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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수라 Aug 01. 2023

시들어가는 것

어쩔 수 없는 외로움


작은 주방 창문으로 보는 세상이 전부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비 냄새 햇살 냄새도 딱 그만큼만 존재하면 좋겠다
세상의 근심이 딱 그만큼이면 좋겠다


휴가철이 시작되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장마가 이어지는 날씨다. 맑다가도 비를 뿌렸고 억수같이 쏟아지다가도 개었다. 너무 더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느 날 즉흥적으로 2박 3일 송도로 떠났다. 특별히 보고 싶은 것이 있기보다는 비 오는 날 보았던 송도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도로가 한산해서 한 시간 만에 송도에 도착했다. 미리 숙소를 잡고 온 것이 아니라 차를 안전한데 주차하고 핸드폰을 열었다. 성수기라 그런지 남아있는 호텔도 적었고 가격도 비쌌다. 출발하기 전에 고려하지 않은 나를 책망하며 센트럴파크 근처의 호텔로 예약했다. 햇살이 너무 따갑고 습해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방에서 전망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온다는 것은 매여있는 것들을 벗어날 수 있는 찰나의 백일몽과 같아 좋다.


사실 송도에 아무 연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정정하게 회사생활을 하시는 이모부와 주말부부로 지내는 막내 이모가 살고 있다. 장성한 두 아들 중 한 명은 얼마 전에 아들을 낳았고 한 명은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하는데 곧 결혼 예정이다. 조금 해가 누그러져 장난이나 칠 요량으로 송도 일대 사진을 찍어 이모한테 보냈다. 답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여기 왔어?’

‘누구랑?’

‘집에 와’

쉴 새 없이 문자가 왔다. 반가워하는 것이 느껴져 집으로 갈까 하다 근처로 가서 맥주 한잔하자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는 더 말라 있었다.


대기업에서 만난 이모와 이모부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났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직장을 그만둔 이모는 아이를 낳고 육아를 병행하며 집에서 부업을 했다. 하루 내 꼬박 앉아 인형 눈을 붙이고 간단한 부품을 조립하기도 하며 한 푼 두 푼 모아 통장의 잔고를 늘려나갔다. 비염이 심해져 코 풀 일이 많으면 휴지 대신 손수건을 썼고 밥솥 전기세가 아까워 냄비 밥을 했다. 일하는 만큼 알뜰하게 살림하고 아이를 키웠다. 그러나 재산도 불고 아이들도 독립할 나이가 되었을 때 몸이 하나씩 고장 났다. 십자인대가 늘어나고 팔을 얼굴 높이까지 들 수 없게 되고 앉아있다 일어나기가 힘들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웬일이야? 갑자기, 남편은?”

“그냥 답답해서 왔어. 남편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 하고.”

한낮의 더위를 날릴 만큼 차가운 맥주를 한잔하면서, 이모는 멋있다. 젊은 부부들은 재밌다. 부럽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사는 게 재미없어”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이모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여기저기 아픈 몸도 몸이지만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지겹다는 것이다. 한 번은 엄마에게 호캉스를 시켜주려고 송도에 왔을 때 막내 이모를 불러 함께 식사도 하고 보트도 타고 쇼핑도 했었다. 엄마는 오늘도 내일도 밥 안 해도 된다며 좋아했고 이모는 사는 것 같아 좋다면서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외롭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살며 결핍을 채워나가도 결국 혼자 남겨지는 외로움에는 해답이 없는 것 같다. 시끌벅적 눈코 뜰 새 없이 하루를 강탈당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햇빛을 못 봐 시들어지는 화초처럼 삶이 시들어진다. 마음이 늙는다는 것은 흐드러지게 핀 꽃이 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먹을 쥐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그 시절 이모의 눈부심이 사위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침나절에 뿌리던 비가 멈추니 해가 불쑥 올라와 축축하게 젖어있던 대지를 빠르게 말렸다. 구름 사이에 고개를 내민 찬란함이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막내 이모의 눈 부신 햇살이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아침 나는 늙음과 외로움에 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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