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 번 할 수 있을까 싶었던 나의 버킷리스트, 긴 해외생활 그 이후
스물이 넘어서 처음으로 내디뎠던 해외라는 공간은 나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한국사람이 이렇게 외국에서 일도 하고 잘 살아간다니. 그때부터였던 걸까
내 세계를 더 확장시키고 싶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대문자 P를 그대로 가지고 출국해 버렸다.
처음에야 여행 같고 설레었지만 불과 열흘이 지나기 전 나는 외로웠다.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던 나는 이 장소, 지금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은행에 가서 캐나다 계좌를 발급받아야 했고, 캐나다에서 일하기 위해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야 했다. 아니 나 영어를 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온 거지?
해외여행과 해외생활은 너무나 다르다.
돈을 쓰고 즐기는 여행에서는 누구나 나를 반겨주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살아가는 환경에서 말도 못 하는 외국인이 귀찮게 자꾸 묻는다면 그건 누군가에겐 짐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 나에게 왜 이렇게 짧게 다녀왔냐고 묻는 사람들도 꽤나 있지만 나는 나만의 기간을 끝내고 왔다. 복잡했던 내 마음을 정리하기엔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한 때는 꿈만 같던 긴 해외생활을 해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자리 잡고 일할 때인데, 뭘 얻고 싶어서 가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부분은 크게 돈, 여행, 영어 세 가지 중 뚜렷한 목적을 갖고 가는 워킹홀리데이지만 나는 그 세 가지가 다 아니었으니.
세 가지를 다 포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쉼, 그리고 경험이다.
해보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을 때 갈증이 심한 나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평생을 갈망하며 삶을 살아갈 것을 알았다.
지칠 대로 지쳤던 나는 쉼이 필요했다.
나에게 쉼은 일을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할 시간, 여유 있는 삶, 나를 챙길 수 있는 시간. 그 정도의 쉼을 원했다.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는 않는다.
내가 해외에서 잘 살아남아서 돌아온 것,
해보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내 뜻대로 해본 시간을 가져본 것.
일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일을, 일을 하다가 쉼과 여행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휴가를.
만약 해보고 싶은 해외생활을 해서 얻은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꼭 뭘 얻어야 되는 거냐고 반문하고 싶지만, 굳이 대답을 하자면 할 말은 많다.
해외에 나가 살아보니 더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원래도 독립적인 성향이지만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전은 내가 챙겨야 하고, 물가 높은 나라에서 지내서 그런지 경제관념도 생겼다.
남들 다 목적인 돈, 여행, 영어 어느 하나 잘한 것은 없지만 못하진 않았다고 확신한다.
내가 가진 시간에서만큼은 노력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나에 대해 확실히 안 것이 아닐까.
사람에서의 관계에서도 예전만큼 기대지도 바라지도 상처받지도 않는다.
싫은 것과 좋은 것을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다.
좋은 것을 아낌없이 아끼는 건 전과 다름없지만, 싫은 것들을 싫어하느라 보냈던 시간들이 없어졌다.
싫은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내 시간이 아깝기에 무시에 가깝게 흘려보내곤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욕심이다.
이것은 내가 일과 학업을 병행하던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욕심이 남아있었나 보다.
일도 잘하고 싶고 쉼도 잘하고 싶은 것은 가능하나,
무언가를 뛰어나게 잘하고 싶다면 나의 포커스는 한쪽에만 치우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늘 고민하지만,
이제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 것이다.
그때의 내 마음 가는 대로.
일에 열정을 쏟고 싶다면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무릎멀쩡할 때 많이 다니자며 또 해외를 돌아다닐지 모른다.
또 언젠가는 일도 여행도 아닌 가정에 충실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며, 셋 다 아닌 나의 자기 계발에 투자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부자도, 금수저도 아니기에 하고 싶은 것만을 쫒을 수 없지만 가능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낼 수 있게 스스로가 서포트하는 수밖에.
그 누구를 부러워하며 미워하며, 혹은 나 자신을 질타하며 보내는 시간을 없애고 아주 밝은 날들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만일 내 상황이 안 좋아져도 말이다.
누군가가 워킹홀리데이 혹은 해외생활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yes/no라고 답할 수 없다.
모든 것엔 얻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다.
누군가에겐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기에 쉽게 조언도 추천도 할 수없지만 그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응원해주고 싶다.
좋은 것도 많이 보고 좋은 경험도 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뿐, 또 망설이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나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