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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Apr 26. 2019

'환자경험 평가'를 알고 계세요? <2>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2차 환자경험 평가는,


300 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조사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여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평가와 관련하여 과도한 업무 부담을 느끼는 의료인들도 점차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과연, 인력에 비해 진료하고 간호해야 하는 환자가 많은, 현 의료 시스템의 개선 없이 과연 환자중심 의료 문화 조성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이 '환자경험 평가'가 갖는 현실적인 한계를 공유하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환자경험 평가 점수는 병원의 얼굴입니다.
여러분, 병원도 이제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환자들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십시오.
늘 경청하시고, 질환에 대한 위로와 공감을 표현하십시오. 

라는 식으로 '어떻게 환자경험 관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입식 교육 혹은 압박만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환자경험 관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환자중심성'을 지속 가능한 문화로 이끌어가긴 어려울 것이다. 지속 가능한 환자 중심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환자와의 접점에 있는 의료진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그저 방법론에 대한 전달만으로 의료진들의 지속적인 개선 의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는 먼저, '환자중심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환자경험 평가'가 갖는 현실적인 한계를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환자 중심 의료 문화 조성'이 단순히 의료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의료체계의 구조적 개선과 의료기관의 전략, 건강한 조직문화 나아가 의료인들의 의사소통 능력과 태도 개선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스스로에게 지울 뻔했던 부담감을 조금 내려두게 된다. 단순히 '너만 잘하면 돼.'가 아니라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야.'라며 정중하게 동참을 요청하는 것이다.  


더불어서 의료인의 현실적인 고충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개선 가능한 부분은 변화시키는 것,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환자를 존중할 수 있는 간호사(의료인), 환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간호사, 환자의 말에 경청하는 간호사는 어쩌면 '존중받는 혹은 존중받아본' 간호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썼다시피, 내가 '환자경험 평가'가 시행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작은 '반항심'을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나는 당시 병원에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병원에서 간호사는, 소진되고 나면 새 것으로 갈아 끼우면 되는 배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일했던 병동 특성상, 중증도가 높은 환자의 비율이 타 부서에 비해 높은 편이었고 응급 상황도 잦았다. 힘들기로 손에 꼽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홀로 감당하기 힘든 업무를 발 동동 구르며 때론 눈물을 훔치며 해내야 했고, 정신없이 일하다가 놓친 몇몇의 실수로 인한 죄책감을 안아야 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간호를 할 수 없었던 날의 공허함을 견뎌야 했다. 이는 간호사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겨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해내야만 했다. 바뀌지 않는 임상 환경은 힘든 게 당연한 곳이었고 버티는 것 또한 개인의 몫이었다. 


그렇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있던 어느 날, '환자 경험 평가'의 도입 소식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곤 평가를 잘 받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꼈으니 깊은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나 더...' 라며 말이다. 


Photo by Gilberto Olimpio on Unsplash
 (…) 간호사 1인에 해당하는 병상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부정적인 환자경험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다.

이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 간호사의 입원 환자 응대에서 존중과 예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력당 적정 환자 수, 진료 시간, 수가 수준에 관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 추구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_「환자경험 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 근거, 의의, 과제」(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7) 중에서 



그래서 반가웠던 바로 이 한마디. 


직원 경험이 환자 경험이다. 


'환자경험 관리 전략과정(헬스와이즈, 2019)'을 들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바로 이 문장이었다. 내가 간호하는 환자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욕구를 이해하며 간호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직원들은 어떤 경험을 하는지 나아가 좀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없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원하는 환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과 별개로 '직원 경험 관리'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환자경험 평가 실시 항목은 다음과 같지만, 단순히 의료인에게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의사소통 능력 개선을 요구하는 것만이 '환자경험 관리'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 적극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환자경험 평가와 관련한 다소 긴 글이었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깨달음이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피평가자의 입장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앞세우며 '환자경험 관리'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의료인의 존재 이유는 '환자'라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환자'가 될 수 있고, 병원에서도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어 한다. 말기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써낸 『죽음과 죽어감』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존중받고 이해받은 환자, 관심과 시간을 할애받은 환자는 머지않아 목소리를 낮추고 성난 요구들을 멈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한 사람의 소중한 인간이고,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활동이 허용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을 때 환자, 보호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그들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지 못한 채로 간호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심적으로 불편한지 알기 때문에 더욱 와 닿았던 부분이다. 이처럼 존중할 수 있고 또 존중받을 수 있는 의료 문화를 확립해나가기 위해선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환자를 이해하고 관심과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인력당 적정 환자수를 포함한 의료 체계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고, 의료기관 경영진의 의지와 더불어 환자와의 접점에 있는 의료인의 지속적인 노력 또한 필요하다.



'환자경험 평가'가 부디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우리나라에도 '환자 중심 의료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p.s. 이 과도기에 혹여나 어느 누군가 막중한 부담감을 느껴 심히 자책하거나 큰 상처를 받는 일도 생기지 않기를...



[참고 자료]

- 제6기 환자경험 관리 전략과정 교육 (헬스와이즈, 2019)

- 환자경험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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