스와이즈, 2019)

- 환자경험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8) *

- 고객 경험도 하나의 브랜드다 (LG Business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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