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로 증명하려 했던 시간들
나는 늘 쉼 없이 살아왔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다음 계단을 향해 발을 디뎠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나를 스스로 책임지고 싶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 머무는 대신, 내 힘으로 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 하기 전에 용돈도, 등록금도 직접 마련했다.
고깃집에서 서빙을 했고, 불판을 갈았고, 레스토랑 직원으로 일했다.
과외와 학원 강사를 했고, 밤이 깊어질수록 더 밝아지는 PC방에서 관리자 일을 하기도 했다.
손이 거칠어질수록, 발바닥이 저려올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돈은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경제력은 단순한 소비의 힘이 아니라, 선택의 힘이라는 것을.
우리 집은 공무원 집안이다.
안정과 정해진 길, 예측 가능한 미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아버지는 권위적이셨고, 당신의 인생관을 따르는 자식을 원하셨다.
“공무원 해야지, 공무원!”
“아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래요.”
“그럼 넌 네가 알아서 해라.”
그 말은 선언 같기도 했고, 방치 같기도 했다.
어쩌면 독립의 허락이었는지도 모른다.
고깃집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유난히 몸이 무거웠다.
불판을 갈던 손끝에는 아직도 기름 냄새가 남아 있었다.
집 앞 골목에 다다랐을 때, 오빠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왜 그렇게 아빠 뜻을 거스르려고 그래? 그냥 편하게 살자 우리. 아빠가 원하는 인생 살면,
다 해준다잖아. 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야?”
그 말은 나를 걱정해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나보다 더 현실적이었고, 더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남이 정해준 안정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늘 ‘빨리’ 살아야 했다.
남들보다 빨리 자립해야 했고, 빨리 돈을 벌어야 했고,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다.
느리면 뒤처진다고 믿었다. 잠시 쉬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속도는 나를 멀리 데려다주었지만, 나를 들여다볼 시간은 주지 않았다는 것을.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용기였다.
잠시 멈춰 서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라고 묻는 일.
남들이 정해놓은 길이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길을 고르는 일.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속도를 줄이면 세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는 것을.
빨리 가는 삶이 강한 삶이 아니라, 오래가는 삶이 단단한 삶이라는 것을.
에필로그라는 말은 끝을 의미하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이제야 시작이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을 지나, 나는 천천히 걷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느림의 미학은 결국, 나를 잃지 않는 속도로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