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태국 현지 고등학교 파견 첫날

by 언이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최악의 시절이자 감사했던 시절은 스물네 살 때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나의 소중한 기억에 대해 풀어보고자 한다. 대학 졸업을 하고 대학원 진학을 하기 전 1년 동안 해외 파견을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태국 현지 고등학교 파견 교사를 채용한다는 공고가 떴고, 마음이 맞는 친한 동기와 함께 지원해 면접을 보고 3차까지 합격했다. 그때까지 나는 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 나라에 대해 무지했다.


태국은 한국 면적의 네 배 정도로 넓었고, 각 지역 학교로 파견된다면 정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1년을 살게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은근히 내가 안 가기를 바라는 눈치였고, 특히 엄마는 걱정된다며 끝까지 말리셨다. 하지만 패기 넘치는 스물네 살은 엄마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태국에 입국하기 전 일주일이 넘는 합숙 교육을 받고, 입국 후에도 다시 일주일간 교육을 받으며 현지 상황을 익혔다. 그때부터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동기와 함께 머물던 현지 호텔에서는 손바닥 반만 한 바퀴벌레가 침대 위를 기어 다니고, 칫솔과 치약 위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그 일주일은 지옥 같았달까.


교육을 마친 뒤 배정된 지역은 방콕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칸차나부리였다. 수도권이라는 말에 걱정된 마음을 달래며 학교로 향했다. 학교 부지는 여느 대학교만큼 넓었고, 안에는 교사 관사가 있었다. 관사에 도착해 방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도마뱀의 배설물로 보이는 흔적이 있었고, 바깥소리는 텐트 안에 있는 것처럼 그대로 들렸다. 그 집에 들어섰을 때 큰 쥐와 벽을 타고 다니는 바퀴벌레를 마주쳤고, 나는 이미 봐버렸기에 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날 밤, 울다 지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에서 챙겨 온 모기장을 치는 것이었다. 다음 날 화장실에서 변기에 앉는 순간, 수도꼭지 위에 앉아 있던 빨간 두꺼비를 보았다. 그다음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두꺼비를 마주쳤고, 환기구를 막은 뒤에야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다. 여러분은 절대 두꺼비의 점프력을 무시하지 마시라.


그때는 무슨 깡이었는지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하기 싫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파견된 50개 학교 중 내 환경이 가장 열악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최악이 아닌, 그 1년 중 손톱의 때만큼 작은 기억이 될 만큼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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