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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Sep 12. 2024

지금, 여기만의 특별함

제3회 한일청년평화포럼 참가후기

살다 보면 꼭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꾼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싸움에, 세상이라는 거대한 상대와 맞서면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참 많다. 이번 포럼 중 지원님이 오키나와와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하신 질문이 인상 깊은 것은 그래서였다. 그 무력감을 어떻게 해결하세요? 두 분은 각각 이렇게 대답했다. 아름다운 강정의 자연을 보면서 위안을 얻어요. 마음은 쉬이 지치는 것이니 형태가 있는 몸을 잘 돌보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나도 속으로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좀 해보았다. 나는 이번 제3회 한일청년평화포럼을 통해서, 무력감을 무엇으로 이겨내리라고 다짐했는가. 그건 아마도 다정함인 것 같다. 2024년, 올해로 3회 차를 맞이하는 한일청년평화포럼의 키워드도 감히 말하건대 다정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획부터 운영, 진행, 내용까지 다정한 연대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일청년평화포럼은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모여 구성된 연대체 <한일화해와평화플랫폼>에서 '차세대 인권, 평화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피스모모는 이 연대체에 소속되어있지는 않으나, 나는 1년 차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이번에는 준비팀까지 참여하며 기획단계에서부터 함께 할 수 있었다.


한일의 청년 40명이 모여서 어떤 평화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참 많은 고민이 있었다. 2022년 1회 차는 한국 파주 및 서울 일대에서 식민지역사에 대해, 2023년 2회 차는 일본 도쿄 일대에서 100주년을 맞은 관동대학살을 중심으로 역사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3회 차를 전부 참여하는 참여자에게도, 이번 3년 차만 참여하는 참여자에게도 평화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포럼이란 어떤 포럼일까. 가해국과 피해국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함께 이야기를 깊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국가폭력:국가는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대주제로 묶어내기로 결정했다.


<포럼 목표>
1. 일본과 한국의 청년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며 화해와 평화를 상상하고 이야기해 보자
2. 현장을 방문해 시간과 공간 속의 다양한 관점을 몸으로 느껴보자
3.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청년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자


어떻게 보면 모험과도 같은 주제와 목표 선정이기도 하다. 4.3과 4.16, 오키나와와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문제. 4.3의 근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자면 일본의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지만, 일본 청년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느껴질 가능성도 높은 그런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문제만 해도 다른 지역 일본 청년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문제는 아닐 텐데. 시작 전부터 여는 프로그램 세팅에 공을 들여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여는 이야기

몸으로 느낀다는 것은 어떤 걸까? 그 자리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고, 함께 울고, 웃고,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때는 그런 감정과 몸이 가지는 힘을 무시했던 적이 있었다. 지식의 힘으로, 머리로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닌데.


이제는 안다: 사람의 감정이란 아주 오묘해서,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도 꺼내어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가지는 힘이 있다는 것을. 피스모모에서 워크숍 시작 전에 늘 하는 모드 세팅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안전한 배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약속들을 정하는 것이다. 이번 포럼의 약속은 이 세 가지였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 '섬세하게 알아차리기', '지금, 여기만의 특별함'. 모두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남들로부터 배울 준비도, 내가 남에게 알려줄 준비도 되어있어야 한다. 너는 왜 모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차리고 내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릴 준비도 필요하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특별히 이 순간, 이 공간에 모였으니까.


이어서 피스모모의 시그니쳐인 자기표현카드로 하는 자기소개의 차례. 이를 위해 자기표현카드를 일본어 버전으로도 준비했다. 100장을 다 자르려다 보니 너무 많은가 싶어서, 급한 대로 긍정적인 카드만 뽑아볼까 하는 나에게 동료 활동가 가지가 말했다. "긍정적인 카드만 있으면 자기표현이 어려워질 수 있어요. 부정적인 카드가 절반 섞여 있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인데, 긍정적인 카드만 있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리고 가지의 예언(?)대로 사석에서 "첫 만남에서는 다들 꾸미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부정적인 카드들이 섞여있으니, 솔직해져도 괜찮다고, 수용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라는 피드백을 예린 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실제로 진행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이런 모습들이었다. 워크숍에서 늘 인기가 많은 "드러눕고 싶다", "피곤하다"와 같은 단어를 고른 참가자들이 고른 단어와는 상반되게 상기된 얼굴로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 그리고 "깔쌈하다"라는 단어와 그에 상응하는 일본어 단어 "이케테루 イケ てる"를 고른 두 참가자가 만나 평화를 상징하는 손모양을 신나게 휘두르는 모습. 그리고 이어진 "손님 모셔오기" 활동에서 유진님이 표현한 것처럼 서로의 신체에 터치하는 것에 어느새 선이 사라지고 깔깔 웃으며 부대끼며 한껏 몸이 열리는 그런 모습들. 두 시간 만에 참여자들이 서로를 오래 알아온 것처럼 편안해졌다.


그리고 이어진 평화감수성 워크숍에서도 '인형극'과 '삼각형'을 통해 수직적, 수평적 형태의 관계 맺음을 몸으로 체험하고 이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통역의 어려움이 있어 깊은 토론이 어려울 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게 빠져들어 이야기하며 다양한 관계 맺음에 대해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부터 조이님이 꺼내준 삼권분립에 대한 것, 그리고 한중일의 군비문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진행되었다.



4.3 - 내게는 어떤 키워드로 다가왔을까?

둘째 날은 먼저 4.3 평화공원을 한국어가 익숙한 팀, 일본어가 익숙한 팀으로 나눠져서 돌았다. (포럼에는 재일 조선인 등 다양한 뿌리를 가진 참여자들이 섞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방배정을 할 때에도 일본인과 쓰겠냐, 한국인과 쓰겠냐고 묻는 대신 어느 모어 화자를 선호하느냐고 묻는 등의 세심함을 담았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걷는다는 것이란 아주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한 게임과도 같다. 정치적 올바름을 요청할 때마다 '그럼 무슨 말을 하냐'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도 할 수 있다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디테일을 신경 쓰면 될 뿐이라고.)


버스에서 내리며 동시통역기 수신기를 나눠주고, (사)제주다크투어의 선생님에게 드릴 마이크를 찾는데, 아뿔싸, 마이크가 없었다. 스태프들끼리 깔깔거리며 수신기를 얼른 회수하고, 급한 대로 블루투스 마이크를 사용해서 해설을 듣고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지원님이 이 장면을 두고 "스태프들 합이 좋더라고요. 서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웃으면서 넘어가는 점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라는 취지로 이야기해 준 것에 울컥했다. 또 우미님이 말해준 것처럼 "스태프들끼리 서로 돌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커다란 일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해내는 과정에서 우리 한 명 한 명이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게 돌보는 것이 너무 소중한 일이니까. 장시간 통역을 하는 예린 님과 유진님이 지치지 않도록 양산을 받쳐주고 블루투스 마이크를 받쳐주는 작은 마음들, 우리 스태프들이 돌아다니는 동안 계속 말을 걸어주고 짐을 나눠 들어주고 음료를 사다 줬던 참여자들의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 포럼을 만들어낸 거니까.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마음이 모여서 4.3도 일어난 것이지 않은가.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서, 미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당시 시민들의 힘으로 국가를 세우고 싶어 했던 그 마음들이 모여서. 기획회의 때, 태준님이 국가폭력에 희생되었다는 측면만 강조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죽으려고 모인 것은 아니었잖아요. 꿈과 희망,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노력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마음 자체는 우리랑 차이가 없다. 지금의 우리가 보다 안전하게 우리가 원하는 목표에 대해서,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것은 그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이 오기까지 끊임없이 모여서 힘을 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4.3 당시에, 4.3이 끝나고 난 뒤에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에 맞서 싸우면서.


나는 그래서 하루 종일의 워크숍이 끝난 뒤의 키워드로 "민중"을 꼽았다. 다만 대의를 위해서라고 그 안에 있는 작은 의견과 연약한 사람들을 짓누르며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보듬어가며 느려도 함께 가는 그런 세상이 평화를 향해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바라건대 이번 포럼에서 그걸 내가 감각한 만큼 다른 이들도 감각해 보았기를.


세월호 제주기억관

셋째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안산에서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해가 쨍하면 해가 쨍한 대로 아이들이 반겨주는 거라고. 우리가 실내 활동을 하는 날에 맞춰 비가 오니 정말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공간은 슬픔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따뜻하게 꾸며져 있었다. 우리는 편하게 앉아 세월호 제주기억관 신동훈 운영위원장님으로부터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김원 청소년활동가로부터 짧게 활동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청소년 활동가들이 직접 선상안전 모니터링 활동까지 하고 있다는 것도, 4.16 당시 초등학생이었음에도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 활동가의 존재가 정말 귀하게 느껴졌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청소년 활동가에게 조금 더 발언 시간을 많이 드릴 수 있었더라면 하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활동을 해오며 어리고/여성이고/지식권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상황에 끊임없이 놓여 계속 주눅 들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다 보니 지금도 그 위계질서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것은 나 홀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국 세월호 문제가 일어난 본질과도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권력자'와 이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존재처럼 문제적 구조에 의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태. 이를 극복하는 것이 단시간 안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계속 의식하고 함께 노력하며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오키나와와 제주

다음은 오키나와 헤노코와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우미님과 혜영 활동가님이 발제해주셨다.



그 자체로도 생태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공사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우미님의 발제에서 성폭력과 군사주의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 오키나와라는 장소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에 얹혀있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우미님은 헤노코에서 활동을 하며 '우미카지'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이 잡지를 통해 매일매일의 기록을 남긴다거나 하는 모습이 '공간', 그리고 '몸'이라는 물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었다. 피스모모에서도 가부장제와 군사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분법이 어떻게 폭력을 낳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것을 내 피부에 딱 닿게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정말 더 많은 공부와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혜영활동가님의 발제 중 커다란 이지스함 앞에 작은 노란색 배에 타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 저 커다란 상대와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다 압도당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앞서서 언급했던 질문이 나왔던 것이다. 그 무력감을 어떻게 해결하세요? 혜영 님은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름다운 강정의 자연을 보면서 위안을 얻어요. 그리고 다음날 우리를 강정천으로 데려가 소개해주며 환하게 웃으셨다. 어때요? 정말 위안이 되지 않나요? 양말을 벗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게으른 나지만, 강정천에 두발을 담그고, 바위 위에서 바람을 쐬며 생각했다. 정말 매일매일 자연으로부터 위로받으며 활동을 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성명문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배우고 느낀 것들을 모아 성명문으로 만들어냈다. 모든 사람이 각 조별로 담당을 정해서 전체 성명문을 만들어낸다는, 짧은 시간 동안 해내기 쉽지 않은 구성이었음에도 다들 빠짐없이 기여해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해서 만들었다. 모두가 작성해 준 문장을 다듬는 초안위원회로 밤늦게까지 고생해 준 휘주님, 정현님, 시마다 켄지 님, 이가라시 노조미 님과 통역에 수고해 준 선화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제3회 한일청년평화포럼 제주 성명문  

우리들은 2024년 한일청년평화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들은 공감하고, 서로를 알고, 세대와 사리사욕, 구조적인 문제를 넘어 행동하기 위해서 함께 했습니다. 식민지 지배와 분단이 없다면 비참한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을 땅, 욕망을 규제하는 힘이 있었다면 세월호도 도착했을 땅, 제주에. 우리는 여기서 4.3이라는 학살의 과거, 그리고 해군기지를 강제하고 있는 현재, 국가폭력의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이나 배경, 상황에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 합니다. 때로는 연결되어 있는 그것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서로 정의의 방향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 미군정 탄압, 한국정부의 폭력에 의해 제주는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았지만, 그와 동시에 저항해 왔습니다. 특히, 우리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불의의 폭력으로 억압한 4.3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현재에도 국가폭력은 존재합니다.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의 부재로 많은 생명이 희생된 4.16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간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우리는 수면 위로 오르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저항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4.3과 세월호참사를 비롯한 국가폭력, 국가를 초월한 폭력에 마주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정의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제주와 가까운 곳에 비슷하게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섬이 있습니다. 오키나와(류큐)입니다. 두 섬은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무력으로 인해 비인도적으로 병합돼서 통치되어 왔습니다. 군사력 강화와 군사기지화로 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거나 많은 생물들도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무책임, 자본의 논리, 사회적 참사와 탄압에 의해 괴로워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관심가지며, 공감하고 협력하고 연대할 것입니다.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계승할 것입니다.     

우리들 속에서도 폭력은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억압받지 않고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서로에 대한 불안감과 적대감 없이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을 다짐하며 아래와 같은 실천을 약속합니다.     

1.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서로를 섬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관심 가지고 배려하고 변화를 위해 연대할 것입니다.
  1-1. 우리는 사회와 우리 스스로에게 냉소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1-2. 우리는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SNS를 팔로우하고, 내가 기억하고 연대하고 있음을 알리는 SNS 활동을 할 것입니다.
  1-3. 우리는 사회적 참사의 기억을 계승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란 리본과 같은 상징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주변에도 성실하게 알릴 것입니다.     

2. 우리는 군사기지화, 국가폭력의 역사를 배우고, 역사적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뛰어넘는 용기와 사랑을 실천할 것입니다.
  2-1. 우리는 국가폭력의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현장에 방문하거나, 행동에 동참할 것입니다.
  2-2. 우리는 역사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통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후대에 계승해 나갈 것입니다.     

3.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거나 또 일어날 수도 있을 다양한 무력 분쟁을 포함한 폭력들에 대하여 배우고, 이를 저지하고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겠습니다.
  3-1. 우리는 이러한 무력 분쟁이나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고, 우리 주변에서부터 넓혀가고 함께 예방할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2024년 8월 29일
<한일청년평화포럼> 참가자 일동

강정마을 길 위의 미사와 행진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기억하고 기록하고, 약속했으니 이제 행동에 옮겨야 한다. 우리는 한껏 기대감을 품은 채로 강정마을 길 위의 미사에 참여했다. 강정마을을 위한 기도문과 노래 등이 따로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꽤 나이가 들도록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토록 뜨거운 논쟁이 되는 일에서 눈을 돌리고 살아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태준님과 휘주님, 그리고 희수님과 밥을 먹으면서 했던 이야기를 나한테 속으로 꼭꼭 씹어서 돌려주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죄책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하겠다는 용기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애써 누르며 행진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깃발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묵직한 깃대를 잡자, 책임감과 함께 일종의 고양감이 피어올랐다. 음악의 힘일까, 깃발의 힘일까, 함께 하는 사람들의 힘일까, 날씨의 힘일까? 해군기지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를 때도, 둥그렇게 모여 서서 춤을 출 때에도 신이 나는 동시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이렇게 해도 세상이 당장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지만 언젠가는 무언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그 희망의 끈이 너무 애달파서. 신나는 음악과 그에 맞춰 춤추며 웃을 수 있음이 너무나 즐거워서. "지금, 여기만의 특별함"을 내가 키워드로 제시했었으면서 정말 너무 벅차올라서 어쩔 줄 모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남들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을 절대 좋아하지 않음에도 들썩들썩 움직일 용기도 낼 수 있었다.



마치며

이렇게 3년간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개인적으로도, 포럼의 입장에서도 많은 성장이 있었던 3년이었다. 한 개인이 단순한 참여자의 입장에서 기획단의 일원이 되어 의견을 내기까지, 그리고 사무국 3인의 힘으로 꾸려내어야 했던 포럼에서 참여자 전체가 기여를 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포럼을 만들어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어쩌면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들이 다 이런 것일 테다.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만드는 그런 모임. 그런 모임들이 톱니바퀴처럼 더 나은 세상과 평화를 만드는데 기여하리라고 믿는다.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는 현 상황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말고, 눈을 돌리거나 이만큼 했으면 되었다고 정신승리를 하지도 말고, 진짜 무언가 바뀔 때까지 묵묵히 뚜벅뚜벅 함께 걸어 나갈 수 있는 동료들을 늘려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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