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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여행] 6月의 시즈오카는 부드러운 선율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노래

by 금요일 오후반차

나의 아버지는 해외 출장이 꽤 잦았다. 어린 시절 비행기도 못 타본 사람이 많았던 8,90년대 초반에도 도쿄 홍콩 뉴욕 등 참 많이도 돌아다니셨다. 특히 일본 출장은 꽤 잦았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후지산이 배경인 엽서를 사다 주셨다. 눈 덮인 후지산, 벚꽃이 핀 후지산, 단풍으로 물든 후지산, 호수를 앞에 둔 후지산.. 어린 나에게 엽서 속 후지산은 큰 감흥이 없었다. 엽서 속에 담긴 작은 산 보단 휘황찬란한 건물과 야경이 담긴 홍콩이 멋있어 보였고 나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내가 자라 스스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생긴 시점에도 일본은 늘 후순위였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와는 정말 멀리 동떨어진 곳을 가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오지나 외딴곳을 가는 게 멋있어 보였다.


성인이 된 어느 날 우연히 후모톳바라 캠핑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거대한 후지산을 앞에 두고 밤을 보내고 별을 보고 일출을 보고 산을 마주하는 기분이 어떨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후지산이 보이는 곳에서의 캠핑은 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7월은 덥고 4월은 아직 추워.

그렇게 고르고 고르고 골라 5월 말 6월 초 나는 시즈오카 여행을 준비했다.


산은 늘 그렇듯 기후가 일정하지 않다. 후지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시즈오카도 마찬가지였다. 그 영엄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캠핑장에 도착한 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캠핑사이트가 아닌 롯지로 예약한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로..

그런데 그 비마저도 신비롭고 운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후지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후지산과 캠핑장의 풍경에 흙내음까지 더해져 이곳까지 오는 길의 노곤함 예민함은 곧 누그러들었다.


고기와 해산물 맥주까지 두둑이 먹고 난 후 빗소리를 들으며 언제 잠이 든 지도 모를 만큼 오래간만에 정말 푹 잠이 든 것 같다.


비 온 뒤 아침 풍경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전날 시원하게 내린 비 덕에 냇가에 물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흘렀고 잔디들은 촉촉이 빛났으며 하늘은 파랗게 빛났다.

아쉽게도 후지산의 전체를 볼 순 없었지만


아침 일찍 캠핑사이트에서 마셨던 신선한 우유,

상쾌한 공기, 산들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던 꽃과 풀,

거울 같은 호수에 비치던 너와 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시즈오카 하면 후지산 밑의 가장 첫 동네로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녹차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특히 5월부터는 녹차밭이 짙은 초록색으로 물들어 최고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녹차밭 위로 떠오른 후지산은 마치 일출처럼 보이기도 한다.

녹차의 성지라 불릴 만큼 시즈오카에는 차밭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유지라서 마음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 차 수확시기에는 가장 유명한 차밭인 오부치사사바 이외에도 차 잎 따기 체험이나 차 잎으로 튀김을 만들기 등의 체험을 제공하는 곳들이 많다.


차 수확시기는 총 네 번으로 4월 말에서 5월 / 6월 / 7월 중순 8월 초 / 9월 말에서 10월 초인데 녹차 축제기간인 4-5월보단 6월이 덜 혼잡하기 때문에 6월의 시즈오카를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고야만큼은 아니지만 시즈오카의 우나기 또한 유명하다.

6월은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 전 체력을 보충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래된 식당의 오픈키친에선 유리너머로 공들여 장어를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시장했지만 직원의 장어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진지 해서 기다리는 음식을 시간 조차 즐거웠다. 고단백에 훌륭한 건강식인 우나기까지 야무지게 먹고 양손에는 우나기파이(시즈오카의 명물 과자)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무척 행복했다.


시즈오카에 가면 자연을 즐기 수 있다.

자연은 늘 옳다. 스스로 자, 그러할 연. 스스로 그러하다는 말처럼 인위적이지 않은 본연의 상태를 뜻한다. 본연의 상태에선 그 누구도 불편함을 느낄 수가 없다.


6월의 시즈오카가 그렇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누구나 편안하고 행복해진다.


영엄하고 아름다운 후지산, 짙은 초록으로 넘실거리는 차밭, 스테미너를 올려줄 보양식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마치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시즈오카가 당신에게 들려줄 노래가 궁금하다면, 6월은 시즈오카로 떠나보자.


6월의 시즈오카는 부드러운 선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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