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피스모모 진행자 상반기 공부모임 글쓰기 ②
대학교 4학년 때, 전통이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문장을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지금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이분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굳이 나눠보자면 사람들은 살면서 익숙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한 번쯤 찾아왔거나, 찾아오지 않은 사람들로 나눠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시화의 『비판적 페다고지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역시 비슷한 맥락의 깨달음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철학이나 이념, 사조들을 배울 때 그 배경과 역사, 흐름을 배우는 이유는 명확한다. 어떤 발상이 무엇에 반대해서/혹은 어떤 흐름을 타고 나왔는지를 알면, 이 발상 역시도 절대적이고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한계점과 보완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서 비판적 페다고지가 주류 교육 패러다임에 반대하며 나왔고, 신마르크스주의와 대응하며, 탈근대주의와 페미니즘, 반인종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대충이나마 이해했다. 교육사조일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으로서도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 그 흐름과 윤곽을 대강 잡아보았다. 아직 완전히 제 것으로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에서는 문화적 요소에 관심을 집중하고, 정체성과 다자성을 강조하고, 체제의 변혁보다는 개인적 혁신에 초점을 두고, 글로벌 주의보다는 지역주의를 선호하고, 국가에 대한 불산과 시민사회의 옹호, 참여적/풀뿌리 민주주의의 강조, 반권위적 구조등으로 비판적 교수학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해 주었다.
읽으면서 명쾌하게 다음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동안 내가 어떤 지점들에 답답함을 느껴왔는지가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나는 자본주의 이외의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정리된 문장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해봤다. 글이나 말로 명확하게 설명만 못한다 뿐이지, 여기서 정리한 것처럼 더 이상 '아무런 대안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정말 강하게 사람들 사이에 뿌리내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동안 그게 너무 당연해서 뭐라 딱 꼬집어서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무대안 TINA(There is no alternative) 증후군'이라 이름 붙이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세계사회포럼의 슬로건인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라는 말은 제가 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기도 했다.
지금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인 것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텔레비전을 손으로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것을 그리면 SF라고 모두 웃었지만,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DMB가 나왔다. 지금은 아주 정보적으로 약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있다. 세상의 변화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번 공부모임의 경우에는 미리 글을 제출하지 못해서 공부모임이 끝난 뒤에 마무리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공부모임 중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상검증:더커뮤니티』라는 예능이 언급되었다. 나는 최근에 이 예능을 다 보았는데, 꼭 후기를 한번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어서 더 신이 났다. 비판점이 분명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사상적으로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을 대면시켜서 이야기를 나누게 한다는 기획이 정말 좋았다. 저는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적 페다고지, 서로 배움의 기본도 결국은 그거다. 상대가 틀렸고, 모르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믿지도 말고, 상대와 내가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말이다.
"비판적 페다고지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의 답은 '아직 모른다'이다. 이 답을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우리겠지. 과정만 강조해서는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솔직히 조금 치사한 책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충분한 사람이 모인다면 비판적 페다고지가 아니라 그 무엇이 되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 과정도 이왕이면 비판적 페다고지, 서로 배움의 방법을 통해서였으면 좋겠다. 배우려는 사람은 없고 가르치려는 사람만 있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너무 답답할 것 같기 때문이다.
*24년 5월 19일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