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끈적이는 것들을 위한 시


얼마 전 아이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교실에 앉아 빗자루를 내던진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왜 그리도 화가 났을까? 


곰곰이 되돌아보니 교실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들 때문이었다. (워워. 학생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들은 모두 끈적이는 물질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죄다 한 글자였다. 지금부터 1학년 담임교사를 화나게 하는 징한(?) 것들을 하나씩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아이들의 몸에서 나온 것들

먼저 침이다. 가끔 책상 위에 침을 뱉는 아이들이 있다. 이제는 비위가 강해져서 그런지 그 정도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모아서 2차 가공(?) 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손으로 가지고 놀거나 사인펜이나 매직으로 색감을 입히는 행위를 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울고 싶다. 

 

코도 있다. 맑은 콧물은 얼마든지 닦아 줄 수 있다. 그런데 노란 코는 아직도 좀 힘들다. 그런데 코를 흘리는 어린이들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엄마처럼 휴지를 얼른 아이 코에 갖다 댄다. 그러면 그 아이도 바로 ‘흥!’ 한다. 암묵적인 룰이다. 

 

마지막은 똥이다.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책을 수십 번 읽은 나지만 여전히 똥은 참 어렵다. 그리고 교실에서 만나게 되는 똥은 주로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많이 묽은 상태. 앗 죄송합니다) 어린이의 당황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처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똥은 언제나 피하고 싶은 일이다. 

 

2. 아이들 필통에서 나온 것들

풀이다. 1학년 학생들의 집중력은 매우 짧다. 2학기는 그나마 적응이 되어 좀 나은데, 1학기 때에는 40분을 제대로 앉아 있는 학생이 많지 않다. 몸을 배배 꼬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는 자괴감을 느낀다.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해 보지만, 다음 수업 시간이 끝나면 알게 된다. 그것이 꼭 수업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1학년은 자라는 시간을 좀 기다려줘야 한다는 선배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괴감-책임감-안도감’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 1학년 담임의 숙명인 것 같다. 집중력이 짧아진 1학년 학생들의 최후의 놀잇감은 딱풀이다. 엄지와 검지의 수많은 접촉을 통해 점점 찰기가 생기는데 그 모습이 꼭 인사동에서 파는 실타래 엿 같다. (저 ‘엿’과 ‘같다’ 사이에 분명 띄어쓰기했습니다)

 

다음은 심이다. 연필심, 색연필 심들이 교실에 굴러다닌다.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기도 하니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걸 보는 순간 아이들은 밟아서 으스러뜨린다. 게다가 트위스트 춤을 추듯 발바닥을 사정없이 바닥에 비빈다. 바닥에 짓이겨진 심들을 볼 때면 심히 열받는다.

 

3. 급식에서 제공되는 것들

가장 기본적인 밥이다. 밥이 바닥에 떨어져서 그대로 그 모양을 유지해 준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수분을 잃어버린 누룽지가 되어 나중에 해결도 손쉽기 때문이다. (포스트잇처럼 딱!) 그러나 밥도 심과 마찬가지로 짓이겨지는 순간 풀이되어 버린다. 제발 모든 음식이 바닥에 짓이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은 김이다. 개인적으로 김은 참 아름다운 식재료라고 생각한다. 가는 실 같은 원초들이 서로를 의지하여 뜨거운 햇살 아래 바짝 말라 영롱한 검은빛을 내고 짭짤한 맛을 내니 어찌 아니 아름답다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 김들이 김가루가 되어 교실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공포스러운 존재가 된다. 1학년 학생들이 흘리는 김가루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급식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김가루를 즈려(?) 밟고 하교하는 그들의 실내화에도 김가루의 여운이 남는다. 급식에서 김가루가 나온 뒤 교실에서는 약 3일 동안 김가루의 잔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은 알(구슬)이다. 오늘 급식에서 구슬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구슬 아이스크림은 아침부터 아이들을 들뜨게 했다. 아이들은 마치 놀이동산에 온 듯 하루 종일 방방 뛰어다녔다. 아무리 여기는 학교라고 해도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아이들의 뇌 속에 있는 구슬 아이스크림과 놀이동산의 연결고리는 너무나 강력해서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구슬 아이스크림을 귀하게 대접했다. 그들은 파스텔 색감의 작고 소중한 알들을 입으로 넣으며 온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해했다. 문제는 그들이 떠난 교실이었다. 작고 소중한 알들이 교실 곳곳에 얼룩무늬로 남았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사랑스러운 입체였는데 바로 평면으로 변신했다. 물티슈를 가지고 작은 동그라미들을 찾아 닦는데 허리가 아파서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이렇게 끈적이는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BTS의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패러디 해 보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 모든 끈적이는 것들과 사투를 벌이는 1학년 담임교사들에게 이 가사를 바치고 싶다. 

 

모든 게 끈적해 How's your day

Oh tell me

뭐가 널 끈적이게 하는지

Oh text me

Your every picture

최대한 멀리 두고 싶어 oh bae

Come be my teacher

끈적이는 걸 다 가르쳐 줘

Your 1, your 2

Listen my my baby 나는

이 바닥을 매일 닦고 있어

(그때 니가 짓이겨 줬던 그것들로)

이제 여긴 너무 더럽

난 내 눈에 널 맞추고 싶어

Yeah you makin' me a boy with luv

Oh my my my oh my my my

I've waited all my life

깔끔 교실 구현하고 싶어

Oh my my my oh my my my

Looking for something right

이제 조금은 나 지쳤어




작가의 이전글 작가 대소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