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이혼전문변호사
2013 년 여름,
“변호사님, 주말상담 가능하신가요?
제가 주말밖에 시간이 안되는데 어머니 모시고 변호사님께 상담을 꼭 가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라는 상담 전화가 왔다.
한변호사도 아이들이 두명이나 있고,
남편도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이기에 가능한 주말의 시간은 나의 가족들과 보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말상담은 원칙적으로 진행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나도 간절한 젊은 남성의 목소리에 한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시죠”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그 주 일요일 오후 2시,
작은 체구의 곱고 우아한 중년의 여성,
앞으로 어머님이라고 호칭할 사람과 훤칠한 30대 초반의 아들이 나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어머님이 한변호사에게
“변호사님, 이런 일로 찾아뵙게 되어 참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왔어요.
남편이랑 결혼한지는 50년이 다 돼가는데, 남편이 늘그막에 정신이 나갔는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저를 너무 못살게 굴어서 이혼하려고 찾아왔어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얼마전에 유방암 수술도 했어요.
남편은 자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남편이 아니고서는 힘들일이 없어요.”
라면서 푸념을 하셨다.
아들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버지가 원래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요즘 유난히 이상해졌어요.
엄마가 아프시고 하면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작은 일로도 엄마한테 화를 내시고, 엄마가 병원가는것도 뭐라고 하고...
심지어 병원비도 아까워하고... 이게 뭔가 싶다니까요.”
어머님의 남편은 대기업을 다니다가 일찌감치 퇴직하고,
유통업을 시작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남편이 기업을 다니던 시절에 어머님은 혼자서 5남매를 키우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시댁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남편 월급 중 절반 이상이 시댁의 생활비로 들어갔고,
남는 돈으로 5남매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머님은 열심히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해서 갑자기 사업을 한다고 할 때도 묵묵히 남편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남편이 처음 사업을 시작해서 일손이 부족할 때는
어머님이 직접 회사에 나가서 경리업무도 보고,
밥을 해서 직원들을 먹이기도 하고, 닥치는 대로 모든 일들을 감당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생긴 병인지 어머님은 2011년경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여서 수술을 하고, 항암도 마치고 요양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렇게 아픈 아내를 두고, 회사일을 핑계로 수시로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 집에들어올때는 어머님에게 이유없이 화를 퍼붓고,
어머님이 몰래 열어본 남편 가방에서는 비아그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어머님은 그런 남편이 너무 밉고 정이 떨어졌다. 같이 살아온 50년의 세월이 야속했다.
어머님은 이혼을 하겠다는 의사가 확고했고,
한변호사에게 이혼사건을 의뢰하면서 약정을 하고 돌아갔다.
“변호사님, 저 다른 소원도 없어요. 남은 인생 먹고 살 수 있을정도의 돈만 받고,
남편안보고 속편하게 살고싶어요.
내가 힘든 순간에 내옆에 있지 않은 저인간 너무 싫습니다”라고 했다.
황혼이혼의뢰인들의 상당수가 그렇지만,
어머님은 정말 많이 고민하고 온 기색이 역력했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건을 위임하고, 약정서를 작성했다.
한변호사는 그렇게 어머님과의 황혼이혼사건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