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엄마와의 마지막 동거 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 살아계실 동안, 아니 내 삶에서 엄마와 내가 같이 살았던 마지막 추억이자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작은 오빠네 집 누수공사로 인해 가족들이 약 두 달간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엄마는 당분간 내가 모시고 있기로 했다.
지난 2월 팔순잔치 이후 엄마는 맥이 풀리셨는지, 극도로 기력을 잃으셨고 설상가상 코로나까지 겹쳐 우울증 직전에 이른 상태였다. 사실 나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갑갑하고 짜증 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처럼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있다시피 하는 노인들에게는 더더욱 힘들 수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농협 조합원들끼리 가는 산악회도, 동네 계 모임에도 못 나간 지 벌써 몇 달째라고 하셨다. 이물 없이 집으로 놀러 가던 친구분들조차 안 만난 지 벌써 한참이라고 하셨다.
엄마에게는 특히나 코로나가 우울하고 갑갑한 감옥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어쩌다 엄마에게 안부전화라도 드릴 때면 "엄마, 밖에 나가면 위험하니까.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 꼼짝 말고 계셔요." 늘 당부하곤 했었다. 그렇게 엄마는 집안에 갇힌 채, 입맛도 의욕도 잃은 채, 겨우겨우 흔들리는 손으로 힘겹게, 지겹게 숟가락질을 하고 계셨던 거다.
5주 전,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모습은 우리 엄마가 아니라 갑자기 할머니가 된 듯했다. 평생을 새까맣게 염색하고 살아오셨던 엄마의 머리카락이 새하얀 구름같이 은발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눈에 익고 나니 검은 머리보다 훨씬 더 밝고 잘 어울리셨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 집에서, 나의 엄마로, 우리 애들의 외할머니로서 동거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엄마가 우리 집에 온 지 36일째.
엄마 오시고 한 3주간은 꼬박꼬박 시간을 내어 한의원도 가고 만석공원에도 갔었다. 내가 마침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개인사업자로 일을 시작한 때라, 오후부터 초저녁까지는 오로지 엄마에게 시간을 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엄청 큰 할애였고, 일이었다. 엄마에게 할애하는 하루 4시간 정도의 시간이 내게는 엄청 큰 비중이었다. 매일 새벽까지 앉아 제안서를 쓰며 하루에 보통 4,5시간 잠을 잤다. 그러면서도 늘 할 일이 많고 시간이 모자랐다.
그때 나의 심정은 사실 좀 버거웠었다. 마치 집에 애기가 한 명 와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큰 아기였다. 밥때가 되면 '뭘 차려드려야 하나' 아무래도 아이들보다 더 신경이 쓰였다. 사실 우리 애들은 배고픔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한번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고... 일을 마칠 때까지 스트레이트로 달리는 스타일이라 애들도 나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달랐다. 식사를 제때에 챙겨 드시지 못하면 가뜩이나 어지러워하시는데 곧 쓰러질 것만 같았고, 사실 매끼마다 드시는 약 때문에라도 식사를 제 때에 하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운동도 같이 해야 했다. 몸의 기울기가 앞으로 15도 정도 기울었고, 예전보다 다리 근육도 많이 빠져있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매일같이 걸으려고 노력하셨다. 하루라도, 귀찮다고 안 움직이면 내일은 더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해질녘이 되면 내 앞을 서성거리시곤 했다. 내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벽 너머로 빼꼼히 나를 훔쳐보기도 하셨다. "엄마, 만석공원 갈까요?" 내가 자판기에서 손을 떼고 나갈 준비를 시작하면 엄마는 벌써 현관 앞에 마스크를 쓰고 서 계셨다. 내가 마스크와 핸드폰을 챙기고 있으면 엄마는 벌써 현관문을 열고 서 계시곤 했다.
나무다리 아래 득시글대는 아주아주 큰 잉어들을 보는것도 재밌어하셨다.
그렇게 엄마와 3주간을 거의 매일같이 걸었나 보다. 올해 유난히도 길었던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지거나, 내가 외부 일정이 있어 나가는 날을 제외하곤 나를 위해서든 엄마를 위해서든 서로 걸으려고 노력했다. 보통 집에서부터 출발해 약 2.3킬로의 만석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면 1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엄마가 끝까지 걸어서 집에까지 올 수 있을까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힘들면 벤치에 앉아서 쉬시도록 권해드렸다. 엄마는 첫날엔 정확히 4번을 벤치에 앉아 쉬셨다. 다음날엔 3번만 쉬셨고, 내가 전화받느라 까먹고 쭉 걷는 바람에 1바퀴를 쉬지 않고 걸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불평하지 않고, 참을 줄 아셨다. 아니 점점 걷는 힘이 늘기도 하셨다.
첫 일주일간은 엄마 속도에 맞춰 걸었다. 아장아장, 따박따박 걷는 엄마가 '우리 아기 첫걸음마'처럼 마냥 신기하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집안에선 좁은 보폭으로 더듬더듬하던 걸음걸이가 펑 뚫린 공원에만 나오면 힘차게 걸어 나가는 게 마냥 신기했다. 새하얀 구름머리에 파란 하늘색 셔츠를 입고 힘차게 걷는 엄마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했다. 엄마와 나는 초록색으로 우거진 연잎 속에서 첫 연꽃이 핀 날도 함께 걸었고, 생각보다 연꽃이 더디게 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공원에서 걷는 엄마의 뒷모습에선 강인한 삶의 의지와 생명력이 느껴졌다.
만석공원 걷는 엄마 뒷모습. 엄마가 올여름 자주 입으시던 옷
그런데 엄마 속도로 산책하듯이 걷는 게 내겐 좀 맹숭맹숭했다. 당시 허리 치료를 위해 한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걷는 운동이 내게 별로 도움이 안 됨을 엄마도 알게 되셨다. 그 후로는 엄마는 엄마의 속도로, 나는 내 속도로 빠른 걷기를 했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엄마는 내가 옆에 없어도 잘 걷고, 내가 2바퀴를 돌고 오면 어김없이 처음 헤어졌던 장소 벤치에 앉아 날 기다리고 계셨다.
공원에서 돌아오면 나는 곧바로 샤워를 했다. 빠른 걷기로 인해 땀도 많이 났지만, 워낙 오래 지속된 장마로 인해 온 세상이 물기로 가득 차 있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어지간히 땀 흘리고 덥지 않고서는 샤워를 잘 안 하시려고 했다. 시원한 물이나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곧바로 '찬 바닥에 좀 드러눕고 싶다'면서, 거실 마룻바닥에 눕곤 하셨다. 함께 지내다 보니 엄마가 샤워를 자주 안 하시는 걸 알게 되었다. 기운이 없어서, 혼자 씻는 게 엄두가 안 나서 잘 안 씻으려 한다는 것도...
엄마가 오신지 1주일 만에 처음으로 샤워를 시켜드렸다. 엄마의 샤워는 우리가 늘 하는 샤워보다는 좀 더 긴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목욕에 가까운 씻기였다. 손바닥을 끼워쓰는 초록색 때수건과 혼자서 등을 닦을 때 사용하는 빨간색 긴 때수건, 거품이 잘 나는 기다란 때수건까지 골고루 사용하시면서 엄마는 직성에 풀릴 때까지 밀고 닦고 하셨다. 샴푸로 머리를 감으실 때는 간격이 굵은 플라스틱 머리빗까지 사용하시면서 머리카락을 빗겨내리기도 하셨다. 내가 보기엔 머리카락을 빗는 게 아니라 두피를 시원하게 긁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엄마의 방식대로 엄마의 목욕을 도와드렸다. 등도 시원하게 밀어드리고, 물도 미지근하게 온도를 맞춰드렸다. "나는 왜 이렇게 때가 잘 찌는지 모르겠더라 젊었을 때부터. 니 아버지는 나랑 똑같이 목욕을 갔다 왔어도 때가 하나도 안 꼈는데.. 꼭 나만 맨날 때가 찌는 거야. 그거 참 희한하대. 그래서 니 아버지가 자주 그랬어. 당신은 왜 맨날 살은 안 찌고 때만 쪄." 하고.
"헐.. 그럼 내가 엄마를 닮은 거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나 씻겨줄 때마다 그 얘기 자주 하셨었잖아요." '너는 왜 맨날 살은 안 찌고 때만 찌니.' 하면서요. 엄마의 보드랍고 축 처진 살들을 들어 올려 물을 뿌려주며, 어린 시절 나를 씻겨주던 엄마의 억센 손바닥이 생각났다. 겨울날 나를 목욕시키는 날이면 커다랗고 빨간 다라에 뜨끈하게 물을 받아 윗목에 놓고 때를 밀 때면, 엄마의 손바닥이 어찌나 억세던지! 나는 엄마가 마치 내 가죽을 다 벗길 것만 같았었다.
엄마 오신 지 벌써 5주, 36일째. 엄마를 좀 더 자주 씻겨드려야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자꾸 나는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5번쯤 목욕을 하셨던가? 이 정도면 거의 노인학대 수준인 거 같다는 자책감이 들 정도로... 여하튼 제안서 3개를 끝내 놓고, 계약과 사업 진행을 동시에 하느라 내가 한 1주일 특히나 정신없이 일을 했던 거 같다. 점심도 5시, 6시가 겨우 되어 먹을 정도로 숨쉴틈도 없이 며칠을 보내고 외출해 돌아오니 엄마가 혼자서 목욕을 하고 계셨다. 나는 순간 '아차'싶어 얼른 옷을 벗어놓고 목욕탕에 들어갔다.
"엄마 너무 죄송해요. 많이 꿉꿉하셨죠? 엄마, 씻고 싶다고 진작 말씀을 하시지. 말을 안 하시면 제가 자꾸 잊어요." 엄마에게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초록색 때수건에 손바닥을 끼고 평소보다 더 힘을 실어 등부터 싹싹 밀어드렸다. 그리곤 다시 비누칠을 해서 다시 한번 더 시원하게 밀어드렸다.
"아녀 괜찮어, 접때처럼 엄청 땀 흘리고 걸을 때 아니면 괜찮어." 그러더니 이제 그만 피곤할 텐데, 나가도 된다고 하신다. 이제 엄마 혼자 해도 된다고. 정말 괜찮냐며 손을 씻고 돌아서는 내게 말하신다.
"딸내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