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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밤 Jan 13. 2024

마흔에 찾아온 가난 1

마흔에 가난해지는 방법


나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잘 모른다. 하지만 가난해지는 방법은 안다. 나는 지금 가난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선택들이 나를 가난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가난해지는지 궁금한가? 지금부터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






첫째, 어린 시절


나는 아파트에 산 적이 없다. 기억 속의 첫 번째 집은 골목길 끝자락의 단독주택이고, 두 번째는 재건축 직전의 허름한 빌라다. 늘 번화가와 가까운 집에 살았고 학교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두세 정거장을 가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배가 고프면 3분 짜장을 끓여 먹곤 했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모자람 없이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다. 함께 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가끔 놀러도 가고, 외식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하지만 부모님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셔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성실하고 근면한 분들이었지만 경제관념은 부족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어머니가 상암동에 아파트가 세워지니 이사 가자 했더니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건데 왜 아파트로 가느냐고. 친구가 곧 재개발이 될 옆집으로 이사 오라 했다고. 그래서 우리 집은 아빠 친구를 따라 강북 끝자락의 허물어져가는 빌라로 이사하였고, 나는 그곳에서 10대와 20대를 보냈다.


여전히 우리 부모님은 빌라에 사신다. 강북 끝자락의 번잡한 시장골목을 지나 여러 빌라들 사이에 자리한 집. 그리고 아버지는 얘기하신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집값이 곧 떨어질 거라고.



둘째, 대학생


나는 비학군지 고등학교에서 학원 한번 제대로 다니지 않았지만 공부를 잘했다. 반에서 1~2등을 도맡아 했고, 학급임원도 놓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게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 번 하시지 않으셨지만 늘 열심히 공부했다. 시험기간이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며칠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수시로 4년제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에 가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대학 동기들을 통해 나는 자신감 넘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어딜 가도 00 대학생이라고 하면 환영받았다. 사람들이 왜 학벌운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셋째, 취업 1.


우수한 학업성적, 다양한 경험 그리고 돈독한 인간관계까지. 나의 대학생활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문제는 대학 졸업 후였다. 부모님은 내가 빨리 취업하길 원하셨고 덩달아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졸업 후 내 목표는 오직 '취업' 하나뿐이었고, 어디든 붙기만 해 다오 하는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입사지원을 했다. 그리고 내게 가장 먼저 합격 통지를 보낸 회사에 곧바로 취업했다.


친구들이 대기업, 은행 등으로 취업할 때 나는 홀로 낯선 기업에 입사했다. 연봉이 얼마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취업을 했으니 더 이상 지원서를 쓰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졸업하기 전에 취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녔던 회사는 활기찬 곳이었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처럼 또 다른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하지만 회사의 초봉은 형편없었다. 연봉이 2천도 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었나 싶다. 하지만 난 그 연봉을 받아 들고도 속으로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면 오르겠지. 이 연봉이 앞으로 계속 내 월급이 되지는 않을 거야,라고.



넷째,  취업 2.


나는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밤늦게까지 남아 야근도 하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회사가 내 인생의 전부인양 모든 걸 바쳐 일했다. 집에서도 회사 일을 생각하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도 회사 일을 생각했다. 월급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은 너무 힘이 들어 부모님께 하소연했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된다고. 그때 아버지가 얘기하셨다. 원래 회사는 그런 곳이라고. 열심히 일하면 기회가 주어지는 거라고. 버텨야한다고.


열심히 일을 했더니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다. 피부에 염증이 일어나고 어깨가 굳어 팔에 통증이 생겼다. 나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피부과, 마사지숍을 다니며 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적은 월급은 통장을 스치듯 지나쳤고 변변한 저축 한번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집-회사-병원, 집-회사-병원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며 지냈다. 그렇게 나의 20대 후반을 보냈다.



다섯째, 결혼 1.


오랫동안 연애를 한 남자친구가 취업하자 양가에서 결혼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나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부모님의 의지는 강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가 오래 연애를 했기 때문에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을 안 하면 나중에 못할 수도 있다고. 한 남자와 연애기간이 긴 여자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온 세상이 내게 결혼을 하라고 외쳤다. 나와 남자친구는 서로 결혼하자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주변에서 결혼을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우리를 괴롭혔다. 귀찮았다. 그래, 어차피 결혼 안 할 거 아니면 그냥 하자. 다들 결혼하니까.



여섯 번째, 결혼 2.


결혼식을 앞둔 날이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신혼집을 같이 보러 다니자며 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이상했다. 한 번도 부모님께 반항한 적 없던 내 마음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빌라촌 곳곳을 누비다 돌아와 지금의 남편에게 말했다. 아빠가 하자는 건 안 하고 싶다고.


그리고 둘이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빠가 보여준 집들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이런 집 밖에 못 사느냐 했더니 지금의 남편이 말했다. 돈이 없다고. 그때 우리가 본 집들은 1억 초반대 전세였는데 그 전세금을 모두 빚을 내야 한다고 했다. 취업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돈도 모으지 못했고, 집에서 받을 형편이 못 된다고. 그때 나는 4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2천만 원 정도를 모아서 시집왔는데 그 2천만 원이 우리 신혼자금의 전부였다.







2편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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