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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SAEM Mar 12. 2022

윤여순 대표의 기사를 읽고나서

나는 일과 육아의 ‘성공적인’ 양립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일까?


https://woman.chosun.com/mobile/news/view.asp?nNewsNumb=20201272045




많은 생각을 가져다준 기사였다.

워킹맘이었던 엄마를 그렇게 원망했으면서, 이기적이게도 나는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아이를 낳지 않는 쪽을 택하고 싶다.



열 살 무렵까지도 ‘엄마 오늘만 회사 안 가면 안 돼?’라는 식의 말을 달고 살았다.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나 참관수업 등 행사의 참석 여부를 조사하면 난 늘 ‘불참’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내가 어릴 땐 맞벌이 부모가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대부분의 엄마들이 당연히 학교에 왔고, 나는 할머니가 대신 오시거나 행사가 끝날 무렵 헐레벌떡 뛰어 온 엄마가 빼꼼 얼굴만 내비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당시엔 그게 그렇게 싫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친구들은 엄마가 차려준 간식 같은걸 먹던데, 나는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돈과 쪽지가 더 익숙했다. ‘엄마 오늘 늦어 미안해.’ ‘엄마 오늘 바빠서 밥을 못해놨네,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어.’


가장 서러운 날은 비 오는 날, 갑작스런 비에 우산을 가져가지 않은 날이면 거의 울면서 비를 맞고 집에 돌아갔다. 친구들 엄마가 같이 쓰고 가자고 할 때면 매번 ‘저희 엄마도 오신대요’라는 어이없는 거짓말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회사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 난 학교에 있었고 집에 돌아와 몇 시간만 있으면 엄마도 집으로 돌아오는데 말이다.


이 또한 교육의 폐해라는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교과서나 미디어에서 접하는 엄마의 모습은 늘 앞치마를 두르고, 남편의 넥타이를 매어줬으며, 언제 누가 오든 ‘집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꼬마 아이에게는 더 받아들이기 버거운 상황이었는지도.



‘임원이 된 엄마는 열 살 된 딸을 두고 있었다. 딸은 엄마가 필요하다고 읍소했다. 육아와 커리어 사이 갈등이 부풀 즈음, 아이에게 ‘퀄리티 토크(Quality Talk)’를 약속했다.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는 대신 얘기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야근, 회식을 한 날도 약속을 지켰다. 그는 어머니의 삶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고 했다. 자신 어머니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내 분리불안이 심해질 때쯤 결국 엄마는 육아에 집중하기로 판단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내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엄마를 마주할 때마다 미안한 감정이 함께 온다. 내가 그녀의 삶 한 조각 정도는 빼앗은 게 아닐지. 그래서인지 윤여순 대표의 어머니의 삶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는 구절에 자꾸만 마음이 무겁다. 나보다 두 배의 세월을 살아온 엄마의 삶을 감히 내가 가진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린 상태에서 한 선택은 공평한 게임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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