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는 담요를 둘러쓰고 골목과 바닷길이 모두 보이는 자리에 몸을 숨기고 웅크렸다.
밤이 깊어지자 달빛에 비친 바다는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있었다. 눈꺼풀은 무겁지만 미주는 눈을 감지 않았다. 바다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다 알고 있었다. 미주는 밤낮이 바뀐 채, 언덕 위 바위에 몸을 웅크린 채 몇 날 며칠을 죽치고 있었다. 찬바람이 맨살을 베어갔다. 얼굴은 바람에 빨갛게 텄지만 눈은 바다를 응시하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한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바닷바람은 파도와 함께 뺨을 갈기고 소금기 섞인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정박한 배들의 불빛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바다 주위에 큰 바위들은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가까워졌다가 부서진 포말에 몸을 숨기듯 멀어졌다. 달빛이 드문드문 구름에 가려 바다를 숨김없이 다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바다 위로 동그란 불빛이 그려졌다.
“저거다”
옥희가 말했던 불을 끈 배가 어두운 물 위 선명하게 보였다. 미주의 속눈썹에 눈물이 맺혔다. 찬바람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마을 입구 바닷가 쪽 배가 바다로 점점 멀어졌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는다. 꼭 봐야 한다. 무조건 끝내야 한다.’
밤바람이 세차게 뺨을 때렸다. 그럴수록 눈은 더 또렷해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미주는 바위 뒤에 숨겼던 몸을 일으켰다. 언덕을 뛰어내려 마을 입구에 있는 낡은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갔다.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바닷바람이 찬 소금처럼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손끝은 얼어붙고 주머니에 넣어둔 동전은 서로 부딪혀 딸랑거렸다. 공중전화기에 도착해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렸다. 철제 다이얼판이 무겁게 돌아가며 손가락 관절이 얼얼해졌다.
“띠링, 띠링.”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숨이 차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식어 뺨을 적셨다.
“간… 간첩인 것 같아요.”
숨을 고르려 해도 가슴이 쿵쾅거려 말이 끊겼다.
“어두운 바다에… 이상한 배가… 움직이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잡음이 번졌다.
“뭐라고 예? 크게 말해봐라!”
“간첩… 간첩이에요…”
“거기 어디고?”
“여기 주소가 XXXXXXXXXX 예요.”
“알았다! 출동시키겠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박스를 박차고 나왔다. 찬바람이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미주는 바다로 내려 가 바위에 몸을 숨긴 채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상자를 실은 작은 배가 해안선에 닿고 랜턴 불빛이 깜박였다. 강 씨 아저씨의 낮고 쉰 목소리가 파도 소리에 실려 올라왔다.
“조심해라, 박스 터지면 다 끝이다!”
함안 댁 아주머니의 한숨이 뒤를 따랐다. 낡은 상자가 해안선에 닿자 마을 남자들이 부리나케 물건을 나르기 시작했다. 낯익은 사람들… 함안 댁 아주머니, 옆집 삼촌, 골목에 늘 앉아 담배 피우던 청년들. 모두가 랜턴 불빛 아래에서 허겁지겁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항상 안부를 묻던 우리 옆 이웃들인데… 근데 이 사람들…’
미주의 눈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참을 수 없었다. 미주는 바위를 박차고 나왔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이게 다 뭔데 예?”
“미주야… 네가 여길 왜…”
함안 댁이 입을 막으며 당황했다.
미주의 눈빛에서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녀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에 덮여 금방이라도 삼켜질 듯했지만 강 씨 아저씨는 고개를 번쩍 들렸다.
“미주야… 니는 집으로 가라.”
강 씨 아저씨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짓밟았다. 그 눈빛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차가운 쇳조각 같았다.
“그냥 조용히 가라. 니 이러다가 크게 다친다.”
“우리 언니, 우리 아빠도 이것 때문입니까?”
미주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확인하듯 둘러보았다. 누군가는 눈을 피했고, 누군가는 미주를 노려봤다. 다 아는 얼굴이었다. 식사는 잘하셨는지, 아이는 잘 크는지, 매일 인사를 나누던 그 사람들….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똑바로 말해 주세요. 언니도 아빠도 이것 때문입니까? 대답해 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겁니다.”
미주는 박스를 끌어안고 못 움직이게 막았다.
“야가 와 이라노. 빨리 비키라 밀수꾼들 오면 니도 끝장이다.”
강 씨 아저씨는 사방을 살피며 미주를 짐에서 떼어놓으려고 했다. 함안 댁 아주머니도 동네 사람들도 미주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마을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미주는 꿈적하지 않았다. 덩치가 큰 남자 셋이 그림자처럼 어둠 속에서 다가왔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눈빛은 날카로웠고 움직임은 야수처럼 날렵하고 무섭게 다가왔다.
“야! 이 년은 뭐야?”
한 덩치가 강 씨를 보고 물었다. 강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덩치들 눈치만 봤다.
“몰라? 누가 데려온 거야?”
이번엔 다른 덩치가 함안 댁을 보고 물었다. 함안 댁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덩치들의 눈빛만 피했다.
“마을 애 같은데? 박스를 건드리고 있네?”
목소리는 낮았고 거칠었으며, 눈빛은 미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이 서서히 미주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미주의 몸이 움찔 떨렸고 심장은 가슴을 찢고 도망치려는 듯 뛰었다. 하지만 그녀는 두 손으로 박스를 끌어안고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떨렸지만,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누가 와도 물러설 수 없었다.
“하! 요것 봐라?”
한 사내가 가까이 다가왔다.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 차가운 달빛 아래 번들거렸다. 그는 웃지도 않았다. 웃음이 없는 얼굴은 더 무서웠다.
“안 나와? 이 년이 재수 없게…”
그 순간 사내가 팔을 뻗어 미주의 어깨를 잡았다.
미주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며 밀쳤다.
“니 뭐꼬! 니 뭔데? 이게 다 뭐꼬? 너희들 다 뭔데?”
미주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몸은 떨렸지만 다시 박스를 껴안았다. 사내는 말없이 허리를 낮췄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미주의 머리카락을 잡아들어 올렸다.
“악!”
사내의 차가운 손에 잡힌 머리카락이 당겨지자 미주의 눈이 크게 떠지고 입에서는 아픈 소리가 나왔다.
“요고 안 되겠는데?”
눈빛이 기분 나쁘게 번들거리는 사내가 다가와 입맛을 다시며 미주를 들어 올렸다.
“제 발로 오다니 함 놀아줘?”
손을 허리띠에 두고 미주를 위아래로 훌 터 보았다.
“야! 너희들은 짐 다 싣고 정리해라, 나 애랑 함 놀고 올게”
덩치는 미주를 끌고 해안 터널 쪽으로 갔다. 발버둥 쳤지만 두 팔이 붙잡히고 남자의 어깨로 올려졌다. 남자의 등을 손으로 발로 때리고 찼다.
“이 년이! 자꾸 꼴값 떨면 진짜 죽는다.”
강 씨 아저씨는 덩치를 가로막으면서 애원했다.
“그만해라! 아직 애다.”
“하, 지금 나보고 하는 말이야? 이 아저씨 많이 컸네?”
덩치는 손으로 강 씨의 머리를 기분 나쁘게 툭툭 치며 말했다.
“그 애 언니도 아빠도 너희들 손으로 보냈으면 이 애까지 너희들 손에 당하게 놔둘 수는 없다. 고만해라!”
함안 댁 아주머니, 마을사람들은 쥐 죽은 듯 조용히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니 더 가만히 놔두면 안 되지!”
조롱하듯 덩치는 강 씨를 어깨를 밀치고 지나갔다.
“크크크”
남은 두 덩치가 웃으며 밀수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들 뭐 해? 빨리빨리 안 움직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