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y 민하

서준이 흰여울에 닿은 것은, 거제도에서 미주의 이야기를 들었던 그날 이후였다.

그녀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 그리고 문득 흘린 말처럼 떨어진 단서들은 서준의 마음을 오래 붙잡아두었다.

그는 미주에게 돌아갈 길을 찾아주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끌림처럼 그 이야기의 뒷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곳을 택했다.

흰여울에 도착해 터널에 들어서던 순간, 해무의 모습인지 미주의 꿈에 나타났던 그 형체일지도 모를 존재를 쫓다 어둠 속에서 휘청거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 스쳐 지나가던 건 터널 안을 가득 채우던, 말할 수 없는 적막뿐이었다.

그리고 서준이 눈을 떴을 땐 바다를 향해 절을 올리는 노인을 보았다.

작은 창문, 기울어진 처마, 비탈진 언덕을 깎아 만든 외딴집. 아무도 찾지 않고, 그 누구도 묻지 않는 그 집에 살고 있는 노인은 강 씨였다. 그는 흰여울 바닷바람을 오래 견디어낸 사람처럼 조용하고 단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강 씨의 집에 머물며 몸을 회복하는 동안, 서준은 강 씨의 입을 통해 오래 묵힌 이야기들을 들었다.

미주의 언니가 남기고 간 발자국들, 바닷가를 맴돌던 아버지의 흔적, 누구에게도 끝내 말하지 못했던 그 가족의 오래된 슬픔과 비밀들.

그 이야기들은 서준의 마음을 잔잔하게 깊은 곳까지 흔들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미주가 왔다. 그녀의 작은 기억 조각들을 위해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다.


어느 날, 해가 저물 무렵 강 씨와 함께 흰여울 골목을 걸을 때였다.

바람은 조용했고, 파도는 멀리서 자그마한 떨림만을 건네왔다.

서준은 그 순간, 이 모든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단순한 취재가 아니라, 미주가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아주는 일, 그리고 그 길 위에 흩어진 사람들의 시간을 조용히 빛으로 담아내는 일.

그렇게 서준은 카메라를 들었다.

강 씨가 들려준 말, 미주가 잃어버린 기억의 간격, 흰여울에 남아 있는 오래된 숨결들을 하나씩 모아 다큐멘터리의 첫 장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밤이면, 서준은 미주가 언젠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마주하길 바랐다.

그럴 수 있다면, 잃었던 기억도, 미처 닿지 못한 마음도 조금은 다른 모양으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흰여울의 불빛이 먼바다를 비추는 동안, 서준은 조용히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모든 이야기는 이제,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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