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오대학교 학생들의 피스모모 방문기
"당연히 어떤 문제에 내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곳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과, 그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어요. 직접 한국에 와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가깝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저는 변호사가 되고 싶은데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앞으로도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노력하고 싶어요."
지난 2월 20일, 일본 츄오대학교 학생들이 피스모모를 방문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후 처리가 한국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한국과 일본청년들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특히 뒷부분에 초점을 맞춘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에 있던 시절의 인연으로 소개를 받게 된 스터디투어였다. 피스모모의 이사이자,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의 소장으로 늘 든든히 함께 해주시는 이대훈 선생님(호칭이 너무 어색하다. 모모 내에서는 늘 대훈이라고 이름으로만 호칭을 하기 때문이다)께서 강의를 해주셨다.
강의는 학생들이 그날 방문하고 온 서대문 형무소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을 가둬놓고 고문했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대문 형무소에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한국의 청년들도 바로 같은 곳에 갇혀 비슷한 일을 당했었다고. 그런 일이 벌어진 배경은 간단하다.
우리가 외세에 의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학계에서는 또 다른 세계전쟁이라고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고 여겨지는 "한국전쟁"이 이 땅에서 벌어졌다. 벌어진 장소만 한국이었다 뿐이지, 미국과 중공군이 벌였던 전쟁으로 많은 도시와 인프라가 파괴되고 민간인이 살해당했다. 나라가 쪼개진 채 미국이 '지배'를 시작했을 때 '지배계급'이라 할 만한 사람들은 친일파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식민지이자 미국의 식민지인 이중 식민지라는 표현으로 이런 상태를 표현해 주셨다. 거기에 더해 군부 독재와 권위주의적 통치가 더해지며 오랜 시간 동안 민주화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도 했다.
츄오대학교 학생들은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다 보니 한국의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왜 일본은 '실패'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대훈은 이를 딱 갈라서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한국의 경우 우연치않게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오랫동안 쌓여온 독립운동을 해온 엘리트, 청년, 학생, 여성 등 다양한 네트워크가 계속 활발히 작동하고 있었고, 깊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결집시키는 사회운동, 아래에서부터 위로 움직였던 요소요소 등 이런 것들이 누적되며 독립운동도 민주화 운동도 꾸준히 지속적으로 노력해 100년 이상 걸려 성공시킨 것이지 어떤 한두 가지의 요인이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하셨다. 또한 일본과 한국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고 싶지 않다고도 덧붙이셨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대훈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비교분석할 때 흔히 하게 되는 실수인 것 같다. 문제를 다면적, 다층적으로 보지 못하고 표면적인 것에서 드러나는 이유만을 가지고 이래서 '성공'했다, '실패'했다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 말이다. 어떤 경우 인사이트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러니 어쩔 수 없다로 귀결되어 버리곤 하지않나. 일본에서도 일본 나름대로의 운동을 위한 토양이 계속 자라고 있을 텐데, 지금 이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처럼. 그걸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방법을 쫓다 보면 또다시 '실패'했다는 경험을 갖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은 제 추측일 뿐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이 이분법이 굉장히 강력하게 사회를 분열시키도록 작동하고 있기도 하다. 반공이라는 기치로 작동할 때도 있고, 지역 차별적인 방식으로, 또는 사회에서 소소하게는 나이로 인한 권위주의나, 성별이분법적인 태도와 같은 것들처럼 손에 다 꼽을 수도 없다.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시작을 했지만, 이것이 한국의 군국주의와 현대 사회의 큰 문제들-예를 들면 기후문제 같은-을 해결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군사주의 문화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데까지 이야기는 흘러갔다. 아덱스저항행동 편에서 다 다루지는 못했지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살인 무기를 관람시키고, 누군가를 죽이는 훈련을 멋있게 포장하여 게임처럼 연습하게 만드는 전시날이 있을 정도니까. 2시간 안에 다 다루기에 벅찬 내용이었음에도 츄오대학교 학생들이 열심히 듣고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에서 뜨거운 열의를 느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강의 안에 들어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더 많은 토론과, 더 많은 관계와 네트워크로, 조직적인 힘으로 우리가 직접 해결해 낼 수 있으리라고.
강의 중에는 시간이 짧아 다 나누지 못했으나, 강의를 듣고 있었던 츄오대학교 학생 중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에 대해서 뼈저리게 책임을 느끼고 있고, 이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역사교과서 운동을 하던 분이 있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 피스모모의 활동을 소개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내가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활동을 하다가 피스모모로 오게 되었다고 하니 정말 반가워했다. 그때 해준 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당연히 어떤 문제에 내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곳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과, 그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어요. 직접 한국에 와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가깝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저는 변호사가 되고 싶은데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앞으로도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노력하고 싶어요."
나도 가끔 정말 힘들 때 외롭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제 주변을 한 번씩 돌아보면서 짚어보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났지, 이런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해주고 있었지. 지나가듯이 했던 말 한마디, 보여줬던 감정표현 하나, 그런 것들이 꼭 그렇게 오래 남았다. 나에게 그 친구의 말이 가슴깊이 남아 언젠가의 나를 일으켜 세워줄 텐데, 츄오대 친구들에게도 나와 피스모모가 서로를 외롭게 하지 않는 든든한 존재로 남았으면 좋겠다.
*24년 5월 19일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