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모든 걸 주던 때

by 민하

미주는 천천히 터널 안으로 발을 옮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습기 먹은 벽은 마치 숨소리를 삼키는 듯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파도 소리는 점점 뒤로 멀어졌고 발자국 같기도 하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이어졌다.

미주는 한참을 걸어가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터널 끝 어둠 속에서 미주의 시야 너머로 흰 형체가 해무에 잠겨 있었다. 여기 도착했을 때부터 해무에 묻힌 무언가가 있었다.

흰 천일까? 여자일까?

어릴 적 바닷가에서 봤던 누군가의 젖은 옷자락이 순간 스쳐갔다.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간 형체. 기억은 목소리 없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바다로 갔고… 언니는 결국…’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어린 시절, 바다가 모든 걸 주던 날 있었다. 아직 아스팔트 도로가 제대로 깔리기도 전의 흰여울마을은 「이송도」라고 불렸다. 이송도 골목길 비탈진 돌계단 아래로 언니와 미주는 맨발로 뛰어다녔다. 발끝에 닿는 따뜻한 돌바닥의 감촉, 소금기가 묻은 바람이 귓가에 살짝 스쳤다.


“언니야! 거기 숨으면 다 보인다!”


어린 미주는 그늘 하나 없는 맑은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찾아봐라! 못 찾으면 내가 이기는 거다!”


언니는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언제나 미주보다 먼저 숨어 버렸다.

미주는 숨바꼭질에 늘 약했다. 하지만 언니가 져 주는 숨죽인 웃음소리는 금세 언니를 찾아내게 만들었다.

담벼락 너머로 언니가 ‘까르르’ 웃으며 뛰어나오면, 둘은 골목 끝 공터까지 달려갔다.

그날도, 그 전날도, 언니와 함께라면 무서울 것도 아무것도 필요 없던 그런 날이었다. 골목 끝에서 놀다 보면 해가 기울고 골목을 따라 물질 갔다 돌아오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의 머리는 항상 물에 젖어 있었다. 검정 해녀 복 위엔 바닷물과 소금기가 가득했고 그 보다 더 진한 피로가 덧씌워져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미주와 언니를 보면 활짝 웃었다.


“오늘은 전복도 좀 잡았다. 자, 이건 미주 거.”


엄마는 잔뜩 잡아 온 망사리를 흔들고 미주에게는 작은 전복 껍데기를 내밀었다. 속이 촉촉하게 빛나는 전복 껍데기는 세상 가장 반짝이는 보물이었다. 깨끗이 씻어 햇빛에 바짝 말려 작은 상자에 차곡차곡 모았다.

아버지는 밤이 되면 배에 올라 물고기를 잡고 새벽에 돌아왔다. 마당 앞 수도에는 아버지가 잡아온 생선들이 커다란 고무 대야에 차곡차곡 담겨 있었고 빨래 줄에는 빨래보다 더 많은 물고기들이 말려지기 위해 널려 있었다.

다들 잠든 깊은 밤, 빨래 줄에 걸린 물고기들의 비늘은 달빛이 닿아 별처럼 반짝거렸다.

창문 너머 들어오는 잔잔한 바람과 그 반짝거림이 참 좋았다. 누군가는 가난하다고 힘든 삶이라고 했지만 그때의 미주는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런 평화로운 날들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 건 언니가 처음 물질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부터였다.


“언니야! 하지 마라. 엄마도 맨날 바다 나갔다가 힘들어한다 아니가.”


미주는 걱정 반, 불안 반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노? 이젠 엄마 혼자 물에 못 보내겠는데”


언니는 엄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질을 해보고 싶다고 물안경을 조심스레 닦았다.

엄마의 해녀일은 미주와 언니 중 누구 한 사람은 이어받아야 했다. 미주는 선생님이 되는 게 어릴 때부터 꿈이었고 공부도 제법 잘했다. 그래서 언니는 미주가 꿈을 이루었으면 하고 자진해서 물질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 마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괜히 화가 났다. 그냥 언니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다. 바닷물은 따뜻하지만 차가웠고 언젠가 무언가를 앗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언니는 웃었다.


“미주야. 무섭지 않다. 바다는 다 알잖아. 뭐든 다 알고 있잖아.”


그 해 여름,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엄마는 점점 악화되면서 언니의 첫 물질이 시작되었다.

언니와 엄마가 물질을 나가면 미주는 혼자 집에 남아 있어야 했다. 더 이상 골목을 뛰어다니는 일도, 숨바꼭질도 할 수 없었다. 언니가 물질하는 게 보기 싫어 바다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심심했던 미주는 마을 벽마다 낙서를 하고 돌아다녀 동네 사람들의 골치 덩이가 되었다.

해녀 물질은 쉰다는 게 없었다. 언니는 차츰차츰 제법 해녀가 되어 갔다. 처음 전복을 따왔을 땐 제일 먼저 미주에게 가지고 왔지만 미주는 받는 둥, 마는 둥, 시큰 둥 했다. 언니의 얼굴에는 어색한 웃음이 감돌았지만 그래도 바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해 주곤 했다. 미주는 안 듣는 척하면서도 언니의 목소리가 좋아 마음에 새겨 넣고 있었다.

엄마의 몸은 더욱 악화되어 물질을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고 엄마의 일을 언니가 맡아 시작하게 되었다. 조업이라는 게 날짜는 이미 정해져 있어 어촌계 사람들 중 누구 하나 빠지게 되면 남은 이들이 더 많이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결국은 엄마 대신 언니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사건이 있던 전날 강 씨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왔다.


“미주아빠! 자나?”


강 씨 아저씨는 그 특유의 건들거리는 발걸음으로 마당으로 들어왔다. 평소 마을에서 소문은 그렇게 좋지 않은 아저씨지만 일거리는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아 가지고 왔다. 아버지는 윗도리를 챙겨 입고 거실로 아저씨를 안내했다.


“뭔 일입니까?”

“내일 새벽 조업이 있는데… 요 몇 년, 미주 엄마가 아파서 새벽 조업은 못 나가지 않았나? 미혜가 시작했으니 새벽 조업에도 참여했으면 하는데?”

“거참… 아직 얩니다. 좀 더 크면 그때 나가면 안 됩니까?”

“이 사람아,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 하지만 다들 나이가 들어가니 그만두는 사람도 많고 새로 시작하는 해녀는 없으니 일손이 부족해서 안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 저 어린애를…”


아버지는 언니를 애 닳게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어차피 해녀로 살아갈 인생, 좀 일찍 시작하면 더 안 났겠나?”


강 씨 아저씨는 아버지의 대답은 뒤로 하고 문을 나섰다.


“그럼, 내일 오는 걸로 알고 준비시켜 보내래”


그 말만 남기곤 마당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 저는 괜찮아요. 새벽에 준비해서 나갈게요. 걱정 마세요.”


언니는 아버지에게 웃으며 말했다.


며칠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이 날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은 뭐가 못마땅한지 잔뜩 찌푸렸고 골목길로 해무가 깔리기 시작했다.


“언니야, 안 가면 안 되나?”


미주는 언니가 이 길을 나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떼를 써 봤다.


“에휴, 오늘따라 야가 와이 카노? 언니 맘 편하게 가게 안 놔두나?”


엄마는 속상하신지 언니 쪽은 보지 않고 미주만 타박하셨다.


“미혜야! 오늘 날씨도 안 좋고 하니 함안 댁 아주머니 꼭 따라다니라. 아주머니들 무리에서 벗어나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럼 강 씨 아저씨가 찾으러 올 거다. 괜히 해무 속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 더 깊은 바다로 쓸려 간데 알겠나? 진짜 조심해라. 새벽 물질이 망사리 가득 가져오긴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살길 못 찾을 수도 있다”


엄마는 애가 쓰이는지 언니에게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걱정 마세요. 잘 갔다 올게요.”


그 말을 끝으로 언니는 물안경과 테왁, 망사리, 까꾸리를 챙겨 골목 끝 바닷가로 걸어 내려갔다.

뒤따라온 미주에게 손을 뻗어 깨끗이 씻은 어제 잡은 전복 껍데기를 미주 손에 쥐여 주었다.


“걱정하지 마래”


미주가 낙서한 물안경을 흔들고 언니는 해무 속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숨기려는지 해무는 바다를 삼켰고, 미주는 언니가 올 때까지 마당 평상에 앉아 전복 껍데기에 그림을 그리며 기다렸다.

계속 바다를 쳐다봤지만 해무는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지 않았다.

해무가 내려앉은 바다는 끝내 언니를 삼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무는 더 짙어져 모든 걸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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