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가 미주의 마음을 대변하듯 갑자기 뿌리더니 새벽녘에 잠잠해졌다. 미주는 옥희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언니가 삼켜진 것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한 것도, 바다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그녀를 밤새 잠 못 들게 했다. 미주는 새벽 일찍 나갈 차비를 했다.
“니 미쳤나? 그 사람들한테 가서 뭐라 하려고?”
옥희는 다급하게 미주를 붙잡았다. 미주는 이미 결심한 얼굴이었다.
“그 사람들 입으로 어떤 말들이 나오나 들을 거다. 그날의 일들.”
미주는 새벽 옥희 집을 뒤로하고 비 냄새가 나는 골목길을 내려갔다. 비린내가 아직 남아 있는 골목길에 접어들자 낡은 담장 너머 강 씨 아저씨가 벌써 나와 오래된 고기 망을 정리하고 있었다. 거친 바다 일로 그의 손끝은 늘 물비린내와 소금 냄새가 배어 있었다. 잠시 지켜보던 미주는 다짐한 듯 다가갔다.
“아저씨!”
미주가 부르자, 강 씨 아저씨는 미주를 힐끗 쳐다보고, 정리하던 고기 망을 만지던 손을 멈췄다.
“네 아버지 눈빛이랑 똑같다.”
강 씨 아저씨는 ‘허허’ 웃었지만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날… 언니한테 무슨 일 있었던 겁니까? 우리 아버지는 예?”
미주는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보면 안 되는 걸 본 기다.”
강 씨 아저씨의 입에서 어렵게 뱉어진 말이었다.
“그래서?”
“해무가 삼킨 기다. 바다는 다 알고 있지 사람만 모른 척하고 살아서 그렇지”
“도대체 뭘 봤는데요? 뭘 숨기는 건데요? 진짜 바다가 삼킨 건 맞아요?”
그는 다시 고기 망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굳게 닫았다. 미주는 아무 대답을 못 들은 채 그가 등을 돌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화가 머리끝까지 타올랐다.
다음은 함안 댁 아주머니집으로 갔다. 대문 앞, 함안 댁 아주머니는 물을 퍼서 돌계단을 쓸고 있었다. 조용한 골목에 물 흐르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뭔 놈의 날씨가 이러니”
구시렁거리는 함안 댁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물소리와 함께 골목으로 나왔다.
“아주머니”
대야를 내려두고 미주를 빤히 쳐다봤다. 낡은 손등엔 주름과 소금기가 얼룩져 있었다.
“니까지 와 이라노. 너희 엄마가 뻔질나게 와서 닦달하더구먼 이젠 네가?”
“대답해 주세요. 그날… 왜? 우리 언니가, 왜? 우리 아버지가…”
함안 댁은 손사래를 치며 아무 말 없이 시선을 피했다. 그 얼굴은 무너질 듯 굳어 있었다.
“너무 많이 봤다. 말해봤자, 아무것도 안 바뀐다.”
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모른다. 다신 오지 마라”
멀리서 앙칼진 함안 댁 아주머니 목소리가 울렸다.
‘엄마도 뭔가 알고 있었던 거야…’
그날 밤부터 미주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언덕 끝, 마을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곳을 찾아 자리 펴고 앉았다. 조용히 노을 지는 바다에서 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바다 모습을 지켜보았다. 파도는 낮은 숨소리로 해안가 돌 틈을 때렸다. 멀리 정박해 있는 배들의 작은 불빛이 번쩍였다가, 꺼졌다 했다.
‘봐야 한다. 무엇인지, 이번엔 꼭 놓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