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 것들
예쁘고 향긋한 꽃에 뾰족, 찔린 것만 같다. 여행 갔다와서 생각이 많아졌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거기다 '너는 여행을 어떤 이유로 다녀?'라고 묻기까지 하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기 일쑤다. 아니,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거라고. 2013년 교토를 혼자 다니며 연속으로 커플 사진을 계속 부탁받아, 현타를 겁나 씨게 두드려 맞아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도대체 왜, 뭐가 재미있는지 좀 알고 싶었다. 나는 머리, 가슴, 배 중에서 쓸데없이 머리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큰 인간이라서.
당시에 고민을 한참 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 때문이었다. 같이 가는 사람이 좋아서, 거기서 약속된 만남이 좋아서, 우연찮은 스쳐 지나감이 좋아서. 그런데 이번에 발리 여행을 가서는 그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눈에 밟히고 또 밟혔다. 여행의 본질이 어쩌면 착취와 소비 아닐까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움과 또 한편으로 즐거워하는 스스로를 보며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갈팡질팡 하게 되는 마음이 컸달까. 돌아와서 일단 좋았던 추억들부터 정리하고 찬찬히 앉아서 이 찜찜함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발리를 여행하는 여행자를 위한 현지인들
가이드가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는 어디까지일까? 검색해 보니 여행지 안내 및 정보제공, 여행 일정 및 안전관리, 여행의 질 향상, 여행자 지원 및 문제 해결 등의 역할을 제시한다.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의 현지인 가이드는 그 이상을 제공하려 애썼다. 짐을 들어주고,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가 쇼핑을 하는 동안 짐을 봐주겠다고 하는 등, 마치 수행원과 같은 역할을 자처했다. 당연한 듯 나의 일행들도 우리의 언어, 우리의 시간, 우리의 행동에 그들이 맞추지 않는 것에 불편감을 느꼈다. 예를 들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돌아다니고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일정을 시작하겠다는 식으로. (가이드는 그럼 몇 시에 들어가서 자고 몇 시에 일어나서 나오는 거지?)
거기서 나의 의문. 직장인으로서 제공하는 서비스라면,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 메신저에 응답할 필요도 응당 있겠거니와, 그러나 도대체 언제까지 스탠바이 하고 있어야 하는가? 노동권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듯 식사시간도 근무시간 중 휴게시간도 확보되지 않는 노동, 이것이 과연 옳은가?
또한 저렴한 인건비에 기대어 대인기인 서비스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마사지다. 한국에서 마사지를 받으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다 보니 단순히 상태만 살피는 말만 주고받으며 서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일이 없게 되었는데...... 이게 한국에서는 그냥 내가 잘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주머니들과 먹고사는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서로 사람 대 사람이 만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발리에서는 계속해서 어떤 위계가 느껴졌다. 언어적 장벽 때문일지, 팁문화로 상징되는 경제적 위계 때문일지, 혹은 인종적 차별이 깔려 있는 어떤 위계 때문인지 셋 모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피부에 따끔따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팁을 깎았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팁이 무엇을 위한 비용인지에 대한 정의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2. 화무십일홍 아니라 화무일일홍?
게다가 입을 쩍 벌리게 만드는 리조트와 풀빌라들이 가득한 발리 남부는 어떠한가. 1988~2013년 관광 관련 물 수요가 20.8백만 m³(295%) 증가했고, 4~5성급 호텔에서는 객실당 연간 1,424 m³, 1~3성급은 949 m³, 기타 숙박은 548 m³ 를 소비한다고 한다. 2007년도 한국인 한 사람이 직, 간접적(먹는데 들어가는 육류와 곡물을 생산하거나 옷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물도 전부 계산한 것)으로 소비하는 모든 물소비량을 따졌을 때 1179㎥다. 지하수가 고갈되고, 지역주민의 식수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자국민의 몇백, 몇천 배는 되는 인원을 끌어안고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내가 갔던 곳 역시 널찍한 프라이빗 풀이 딸린 개인 독채와 정원이 어림잡아 열댓 개는 되는 풀빌라였다. 그곳마다 다 풀장에 맑은 물이 가득했다. 섬나라일 테니 물이 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수영장에 들어갈 때는 절로 경건하게 샤워를 하게 되는 지경이었다. 아마 이런 숙소들이 저 평균치에서 훨씬 웃도는 숙소 들이었겠지... 나는 이것을 즐길 수 있을까? 즐겨도 괜찮은 것인가? 그런 고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물뿐만이 아니다. 꽃은 또 어떤가. 발리 인구의 90%가 한두교도이다 보니, 관광지마다, 혹은 전통 있는 공간마다, 그냥 일상 속 곳곳에서 가게 앞에 꽃을 공물로 바치는 문화가 있다. 한가정이 일주일에 0.5kg씩의 꽃잎을 제물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관광지에서는 꽃목욕, 객실장식, 환영인사 등에 쓰는 꽃의 양이 거의 자루로 퍼다 나르는 수준이다. 230개 주요 사원 기준, 연간 약 45톤의 버려진 꽃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리조트와 호텔에서 사용되는 꽃은 또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하룻밤의 즐거움을 위해 쓰인 이 꽃들은 무단투기되거나, 소각, 매립되는 등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고 수질과 토양 오염등을 일으키는 중이라고 한다.
3. 누구를 위하여 돈은 벌리나
발리 관광 산업은 총체적으로 발리 GDP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고, 그중 85%의 수익이 비(非)발리인에게 돌아간다. 대부분 가이드와 호텔 스태프와 같은 저임금 서비스직이고, 67%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서도 많은 땅이 '외국인 소유'라고 했다. 돌아와 찾아보니 인도네시아 현행법상 외국인은 인도네시아 땅을 소유할 수는 없게 되어있다고 한다. 80~100년씩 임대하는 구조라고. 그럼에도 결혼과 노미니(대리인) 제도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토지와 사업을 장악하고 있으며, 착취구조가 고착화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돌아다니면서도 체감되는 구조였다. 가이드들이 옵션 쇼핑으로 데려간 곳들조차도 한국인 소유로 보이는 쇼핑센터가 두 군데, 다국적기업인 폴로 랄프로렌이었다. 관광상품으로 49조 루피아라는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인다 하더라도 그중 정작 얼마나 되는 비중이 인도네시아의 시민권자들에게 돌아갈지는 미지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토지나 대부분의 인프라가 외국인 소유인 것에는 식민지 청산이 되지 않은 이슈가 클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전통적으로 공동체에서 토지를 관리해 왔다는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가 침략해 들어간 1850년대 이후 토지 관련 행정체계를 이원화했다고 한다. 토지 등기 등에서는 공동체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고 권력집단들이 토지를 약취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식민지 문제를 청산하기에는 네덜란드 - 일본 - 네덜란드 재식민시도와 독립전쟁이라는 역사가 정신없이 벌어졌고, 그 역사도 길었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다. 당장 우리나라도 친일파들의 재산 문제가 청산되지 않은 걸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4. 그럼에도 여행은 즐거워
어쨌든 그렇다. 불평과 의문이 많은 것 같지만, 이 또한 여행을 갔기 때문에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보지 않은 자, 알 수도 없다. 그러니 열심히 두드리고 열어보고 건너가 보는 수밖에.
즐거움을 위한 여행이란 근대의 발명품 중의 하나다. 이동이 제한되었던 근대 이전 시대에 여행은 생존을 위해서, 혹은 어떤 목적을 가진 소수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처럼 굉장히 세련된 문화의 향유 방식일 것이다. 즐기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나는 그런 점에서 사회적으로 어떤 진공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 나의 어린 시절, 혹은 나를 닮은 누군가, 나와 전혀 상관없을 어떤 아이- 를 떠올리며 상상해보곤 한다. 그 아이에게 여행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면, 어떻게 알려주고 싶은가?
모험을 떠나고 새로운 것을 즐기고 많은 것을 배우는 과정이란다. 그 과정 속에서 고통스러운 현실도 많이 보겠지만, 마음이 꺾이지 않고 생각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이 시스템이 굴러가는 구조에 대해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렴.
작년 한일청년평화포럼에서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죄책감은 아니라고. 그러니 오늘은 내 마음을 위로하고, 내일은 더 나은 상상을 품기 위해, 잘 다녀온 여행이었다고 믿어보려 한다.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털어내는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