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숨바꼭질

by 민하

서울은 바다가 없었다.

미주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숨을 크게 들어마셨다가 내뱉었다. 눈앞은 익숙했던 바다 냄새 대신 기름 냄새, 매캐한 매연,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창문을 열면 들이치던 비릿한 냄새도, 밤이면 들려오던 파도 소리도, 빨랫줄에 반짝이던 은빛 비늘도 없었다.

버스 승강장에 도착해 입구로 나가니, 외삼촌이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외삼촌 차에 타기 전, 바깥 풍경을 잠시 바라봤다.
수평선은 없고, 하늘과 맞닿은 것은 회색 고층 건물들이었다. 갑작스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지만 짠맛도, 젖은 소금기 같은 느낌도 없었다.


“서울은 좀 많이 다르지? 겁먹을 건 없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다. 너무 많이 살아서 문제지. 하하하”


기분 좋은 외삼촌의 목소리에 미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자꾸만 창밖으로 향했다. 창밖엔 해안 도로 대신 아스팔트가 펼쳐졌고, 바닷소리 대신 차들의 ‘빵빵’ 소리가 들려왔다.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낯설고 어른스러웠다.

서울 외곽에 도착한 외삼촌댁은 단정하고 따뜻했다.

현관 옆 작은 화분엔 푸릇한 허브향이 났고, 창문엔 레이스로 된 커튼이 걸려 있었다.


“앞으론 여기서 살면 된다. 학교도 여 근처고, 옆집에 니 또래 애도 있던데, 아주머니도 좋은 분이다.”


외숙모는 미주의 어깨를 감싸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밥이 식탁 위에 있었다. 누군가 끓여준 국, 김이 나는 밥, 말없이 반찬을 내밀어 주는 손…, 그 느낌이 따스해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서울에 도착한 첫날, 밤이 깊어질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 한편 책상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이렇게 조용한 밤인데, 왜 가슴은 이렇게 울렁이지?’


귀를 기울이면 바람 소리 사이로 파도 소리가 들릴 것도 같았지만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그날 밤, 미주는 두 눈을 감고도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의 첫날밤은, 낯섦과 기대, 그리고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다짐했다.


“바다 없이도… 살아봐야겠지. 기억이 없다면, 그냥 새로운 기억을 만들면 되니까.”


누군가의 기억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이름을 흘려보내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눈 덮인 서울의 겨울, 빌딩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투명했다. 지하철이 우르르 지나가는 소리에 맞춰 미주는 코트를 여며 잡았다. 그 소음조차 이제는 익숙한 일상의 일부였다. 한적한 캠퍼스 안,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은 미주는 두꺼운 전공서적을 넘기고 있었다. 서울의 대학,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언제나 다정했다.


“니는 이제 여기서 새로 시작하면 된다.”


늘 따뜻한 말과 미소로 딸처럼 챙겨주었다. 미주는 공부에 몰두했고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여기에서는 아무도 그녀의 과거를 묻지 않았고, 그녀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대학생활은 빠르게 흘러갔다. 도서관의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수록 기억의 먼지는 조금씩 옅어졌다. 이따금 교수님들의 ‘기억’과 ‘망각’에 대한 수업을 할 때면, 미주는 필기 대신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친구들과도 적당히 잘 어울렸다. 미소를 지으며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시험이 끝난 뒤엔 맥주잔을 부딪치기도 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삶의 무게를 덜어낸 채 여느 이십 대 여학생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지만 6월의 밤이 되면, 어김없이 꿈이 찾아왔다. 하얀 천이 바람에 나부꼈고, 이름 모를 누군가가 뒤돌아서 어딘가로 사라지곤 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미주는 물 한 컵을 마시고 다시 눈을 감았다.


‘또 그 꿈이야…, 이젠 익숙한데 왜 이렇게 가슴이 조이지?’


주말이면 외삼촌의 차를 타고 요양병원에 다녀왔다. 엄마는 차분하게 침대에 누워 있었고 가끔 창밖의 나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간호사가 말하길, 며칠에 한 번쯤 “미혜”라는 이름을 중얼거린다고 했다. 미주는 그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 자세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엄마, 나 잘 지내. 걱정하지 마. 나 이제 괜찮아.”


미주는 가만히 엄마의 손을 잡고, 흘러가는 시간을 머리맡에 눕혀 두었다. 시간이 엄마를 데려갔고, 자신도 조금은 데려간 것 같았다.


눈이 녹기 시작한 어느 날, 미주의 낡은 짐 안에서 오래된 낡은 전복 껍데기 하나를 발견했다.
흰여울의 바다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그 반짝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미주는 처음으로 일기를 꺼내 썼다.


「가끔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게 더 쉬운 일인 것 같아.

하지만 가끔은, 내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건지, 하지 않으려는 건지 헷갈려…」


바로 그때, 서준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대학 합격! 맥주 한잔 콜?」


일기는 책상 안에 다시 넣어두고 옆집 서준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 주기 위해 집 앞 호프집으로 갔다.


“어서 오시오! 드디어 당신들과 같은 대학생이 되었다오!”


서준이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서희가 핀잔을 줬다.


“어허, 대학생 되자마자 군대라는 관문이 남아 있다오!”

“하하하”

“아이씨”


서준이 울상이 되었지만 미주와 서희는 마주 보며 신나게 웃었다. 미주의 가슴속 어디에선가 웃음소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곧, 그 기억은 파도처럼 되돌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미주는 반쯤 들어온 터널 안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터널 끝으로 향하자 발밑엔 깨진 유리 조각들이 자잘한 소리를 냈고 멀리서 부서지는 파도가 그 위에 얹혀 들려왔다. 터널은 어두웠지만 끝으로 갈수록 빛이 나오고 있었다.

터널을 나오자 희미하게 갈라진 시멘트 벽 너머로 허름한 외딴집 하나가 바닷가 턱에 걸려 있었다.


‘원래 없던 집인데’


미주는 조심스레 그 집으로 다가가 창문으로 집안을 살펴보고 있을 때 낡은 문이 열리고 누군가 절뚝거리며 나왔다. 긴장감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서… 준?”


미주는 문을 등지고 선 서준이 보였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서준의 눈동자를 봤다. 얼굴은 바닷바람에 잿빛으로 바랬고 다리는 어쩌다 다쳤는지 붕대를 감고 긴 막대에 지탱하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미주는 엉엉 울었다.


“미주야! 괜찮아!”


서준은 미주를 꼭 끌어안았다.


“어떻게 된 거야?”

“잠깐 안으로 들어가자”


허름한 집 안은 밖에서 보기보다는 따뜻했다. 한 사람이 살만한 살림살이들이 보였다. 서준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따뜻한 차를 미주에게 건넸다.


“터널에 들어왔다가 뛰어나가는 바람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 뭐야.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데 웬 노인이 여기로 데려다줬어. 먹을 것도 챙겨 주고 다리에 붕대도 감아 치료도 해 주셨어. 올 때가 되었는데 늦네?”

“연락은 왜 못한 거야?”

“넘어지면서 핸드폰이 떨어져 고장이 나 버렸어 어제까지 걷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움직임이 좋아서 내일쯤 연락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딱 만나버렸네? 하하하”

“참 미주야 이 상자 한번 봐줄래?”


서준은 상자 하나를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는 그림이 다 벗겨져가는 전복 껍데기, 낙서가 된 물안경 그리고 바닷소금이 눌어붙은 작은 손수건 조각이 담겨 있었다.

미주의 가슴이 싸하게 조여 왔고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왜 이러지…”


한참 잊고 살았던 이름, 잊은 줄만 알았던 발끝에 닿는 따뜻한 돌바닥의 감촉, 소금기가 묻은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느낌이 다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언니… 나의 미혜 언니’


그동안 꿈에 나타나 하얗게 흩날리다가 사라지던 그 하얀 천들, 눈앞에서 손에 닿을 듯 흔들리던 여자의 그림자, 그게 전부 사라진 언니의 기억이었다.


‘나를 잊지 마!’


미주는 상자 속 물건들을 조심스레 꺼냈다. 미주가 항상 그리던 전복 껍데기 그림, 물질하러 가는 언니가 미워 물안경에 한 낙서, 언니 생일에 사준 작은 손수건, 기억들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언니… 정말, 정말 미안하다…”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가 바닷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파도는 부서졌다가 또다시 물러났다. 외딴집의 낡은 문짝은 바람에 덜컹 흔들렸다.

미주는 파도와 바람 소리 사이로 언니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 희미했던 언니의 얼굴이 서서히 다시 선명해졌다.

서준은 목에 걸린 작은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미주야… 언니가 남긴 흔적들, 조금 더 찾으러 갈까?”


서준은 미주의 손을 꼭 잡았다.

해무가 낀 골목 끝 담벼락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미주야… 나 찾아봐라!’
그때의 숨바꼭질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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