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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영 Aug 08. 2024

나는 경력이 쌓일수록 말이 없어지는 미용사다.

아무렇지 않게 묻는 인사가 상처가 될 수 있음을.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는 곧 미용 10년 차가 된다.

흔히 미용실에 가면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머리를 완성하곤 한다. 그런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나는 친해지기 어려운 미용사이다.

내가 미용실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열여덟에는 선배들이 고객과 몇 마디, 무슨 말을 했는지 매일같이 체크를 했다. 지금은 많이 하지 않는 핸드마사지 서비스를 하러 가며 온타월과 핸드크림, 내가 앉을 의자를 들고 “핸드마사지 진행해 드리겠습니다”로 운을 띄워 마사지를 진행하는 약 3분에서 5분 남짓한 시간에 어떠한 대화를 이끌어냈는지 체크하며 피드백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던 어릴 적 나와 비교하면 지금은 머리만 하는 기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객과 친분을 쌓는 것은 미용사의 숙명이다.

단골을 만들고 그 단골로 내 예약을 채워 일을 하는 시스템이기에 남자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자녀는 있는지, 어디에 사는지•••

사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가는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자 고객메모에 잔뜩 적기도 한다. 그랬던 내가 왜 머리만 하는 미용사가 되었을까.


원래도 내향적인 성격인 나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에 시간이 꽤나 걸리는 스타일이다.

이제는 나름 다져진 사회생활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렵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하나 굳이 먼저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려하지 않는다.


워낙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인 만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스타일링을 위해 “끝나고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던 질문에, 그게 왜 궁금하냐고 꼬치꼬치 캐묻던 남자고객님,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무섭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남자친구는 있냐고 물었던 사소한 질문에는 밝은 학생들이 엊그제 헤어졌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폈다••의 놀랄만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서로 욕해주며 마무리하기도 했던, 씁쓸하지만 유쾌했던 대화도 있었고,

결혼하셨냐고 물었던 질문은 “나이가 몇인데 당연히 했지~!”또는 “안 했어요”라고 나뉘기도 했으며,

자녀분은 있으시냐고 물었던 질문은 “당연히 있지~!” 와 “애는 없어~”•••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고객님들과 친분을 쌓아가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 하러 와서 듣기 싫은 질문을 들어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겠구나 ‘


웃으며 넘겼던 밝은 학생들의 이야기가 마냥 어린 학생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결혼을 했냐고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원치 않는 압박이 될 수도, 이별로 상처가 있을 수도.

자녀가 있냐는 질문도 마찬가지이다. 원하지만 오지 않을 수도,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어린 나이에는 미처 몰랐던 아픔들을  어느새 들리기도, 보이기도, 나에게도 다가오기도 하더라. 그때 깨달았다.

세상엔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픈 일들이 많구나. 굳이 꺼내려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겠구나.


몇 년을 한 달에 두 번씩 오시는 고객님은 오실 때마다 자식이 똑똑하다며 자랑을 하고 행복해하셨다.

그 자녀분이 나에게 머리를 하러 온 어느 날의 표정에서 미처 몰랐던 그림자가 보였다.

오후 늦게 머리를 하러 온 학생이라, 어디 들렀다가 머리 하러 왔냐는 질문에 정신병원에서 약을 타왔다고 했다. 그날의 충격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괜히 올 때마다 생각 없이 “공부 잘한다며 좋겠다”하는 오지랖을 부렸다. 그 공부가 그 아이에게는 짐이었을 수 있다, 공부 잘하는 타이틀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그래서 질문이 부쩍 줄었다.

거의 대부분의 고객님과 머리에 관련된 이야기만 한다. 어쩌다 원장님한테 한소리씩 듣기도 해 봤다.

미용실에 인터넷 문제로 음악이 잠깐 끊긴 때,

적막밖에 안 흐르더라고, 이게 미용실 맞냐고.

그냥 걱정이 많아서 문제지만, 이렇게 조금 느리더라도 고객과 서서히 물들여가는 미용사가 되려고 한다.


세상에 어떠한 아픔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그게 어렵다면, 어렵지 않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그렇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나라도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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