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백설기

우리 엄마 이야기(2)

by 수줍음

엄마 우리 집에 오신지 40일째.

지난주부터 일요일 제외하고 일주일째 바깥 일정이 있었다. 요즘은 강의를 하든,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든 늘상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인지, 몇 시간만 일하고 와도 극도로 피곤해진다. 러시아워에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오니 엄마와 아이들이 반겨준다. 제일 먼저 엄마, 그다음에 큰 딸, 그리고 오늘은 고3 둘째 딸도 있었다. 막내는 영어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오 마이 스위트 홈~~"


집에 오자마자 약 40분 후에 있을 웨비나 참석을 위해 서둘러 상을 차리고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저녁 메뉴로는 내가 사 온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내놓았다. 큰 딸에게는 며칠 전부터 먹고 싶어 벼르던 짜파구리를 끓여달라고 주문했다. 서둘러 손을 씻고 와 자리에 앉고 보니 식탁 위 접시 위에 하얀 백설기가 소담스럽게 담겨있었다. 냉동실에 있던 백설기를 쪄놓으신 모양이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에 어른 손톱만 한 콩이 박힌 것이 마치 꽃송이 같았다.


배가 잔뜩 고프기도 했고, 시간도 촉박한 상태라 샌드위치 포장지를 서둘러 벗기며 백설기를 한 덩이 베어 물었다. 쫀득쫀득함과 포실포실함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 딱 씹기 좋은 식감이었다.

'평소 내가 쩌내던 백설기와는 왜 이렇게 다르지?' 문득 엄마가 쪄낸 백설기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우리 집 냉장고 냉동실 맨 아래칸에는 언제부턴가 늘 백설기와 절편 같은 떡들이 들어있었다. 절에 다니시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식구 많은 우리 가족을 위해 자주 챙겨주시곤 했는데.. 그렇게 두 어머님들이 주시는 양보다 우리가 먹어치우는 속도가 훨씬 느렸기 때문이었다. 떡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백설기는 애들이 좋아하는 떡이긴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냉동실에 들어갔다가 쪄낸 백설기는 맛이 없었다. 묵은 냉장고 냄새가 배어있을 뿐 아니라, 겉은 축축하고 흐물쩍한 식감에 속까지는 수증기가 전달이 잘 안되었는지 푸석푸석하고 건조했다. 그런데 엄마가 쩌낸 백설기는 겉과 속이 균일하게 포실포실 쫀득쫀득했다.


엄마는 보통 바로 먹지 않고 남긴 떡은 이렇게 전자 밥통 안 밥 위에 얹어놓고 보관하곤 하신다.


"엄마, 이 떡 어떻게 찌신 거예요? 엄마가 찌면서 쪼개신 거예요?"

"응 그랬지. 모양새가 안 예쁘지?"

"아니요! 좋아서요. 먹기도 적당한 크기에 쫀득쫀득 맛있게 잘 쪄졌네요!


엄마는 지혜로우셨다. 나는 백설기를 찔 때 큰 두부만 한 한 덩어리를 통째로 찜통에 넣고 쪄내곤 했었다. 꽁꽁 언 백설기 속까지 익히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떡 표면은 거의 죽처럼 흐물 쩍 해졌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나면 속은 푸석푸석 건조하고, 겉은 물컹물컹 싱거웠다. 문득 엄마가 어떻게 쪄냈을까 상상해봤다. 엄마는 아마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뜨겁게 올라오는 수증기를 참아가며 떡을 쪼개 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쪄내야 빠른 시간 안에 쫀득쫀득 찔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으리라!


새삼스럽게 엄마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정확히 한 달 전에도 나를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지 일주일 되던 날, 7월 25일은 커리어코치협회 임원들과 함께 쓴 내 첫 책이 출간되는 날임과 동시에 신도림 디큐브시티에서 '북쇼'를 한 날이기도 하다. 내게는 너무나 의미 있고 설레이는 특별한 날이었다.


7.25일 <한국형 커리어코칭을 말한다> 북쇼에서 저자 인터뷰 장면


나는 한 껏 전문가처럼, 그렇지만 동시에 유니크하게 보이고 싶었다. 고민 끝에 평소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하이웨이스트 스커트를 꺼내 들었다. 혹시나 살펴보니 역시나 하늘색 실밥이 얼기설기 보이고, 치마 뒤트임이 한껏 올라가 있었다. 오 마이 갓~~~ 이대로 입고 갈 수는 없었다. 잠시 귀찮음에 망설이다가 특별한 날에 이런 치마 실밥 때문에 내 이미지를 실추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나를 다독였다. 반짇고리를 꺼내왔다. 그리고 연구를 시작했다.


'왜 내 치마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뜯어지는 걸까? 더 이상 안 뜯어지게 좀 더 튼튼하고 완벽하게 꿰맬 수는 없는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내가 이래 봬도 홈질이 아니라 매번 박음질로 꿰매었는데.. 이만하면 꽤 튼튼하게 한 것 같은데.. 왜 자꾸 풀어지는 걸까?'


직업상 H라인 원피스나 스커트를 자주 입는다. 예전에 남편 SUV를 물려 타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치마가 뜯어졌었다. 그 때문에 내 차를 살 때는 세단 종류를 사기로 마음먹었을 정도였다. 차를 바꿔 탄 이후에도 여전히 내 치마는 자주 실밥이 풀렸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 빠른 걸음걸이 때문일 거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날은 엄마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 박음질 스타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선택한 박음질이 튼튼한 바느질 기법이긴 하나, 나는 늘상 바쁘고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큰 땀으로 듬성듬성 박음질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최대한 짧은 간격으로 촘촘히 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끝까지 바느질을 한 후 바로 매듭을 짓지 말고 다시 왔던 길로 몇 땀을 되돌아가 매듭을 지으면 쉽게 안 풀릴 거라고 하셨다.


과연 그랬다, 엄마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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