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위한 자리

『숲, 틈』을 보고 와서

by 김진선

일요일에는 디아스포라영화제를 위해 인천을 다녀왔다. 최예린 감독의 『숲, 틈』을 보기 위해서였다. 최예린 감독이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하여 만나고 싶어서, 반짝다큐페스티벌 때는 바쁘다길래 일정이 꽉 찬 주말에 조금 정신없이 다녀오기도 했다.


숲, 틈』은 일본 군마현의 숲 조선인 추모공원의 추모비가 철거되기 전, 추모비를 100인의 청년들(비문이 작성되었던 2004년 당시 미성년자였던 세대)이 낭독하는 목소리를 담아낸 16분짜리 다큐멘터리다. 한창 제작중일 때, 비문 낭독해 줄 사람들을 모으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는데, 낭독하는 목소리를 듣는 내내 마음 안에서 어지러운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추도비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에 걸맞게 간결하게 가해의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고, 미래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 담겨있을 뿐인데, 2012년 추도식에서 '강제연행'이라는 '정치적 발언'이 있었다는 이유로 우익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 설치허가 변경신청을 불허하고 -> 이를 근거로 철거해 버렸다는 과정이 낯설지 않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에 대해서 '정치적이다', '극단적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리고 양쪽의 갈등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기득권은 그렇게 '갈등'이라고 만들어버린 것을 시끄러운 일이니 무마시켜야 할 일로 인식하고 해치워버린다. 평화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갈등은 건강한 것이고,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하는데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으니 입맛이 쓰다.


더 어린 세대에서는 무언가 달라질까? 그런 고민이 담겨 있는 목소리의 선정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는 우리가 101번째 낭독자가 되는 셈이라는 이야기가 고맙기도 하면서 세상을 바꿔야 할 책임이 느껴져 무겁게도 느껴졌다.



자막의 일부가 한자로 되어있어서 이유가 궁금했는데, 비문이 한자로 되어있어서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GV 때의 설명을 듣고 질문해 주신 분의 날카로움에 감사했다.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르게 읽히는 단어들을 어느 쪽의 방식으로도 표현하지 않고 한자로 표현한 것 같다는 추측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분단의 아픔을 가장 실감 나게 느끼고 있을 사람들 중의 하나는 재일 동포들이기도 할 테니까. 이런 세심한 배려 하나하나가 쌓여서 만들어진 추도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서글프고 황당하기도 하다.




GV 때 나온 다른 질문 중의 하나는, "철거되어도 그조차 가해의 역사로 기억에 남는다면, 왜 추모 공간이 꼭 그 자리여야만 하나?"라는 질문이었다. 최예린 감독의 대답이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이 질문이 우리 사회에서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정 추모공간을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굵직한 사건들은 분명히 있다.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리고 기억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왜 꼭 그 자리여야 하나?"라는 질문 대신에 "왜 다른 자리에 옮겨야만 하나?"라는 질문이 맞지 않나. 어떤 시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질 때, 우리가 시간을 고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공간을 축으로 기억을 남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왜 "꼭 그 자리여야 해요?"라는 질문이 나오는지 먼저 질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렸을 때 보았던 공각기동대라는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뇌를 컴퓨터화(전뇌화)하여 기억을 디지털화해놓은 뒤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외부기억장치'에 옮겨 소중한 곳에 맡겨놓는 장면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놀았던 인형과 같은 것들이 자신의 디지털화된 기억이 풍화되더라도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간직하는 방법에도 물성이 있다. 이미지, 맛과 냄새, 소리, 장소, 온도, 혹은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한 무언가. 그 기억을 물려주는 방법도 단순한 말과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어딘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말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냥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 한 명 한 명의 숨결을 다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지닌 소수의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어떤 장소에 가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는 물성을 지닌 것들에 둘러싸여야 간신히 그 조각에 닿을 수 있는 정도의 상상력을 지녔다. 그렇게 상상한 뒤에야 그 가슴 아픔에 공감하고, 일어나선 안될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그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볼 여지가 조금이나마 생기는 것이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복잡했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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