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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Jul 02. 2024

맑은 눈의 광인이 원래 제일 무섭다

영화 「빵과 대지를 위해」를 감상하고

나는 2007년 경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배경지식을 전혀 모른 채 이스라엘에 다녀온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남동생과 둘이 이집트와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까지, 출애굽기의 경로를 따라 이른바 성지순례를 보내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정통파 유대인들 뿐이었다. 그때 내게 그들은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통곡의 벽 근처를 이상하게 서성이는 사람들 정도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상당히 강렬한 경험을 두 가지 소개하자면:


부모님과도 떨어져 음식도 뭣도 전부 낯선 곳에서 우리 남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배앓이를 하다가, 음식점에서 고추장을(ㅋㅋ) 음식에 얹어 먹은 뒤에 일어났던 일이다. 음식점 주인이 몹시 화가 난 채로 달려와서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한참 화를 냈다. 현지 가이드도, 우리와 함께 간 가이드도 한참을 난처하게 사과를 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타나서 우리 남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남매야 이유를 알지 못하니 그냥 눈알만 도록도록 굴리고 있었는데, 결국 음식점 주인은 그 접시를 던져서 깨버렸다. 나중에 이유를 들었는데, 종교적인 이유로 승인받지 않은 것이 식기에 닿았다고 그렇게 길길이 날뛴 것이라고 했다. 나를 거기까지 보낸 부모도 한 광신도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지인에 비할 바는 못한다는 것을 좀 깨닫는 어마어마한 경험이었다.


두 번째 경험은,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동생이 캐리어를 찾기도 전에 화장실을 가버려서 캐리어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한 바퀴를 돌고 그만 도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베들레헴 근처(아마도 텔아비브?) 공항에서 였던 것 같은데, 바로 온 공항에서 경보가 울리면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바로 옆동네 가자지구에서 하루에 폭탄이 40개씩 터지고 있던 시절이라, 방치된 가방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두려움을 주는 존재라고 했다. 당연히 동생과 함께 또 뒤지게 혼이 났었다. 좀 억울했다. 옆 동네에서 폭탄이 그렇게 터지고 있는지 알게 뭐람. 그렇게 위험한 동네에 나를 보낼 건 또 뭐람.


그때의 경험과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연결 짓기까지, 정말 오랜 공백이 있었다.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로.


아마, 내가 영화「빵과 대지를 위해」에서 보게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뭔가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악의 진부성', 그냥 진부하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맞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온 그냥 평범한 사람들.




"절반을 나눠서 내가 씨를 뿌리고, 나머지 땅에 너희가 씨를 뿌리면 되잖아."

"그러니까, 내 아버지 땅인데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요."

"여기는 이스라엘 땅이잖아.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니까."

"여기는 내 아버지 땅이라니까요. 땅문서를 보여드려요?"

"나중에 메시아가 오시면 감사하게 될 거야. 나에게 땅 절반만 주면 돼."

"빵이 필요하신 거라면 빵을 드릴게요."

"아니, 나는 이 땅의 절반에 씨를 뿌릴 거야."

"무슨 기준으로 땅을 나눌 건데요? 여긴 제 아버지 땅인데요."

(반복)


「영화 빵과 대지를 위해」는 이런 식의 도돌이표 같은 대화로 시작한다. 땅의 절반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인의 행패는 얼핏 보면 상당히 점잖다. 그는 촬영을 하고 있는 베첼렘 활동가에게 이리 가까이 와서 찍으라며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자신의 것을 요구하는 듯한 당당함에 땅주인은 묻는다. "이 땅이 하느님이 당신에게 준 거라면, 내게 절반을 남겨주는 이유는 무엇이냐?"라고. 그리고 이어서 덧붙인다. "메시아가 왔을 때 이야기하자." 그러나 곧 나타난 한 무리의 이스라엘 군인들 사이에서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요구하던 젊은 남자는 기세등등하게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그의 '메시아'는 군인의 형상을 띠고 나타난 모양이다.



이 영화는 2005년부터 이스라엘 점령군과 정착민들이 일상적으로 자행해 온 폭력을 기록하기 위해 '이스라엘점령지인권을위한정보센터(B'Tselem)'에서 나눠준 카메라로 자원활동가들이 찍어낸 일상을 편집해서 만들어졌다. 이 영화가 상영된 제2회 전쟁과 여성 영화제의 리플릿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점령군과 정착민의 폭력과 팔레스타인인의 일상이 가감 없이 드러나기도 하고, 어느 순간 카메라가 깨지거나, 화면에 돌이 날아오거나 침이 날아오며 카메라가 갑자기 멈추는 등 우리도 그 폭력에 함께 '노출'된다.


일반 자원 활동가들이 찍어낸 화면들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제대로 갖춰진 앵글을 잡지 않는다. 그 대신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두려워하며 쫓아간다. 때로 물러서기도 하고 때로는 그래도 한발 용기 내어 다가서며 폭력에 맞선다. 이들을 조롱하려는 듯 이스라엘 군인들도 함께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이쪽을 찍지만, 거기에는 그다지 위협적인 힘이 없다. 끝나고 이어졌던 '씨네토크: 방어의 카메라, 분노의 몽타주'에서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가 언급한 것처럼, 폭력을 직접 응시하려는 베첼렘 활동가들의 카메라와 폭력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담기지 않은 군인들의 몸짓이 같은 무게를 지니지는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조차도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지 그런 말을 한다. 베첼렘 활동가와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꼭 동물원에 온 것 같아."라고. 그리고 실상 그 동물은 자기 자신들인 터다.


일상과 전쟁이 구분되지 않는 점령지구의 취약한 삶이란 도대체 어떨까. 그리고 이 카메라에 담겼던 그 일상조차도 지금은 파괴되어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그 땅의 삶은 도대체 어떨까. 이런 심리적 고통감에 더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화면으로 인한 멀미까지 더해져 보는 내내 구역질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고통에 어쩌면 내가 가까이 갔었다는 것, 내가 밟았던 2007년의 이스라엘 땅이 사실은 점령지였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느꼈다.


그러면서 어린이들이 끔찍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갑자기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끔찍한 것들을 지금만큼 끔찍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수성이라는 것은 때론 지식이 쌓여야 발달하기도 하니까. 무언가의 죽음을, 고통을 천진난만하거나 호기심으로 응시하던 시절이, 그런 자신을 멋있다고 생각하거나 허세를 부리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랬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울 때가 가끔 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녀왔던 이스라엘 땅에 대해서 미리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영화에서 "나는 지금 올리브 나무 옆에 있어요! 여긴 있어도 괜찮잖아요."라고 반복해서 외치는 장면이 나와서 집에 와서 찾아보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땅은 척박하여 올리브나무 외에는 자랄 수가 없는 땅이라고 한다. 그런데 농지로 쓰지 않고 3년 이상 비어있는 땅에 대해서는, 주인이 없는 땅으로 간주해서 이스라엘에서 몰수해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는 땅을 지키는 운동의 일환으로 올리브나무를 심는 운동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이런 맥락 속에서 올리브 나무 옆에 있다는 말은 "당신들의 땅이 아니라 우리들의 땅에 있다"는 의미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 뭐 하나. 멀쩡한 눈으로 미쳐있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사유의 부재로 언어가 빈곤하여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말을 또 하게 하는 그 사람들이 나는 너무나 무섭다.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그 침착하게 돌아버린 자들과 때로는 폭력으로 무장한 그자들이 너무나 무섭다. 그들 앞에서 비폭력 평화주의가 어떤 식으로 길을 만들어내야 할지가 너무나 막막하다.


그나마 제2회 전쟁과 여성 영화제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의 존재가, 빵과 대지를 위해를 함께 감상하고 씨네토크를 함께 들었던 사람들의 존재가 작은 위로가 된다. 문아영 피스모모대표가 추천한 『이 치열한 무력을』이라는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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