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미치다] 아내가 쓴 글로 남편이 책을 만들다
부부가 함께 쓰는 다큐에세이
운?이었을까. 계기가 찾아왔다. 한 출판사 편집자가 sns를 통해 아내에게 연락을 해왔다. 책을 내보자는 이유에서였다. 사기꾼은 아니겠지 싶어 와이프와 미팅에 동행했다. 편집자와 약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그때 결심이 섰다.
당신 책 내가 만들어 줄게.
첫째, 나는 아내가 종양내과에서 말기 암 환자를 간호하는 모습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왜냐하면 아내는 말로만 듣던 나이팅게일이었기 때문이다. 환자 하나하나 진심을 담아 간호했고 그래서 자신이 간호했던 환자가 생을 떠날 때면,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그래 봐야 일하면서 만난 남인 데다가 병원은 간호사 처우에 있어 매우 열악한 곳이기에 나 같으면 눈물이 날래야 안 날 것 같았는데도, 아내는 그들에게 마음을 담아 간호했고 그들을 애도했다. 나는 꽤나 어리석은 편이어서, 아내가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진심인가 싶어 부끄럽지만 의심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자신이 간호했던 환자들이 생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주체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일 때면 아내는 글을 적곤 했다. 그런 아내의 글을 읽고 나 역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대단히 잘 쓰인 글이라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기준에 이 사람은 진짜였고 아내의 글도 그래서 진짜였다. 그러던 중 편집자를 만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편집자가 나보다 내 아내의 글을 진정성 있게 봐줄 것 같진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편집자는 우선 글만으로 아내를 판단했을 테지만, 나는 아내의 옆에서 그녀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을 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편집자는 기본적으로 책이 잘 팔려야 먹고사는 사람이다. 아내의 글에서 진정성도 물론 봤겠지만, 돈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연줄도 없고 유명인도 아닌, 잘 알지도 못하는 아내의 책을 선뜻 내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책이란 게 편집자의 의도에 맞게 잘 편집돼 잘 팔리게 되면 좋은 일인 것 맞았지만, 아내의 첫 책만큼은 내가 직접 내주고 싶었다. 고생한 아내를 위해서 남편으로서 뭔가를 해주고 싶은 내 나름의 진심 어린 마음 때문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면서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없던 사람이다. 그저 3교대 하는 직업? 주사 놓는 사람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다수의 사람들처럼 나도 병원에서 죽게 된다는 가정 하에 나를 끝까지 간호해줄 사람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옆에서 내 상태를 파악하며 돌봐주는 사람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실상을 모른 채 의사만을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는 현실에 대해 간호사의 남편으로서 조금 화가 났다. 그런 간호사들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을 느꼈고 간호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세상에 있는 그대로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었다. 이것 역시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중요한 일을 하는 간호사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일하고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 때문에 힘들어하고, 하루 12시간씩 쉬지 않고 일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내가 죽을 때 내 옷을 직접 갈아입혀주고 내 눈을 감겨주는 일을 하는 간호사, 이런 간호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책을 통해 세상에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었다.
이쯤 되니, 내 몸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대학교 시절, 막연히 부르짖던 진정성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의 구체적 의미가 이런 건 아니었을까. 머지않아 퇴사를 단행했고 곧바로 출판 편집자 과정 수업을 등록했다. 우연치 않은 계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사업? 인지는 모르겠고, 그렇게 우리의 첫 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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