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3일 두번째 생일을 천명한 후 맞이한 나의 생일. 사과쥬스와 함께 한코치님께 코칭이 무엇인지를 듣고 Calling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했던 내면의 울림을 들었던 날.
2025년 6월 3일은 고객 내면의 원석의 빛을 발굴해가는 코칭으로 시작해 내 가치 기준을 마주히는 대통령 선거에 이어 “나는 왜 코치가 되려고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다시 서며 두번째 생일을 마무리한다.
나는 코치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내게 <코칭=사랑> 인 공식이 바뀌지 않는한 나는 코치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춘 코치가 설사 아니라할지라도 나에겐 <코칭=사랑>이고, 그렇기에 코치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I am a Coach’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은 없다. 원래부터 ’돕는다‘ 라는 표현이 갖는 뉘앙스가 조심스러웠다. 아니나다를까 오늘 ’rescuer syndrom’에 대한 정의와 안내를 들으며 왜 내가 ’돕는다‘라는 표현을 늘 경계를 했었는지 끄덕끄덕였다.
우린 모두 각자의 여정을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린 서로의 안내자다. 나‘만’이 너의 안내자가 아니다. 나‘만’이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하지만 나‘만’ 너와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와 너가 이룬 공명은 ‘우리’만 일으킬 수 있다. 공명은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 색깔은 분명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이면서도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하나니까. :)
내가 온 힘을 다해 힘주어 나의 존재로 , 나의 삶 전체로 뿜어내고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내가 아는 한 한 가지만 분명하다. (무의식까지는 내가 다 모르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귀하고 충분합니다. 당신의 고유한 힘은 이미 당신이 존재함으로서 세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존재해주어 고맙습니다.”
코칭 대화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힘이 무엇인지 발견해가는 보물찾기의 여정을 함께하는 놀이다. 그리고 코치의 중심은 고객이 단단히 앵커를 걸고 자신을 자유로이 탐험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나를 잘 닦아야하는 이유이며, 나의 중심이 곧 서로의 중심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큰 실패를 해보았기에 그 중심이 어디인지를 믿고 안다.
머리를 넘어서야한다. 인간의 전인성은 머리 너머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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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언어를 배우고 소통하며 성장해간다. 진화해간다. 소금기둥의 소금을 녹여 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