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낸 여름과 교실
무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5월의 태국은 해가 쨍쨍했고 새벽녘부터 이름 모를 새가 우는 소리가 학교를 가득 채웠다. 커다란 나뭇잎이 학교에 우수수 떨어지고 오리도 뛰어다녔다. 그 오리는 첫 수업 날 문 앞에서부터 꽥꽥대며 나를 쫓아다녔다. 기겁하며 도망치다가 어느 날부터는 그게 오리와 나의 아침 인사가 될 만큼 친해졌다. (그때 처음 오리가 생각보다 인지능력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 부지는 한국의 여느 대학교만큼이나 컸지만 환경은 열악했다. 우선 ‘유리’로 된 창이 있는 교실이 거의 없었다. 교무실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그 교무실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한국인 교사를 담당해서 챙겨주는 영어 교사 ‘아짠 샌디’ 때문이었다. (여기서 ‘아짠’은 선생님을 의미한다) 아짠 샌디는 오십 대 중반의 머리가 짧고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었다. 그녀가 교장, 교감 선생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친한 선생님 한 명과 외진 건물의 2층 창고를 개조해 임시 교무실로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처음 현지 선생님들과 인사하러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
아짠 샌디와 나, 그리고 피 ‘렉’ 선생, 총 세 명은 그 외진 건물의 교무실에서 업무를 봤다. 교무실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곳은 과학 실습실 한편을 밀어 책상을 둔 공간이었다. 책상 뒤 선반에는 실험 도구나 책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었고 개미 떼가 줄지어 다니기도 했다. 마룻바닥에는 아짠 샌디를 따르는 학교 개 두 마리 ‘닝닝’과 ‘오유아’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둘은 나와도 친해졌는데, 가끔 진드기가 떨어져 나와 마룻바닥을 기어 다닌 일은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천장에는 묵직한 쇠로 만든 실링팬 하나가 달려 있었고, 선풍기로 우리는 건기를 버텨야 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잠시 쉬러 교무실에 들어와 책상에 앉으면 선풍기 한 대가 달달거리며 나를 반겨주었다. 가만히 앉아 선풍기를 쐬고 있으면 잠이 쏟아졌는데 그때 자면 절대 안 된다. 잠시 졸다 더워서 깨면 정말 지옥처럼 느껴졌다. 겨드랑이 사이에 땀이 흠뻑 배고 손마디에도 땀이 찼다. 유리창 없는 교무실은 나무 냄새와 열기만이 가득했다.
한국어 전용 교실로 배정받은 곳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무실의 나무문을 열고 나오면 옆옆 교실이 한국어 교실이었는데 여기도 ‘유리’로 된 창문은 없었다. 칠판과 실링팬, 그리고 나무 책상과 나무로 된 창문이 전부였다. 바닥도 나무라서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오면 항상 양말이 새까맸다. 각 반마다 40명에서 많게는 50명까지 있었는데 그 교실이 학생들로 꽉 차면 정말 왁자지껄했다. 학생들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고등학생들이지만 천진난만했고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 열정적이었다. 기초적인 수업이 전부였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이 우르르 나가 간식을 사 먹고, 얼음이 가득 든 비닐봉지에 시럽을 듬뿍 넣은 음료를 마시기도 했다. 가끔 마주치면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음료수를 사 주었다. 그러면 학생들도 항상 태국 간식을 사 오거나 이것저것 경험시켜 주고 싶어 했다. 그중에서도 한국어에 열의가 높은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그 학생들은 한국어 전공반을 선택해 좀 더 체계적인 수업을 들었다. 대부분 케이팝이나 드라마를 좋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수준이 꽤 높아 그 수업 시간만큼은 나도 한국어를 쓰며 같이 소통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외국어를 제외한 정규 수업 시간에는 유리창이 있는 교실에서 에어컨을 쐬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있었다. 국립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차별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학교에 후원을 하면 따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훗날 그 교실에 가보니 정말 그곳에는 ‘유리’ 창이 존재했다. 같이 파견 간 동기의 학교는 과학고등학교라서 그런지 전부 유리창으로 된 교실과 교무실에서 지냈다고 했다. 심지어 집 도어록도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당시 쇠로 된 금색 자물쇠였다)
그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동네에 유리창 있는 집이 몇 채나 되는지 세어 보기도 했다.
유리창 없는 집과 교실, 그리고 교무실.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자란 내게 유리창 없는 곳은 새로운 세계였다. 그 세계는 내게 많은 것을 보고 깨닫게 해 주었다. 문득, 그곳에는 아직도 유리창이 없을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