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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Feb 16. 2023

부르는 마음

다정함의 총량

정말 오랜만에 오빠를 만났다. 나와 두 살 터울인 오빠는 사업을 하느라 무척이나 바빠서 명절 때조차도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오빠!" 하고 불렀다가, 공연히 생각에

잠겼다. 오빠를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던 것이다. 또 가만 생각해 보니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이 사람이 내가 오빠라고 부르는 세상 유일한 대상이 아닌가.


모든 대화를 “오빠가~”로 시작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썩 유쾌하지 못해서일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성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극히 꺼리는 편이다. 누군가를 오빠라고 부르자면 왠지 낯이 간지럽기도 하고, 혹여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진 않을까 노파심마저 들곤 했다. 이 세상 다정한 호칭이 영 입에 붙지 않았다.


오빠라는 말이 싫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다정함이 꼭 좋아서 아무에게나 붙이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가뭄에 콩 나듯, 꼭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이들도 있었다. 오래 두고 보아 살가운 정이 붙은 푸근하고 다정한 사람들. 마치 누가 누가 다정하나 대회 시상자라도 된냥 벅찬 마음으로 숨을 고르고 나서야 그들을 오빠라고 불러보곤 했었다. 막상 단 하나뿐인 친오빠를 부를 때는 그렇게 퉁명스러울 수 없었으니 이건 또 무슨 모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오빠들을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니 꽤나 골치 아픈 상황이 많았다. 선배님이라는 만병통치약조차 통하지 않아, 도무지 무슨 호칭을 붙여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늘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조차 호칭 때문에 망설이는 나로서는 그들에게 여기요, 저기요 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시원하게 오빠라 부르고 할 얘기만 하면 될 것을. 그들의 시야가 미치는 곳까지 다가가서 쭈뼛거리며 타이밍을 노리거나, 실없는 소리로 그들의 주의를 끌고 난 뒤에야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이어가려 애쓰곤 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된 후에는 직함이 있으니 좋았다. 주임님, 대리님, 과장님.. 그마저 여의치 않는 이들은 아무개님이라고 부르면 되었다. 종종 "에이, 그냥 오빠라고 불러!"라고 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철저하게 "님"자를 붙였다. 큰 고민 없이 붙이면서도 상대에 대한 적절한 존중을 드러낼 수 있으니 님이라는 호칭은 내게 여간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오빠라는 호칭이 좋다. 너무 좋아서 쌈짓돈마냥 꽁꽁 묶어두고 야금야금 꺼내 불렀나 보다. 마치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듯이. 구두쇠처럼 아까워하면서.


이제  작디작은 총량마저 채울 일이 없다 생각하니, 낯간지럽게 불러볼 대상을 애타게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누가 다정하나 대회의 역대 수상자들을 떠올려보지만, 공유하지 못한 시간만큼 그들은 어느새 멀어져 버렸다. 동갑내기 남편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몸에 맞지도 않는 애교를 시전 해보지만, 남편은 “, 오빠  없어~"라고 응수해 기어이 흥을 떨어뜨리고 만다. 정녕  다정다감한 호칭을 누구에게도 건넬  없는 신세가 돼버린 것인가.


호칭은 호칭일 뿐.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저 오랜 시간 두고 쌓아온 정, 그 다정함이겠지.

오빠라고 부를 사람은 주위에 없지만, 대신 소중한 이들을 더 다정하게 불러보면 될 일이다. 엄마, 아빠, 할머니, 친구들.. 어쩌면 몇몇 "님"들까지. 이왕 하는 거 시상 범위를 대폭 넓혀보려 한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벅찬 마음으로 숨 고르고 불러봐야지. 다정함에 정해진 총량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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