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들의 고함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안 터널로 끌려가던 미주는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발버둥 쳤다.
‘조금만 더 버티면 경찰이 올 거야. 정신 차려 미주야!’
미주는 덩치에게서 벗어나려고 손과 발로 덩치를 마구 때렸다. 미주의 손이 덩치의 눈을 찌르자 덩치는 미주를 놓쳐 버렸다.
“아악!, 이 년이”
덩치에게서 떨어지면서 바위 모서리에 미주의 머리가 부딪혔다. 핏방울이 차가운 돌 위로 떨어졌고 피가 이마에서 흘러내려 눈으로 들어왔다. 미주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갔다.
“위용, 위용.”
그 순간,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경찰이다! 다 버리라!”
누군가 외치자, 상자가 바다로 던져졌고, 사람들은 이곳을 벗어나려고 미친 듯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소음이 사라진 듯, 미주의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주의 눈은 이 모든 장면들을 보고 있었지만 점점 시야는 어두워지고 의식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희미한 창문 너머로 바람 소리가 맴돌았다. 차가운 겨울 햇볕이 따스하게 병실의 벽에 스며들었다. 미주는 눈이 감긴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옆으로 미주의 엄마가 미주의 손을 잡고 있었다.
“오늘이 며칠 째고 야는 와 이리 안 일어나니. 괜찮다고 했는데…”
옥희는 물병에 물을 채워 넣기 위해 병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힐끗 미주를 쳐다봤다.
마을에 그 일이 있고 난 뒤 일주일이 흘렀지만 미주는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미주의 눈이 스르르 열렸다. 어지러운지 머리를 붙잡고 다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 꿈처럼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바위에 부딪혔던 순간, 등 뒤에서 잡아당기던 손아귀의 거칢, 경찰의 사이렌 소리, 마을 사람들의 아우성, 모든 게 한 장면처럼 이어졌다가 금방 찢겨 나갔다. 문이 ‘삐걱’ 하고 열리더니 옥희가 물병을 들고 들어왔다. 손에는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귤과 작은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야…, 정신은 드나? 아줌마! 미주 깨어났어요”
옥희 얼굴은 몇 날 며칠 울다 만 표정이었다. 미주의 손을 잡고 있던 엄마도 미주를 보기 위해 일어났다. 미주는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를 내려했지만 혀가 굳고 입안에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이 아팠다.
“자, 물 마시라”
옥희는 물을 컵에 붓고 미주를 일으켜 입에 물을 넣어 먹게 해 주었다. 미주는 침대에 기대어 숨을 고르려 했다. 하지만 이마를 짚자 또다시 기억이 갈라졌다. 오른손이 묵직해 쳐다보니 엄마의 손과 포개져 있었다. 조심스레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주를 보고 있었다.
“니…, 머리는… 괘안나?”
옥희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미주는 대답 대신 허공을 바라봤다. 어두운 바다 위에 비친 형체, 동그란 불빛, 바다 위에 떠 있던 상자, 낯익은 욕설, 모두가 흐릿하게 겹쳤다가 사라졌다.
“나…, 조금… 기억이…”
짧게 내뱉은 목소리가 깊은 밤바람처럼 흩어졌다.
옥희는 미주를 꼭 끌어안았다. 옥희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괜찮다…, 괜찮다…”
미주는 다시 잠에 빠졌다. 현실과 꿈을 오가며 기억은 다시 돌아오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잠시 선잠에서 깨어났을 때 외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네가 완전 쑥대밭이 됐네. 경찰들이 온 동네 집들을 다 뒤지고, 동네 사람 거의 절반 이상을 잡아갔다는데…”
“미주 저 가시나 머리 하나는 진짜 비상하다 거기서 간첩이라고 신고할 줄이야…”
외숙모의 목소리도 들렸다.
“동네 돌아갔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겠다.”
“옥희야! 니 미주 집에 가서 미주 짐 좀 챙겨 올 수 있겠나?”
“외숙모…”
미주가 가녀린 목소리 불렀다.
“좀 괜찮나?”
“이제 괜찮아요. 외숙모, 짐은 내가 직접 집에 가서 챙겨서 서울로 갈 거예요. 그런데 엄마는요?”
“너희 엄마 다시 정신을 놓으셔서 서울로 먼저 모시고 갔다. 근데 니 그 집으로 갈 수 있겠나?”
“괜찮아요. 제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콜록콜록”
“그래, 니 편할 대로 해라. 그만 말하고 쉬어라”
엄마를 대신해 외숙모는 미주를 살뜰하게 챙겨 주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은 퇴원 전 이것저것을 미주에게 알려 주었다.
“기억은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돌아올 거예요.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혹 어지럽거나 매스꺼우면 바로 병원으로 가고, 머리가 아프더라도 병원으로 바로 가세요. 약은 퇴원 후 일주일 정도 먹으면 될 거예요.”
버스 정류장에 서자 바람이 머리칼을 쓸고 지나갔다. 집로 가야 했다. 가슴은 무언가를 찾으라고 하지만 머리는 흐릿해져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 동네 사람들이 미주가 오는지 어떻게 알고선 기다리고 있었다.
“야이! 가스나야, 네가 뭔데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데?”
“뭐 저런 게 다 있니?”
“여기가 어디라고 오노?”
동네 사람들은 미주를 둘러싸고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러 댔다. 미주는 머리가 하얘지고 손이 떨렸다. 무릎이 떨려 귀를 막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때 구세주처럼 옥희가 나타나 미주의 손을 잡고 달렸다.
“아주머니, 아재들이나 잘하세요! 괜한 애 잡지 말고”
옥희는 미주를 데리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내 이럴 줄 알고 니 짐 챙겨 왔다. 이거 가지고 바로 서울로 가라. 외숙모한테는 내가 전화해 놓을게”
옥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둘은 부둥켜안았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멀리서 다가왔다.
미주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긴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들으며 옥희가 챙겨 준 가방을 안고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옥희가 눈물을 흘리며 버스가 떠나기 전까지 손을 흔들었다.
“니 꼭! 다시 돌아와야 한다! 내 기다리고 있을 거다.”
버스 창밖으로 옥희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이제 못 돌아오겠어. 여긴 이제 내 자리가 아니야’
여기에 남아 있으면 자신까지 삼켜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