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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밤 Sep 27. 2023

어머니, 명절을 앞둔 며느리는 컵라면을 먹습니다.


“어머니, 반찬가게에서 전을 파네요-”

“요즘은 많이들 사다 먹더라. 걱정하지 마, 재료 다 사다 놓았어.”

“네에~ 어머니”


‘걱정은 안 합니다. 어머니’

속으로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삼키고 전화를 끊었다.




“올해는 조금만 해야지”

늘 하시는 말씀이지만 명절에 전을 부치다 보면 오후가 꼬박 지난다. 일손은 나와 어머니 둘.


제사가 없는 집안인 줄 알았는데 결혼했더니 제사가 생겼다. 시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부터.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 자란 터라 거부감은 없다. 다만 제사 전날 부치는 전의 양이 만만치 않다. 먹을 입은 우리 가족, 아버님 어머님뿐인데 커다란 스텐대아에 동그랑땡 반죽이 한가득이다. 부쳐도 부쳐도 줄어들지 않아서 결국 반은 냉동고로 가버린 그때, 보다 못한 남편이 한마디 했다.


“엄마, 동그랑땡은 이제 좀 줄여도 되겠어.”


그래서 이제 동태전, 애호박전, 4색 꼬치전, 두부전, 쪽파김치전 그리고 양이 조금 적어진 동그랑땡을 부치면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전을 부치다가 기저귀를 갈기 위해 한 번씩 움직였는데 이제 아이들은 아빠랑 놀이터로 나간다.


“잘.. 다녀와…(난 전 부칠께)”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거리는 티브이 속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기름을 프라이팬에 붓는다. 어머니는 밀가루와 계란을 입히고 나는 그걸 집어 뜨겁게 달구어진 팬에 하나씩 올려놓는다.


전이 한판 완성되면 대나무 소쿠리에 한 줄로 줄지어 담아 베란다에 내어놓는다. 맨 처음 예쁘게 부쳐진 아이들은 제사상에 올려야겠다며 어머니가 따로 남겨둔다.


처음 전을 부칠 때는 어머니 말씀에 따라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척척이다. 날짜가 지난 커다란 종이달력을 뜯어서 바닥에 넓게 펼치고 그 위에 풀어놓은 계란과 밀가루, 쟁반, 소쿠리, 키친타월, 식용유, 그리고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구어놓고 외친다.


“어머니, (일 할) 준비 다 됐어요~”




제사상을 차리고 전을 부치는데 익숙해지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내 나이 앞자리가 바뀌고 어머니가 조금씩 마음을 내비치시면서 전을 부치며 명절분위기를 내고 싶은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시아버지의 정이 남달랐던 어머니시기에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싶으시다는 어머니 마음도 받아들였다. 수동적이었던 며느리가 알아서 움직이는 며느리가 되자, 어머니도 안 하던 말씀을 하셨다.


“연휴에 일 있거나 여행 가고 싶으면 얘기해. 매번 안 와도 된다”


어머니도 며느리가 처음이고, 나도 시어머니는 처음이라 크고 작은 오해도 많았다. 하지만 나와 어머니가 동의한 게 있다면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는 것. 말 안 해도 아는 사이도 아니며 이해해 주는 것은 더더욱 어렵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며 잘 지내자는 것이 나와 어머니의 결론이다.


속에 담기보다 솔직하게 말하며 푸는 나와 어머니의 기질은 잘 맞는다. 덕분에 고부갈등 없는 남편은 명절에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눈치 없게 잘 지낸다.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




그럼에도 내일 전을 부칠 생각을 하니 속이 느글거리고 입맛이 떨어진다. 이제 어머니랑 있어도 어려움 없고, 전 부치는 것도 할만한데 왜 그럴까. 아직 10년 차 며느리 내공이 부족한 걸까.


결국 컵라면을 하나 뜯었다. 알 수 없는 이 마음을 라면으로 채우며 명절을 앞둔 며느리는 각오를 다진다.


이번 명절도 웃으며 잘 지내고 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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