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해준 음식
엄마가 드디어 대전에 내려가셨다, 엄마 살던 집으로. 7월 18일에 오셔서 9월 27일에 내려가셨으니 두 달 하고도 9일, 날수로는 72일을 우리 집에 계셨던 셈이다. 엄마는 진작부터 대전에 내려가고 싶어 하셨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집에 가고 싶어 하셨다. 평생을 당신 집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적이 없으셨으리라. 또한 아무리 자식일지라도 조금이라도 폐 끼치는 걸 싫어하시는 엄마의 성격상 우리 집에 있는 기간 동안 여러 가지로 불편하셨을 거다. 엄마가 와 계신동안 나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이 모두 힘들었을 거라고, 특히 고3인 둘째가 제 방을 내어주어야 해서 더욱 힘들고 불편했을 거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셨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엄마는 몇 번이나 미안해하시며 계속 신경 쓰고 계셨었다. 그리고 엄마 역시 내색은 안 하셨지만, 나를 비롯한 우리 집 식구들에게서 뭔가 못마땅하고 불편함을 느끼셨으리라.
그래서 엄마가 내려가시는 걸 딱히 잡을 명분이 없었다. 작은 오빠네 집은 보험사끼리의 이해관계 타산으로 인해 여전히 공사는 시작되지 않고 있었지만, 추석을 앞둔 엄마의 마음은 이미 되돌이킬 수 없었다. 모시고 다니던 분당서울대병원 도파민 검사와 MRI 검사가 끝나자마자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마음이 급해지셨고, 엉덩이 가볍고 속 깊은 애들 아빠가 골프를 핑계로 대전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물론 엄마를 핑계로 일요일 골프 라운딩을 나가며 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일석이조의 효행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 남편과 엄마는 집을 나섰다.
나는 엄마의 빈자리가 내내 서운했다. 엄마가 내려가시기 전부터, 내려가는 날까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엄마가 자꾸 가시려고 하는 게 마음속으로 은근히 서운했다. 내려가고 난 뒤는 물론 더욱 말할 것도 없지만. 엄마가 앉아계시던 자리, 엄마가 시원하다며 자주 누워계시던 모습,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쓰시는 엄마 전용 베개, 여전히 우리 집 목욕탕에 걸려있는 1주일에 한 번씩 쓰시곤 하던 빨간색과 초록색 때수건까지... 엄마가 계시던, 엄마가 쓰시던 흔적들이, 엄마의 부재를 더욱 실감 나게 했다. 이래서 사람 든 자리는 표 안나도 난 자리는 표 난다고 했던가! 엄마도 우리 식구들 속에 북적북적 계시다가, 지금은 다시 혼자 남겨진 시간이 너무 많아 쓸쓸하시겠다! 아이고 우리 엄마, 외롭고 쓸쓸해서 어쩔꺼나...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형제들도 모이지 않기로 상의해 추석날 저녁에 지내던 아버지 제사도 찾아뵐 수가 없었다. 엄마를 생각하며 냉장고에서 열무김치 한 사발을 꺼냈다. 엄마가 묵은 김치만 먹으려니 도저히 입맛이 없으셨는지 우리 집에 계실 때 벼르고 별러서 담아주신 열무김치였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으시니 열무김치 담그는 것도 엄두가 잘 안 난다고 하셨다. 엄마는 열무김치를 담가 놓으시고는 매 식사 때마다 드셨다. 열무김치 없었으면 어떻게 밥을 드셨을까 싶을 정도로, 입사귀는 잘게 잘게 잘라 드시고, 국물은 수시로 떠서 드셨다. 엄마는 매 끼니때마다 떠드실 국물이 필요한 듯했다. 나이를 먹으면 목이 자주 마른가, 식사 때 유난히 그러신 듯했다.
9월 7일,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엄마가 열무김치 담그시는 걸 거들며 기록해보았다. 예전부터 어깨너머로 흔하디 흔하게 보았던 풍경이지만 막상 내가 혼자서 담그려고 하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슬프지만... 언젠가 엄마가 안 계시고 더 이상 담아줄 사람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엄마가 담아주시던 열무김치를 내가 스스로 담아 먹을 수 있도록, 엄마의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놓기로 했다. 아니 일단은 기록하고 기억해두기로 한다.
1. 밀가루풀 쑤기. 이렇게 찬물에 넣고 맑게 푼다. 겨울 김장김치가 아니므로 굳이 찹쌀풀을 쑤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농도가 중요한 듯하여 동영상으로 저장해두었다.
2. 바가지에 한가득 물을 받아 냄비에 붓고 물을 끓인다. 물이 끓으면 1번에서 개어놓은 밀가루 물을 부어 저어가면서 풀을 끓인 후 식힌다. 밀가루풀을 너무 멀겋게 쑤면 맛이 없다고 한다, 조금은 되직한 느낌으로.
3. 풀 식히는 동안 각종 재료 씻어놓고 손질하기. 엄마는 열무 1단, 애기배추(얼갈이) 1단, 그리고 쪽파도 1단을 쓰셨다. 사진은 이미 사용하기 시작한 쪽파를 찍어서 실제 사용 양보다 양이 적게 나왔다.
4. 식은 밀가루 풀에 양념하기 : 한소끔 식고 나면 소금을 한주먹 넣어 간을 한다. 맛을 보아 너무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짭짤할 정도로 간을 한다. 마늘 한주먹, 생강 2톨(엄지손가락 크기 정도), 고춧가루, 양파 1개 반, 빨간 고추, 청양고추, , 사과 1개, 배 1개 등을 갈아 넣어 섞는다. 그리고 간을 한번 보면 제법 열무김치 양념의 풍미가 느껴진다. (사진은 양념이 좀 밍숭매숭하여 청양고추를 뒤늦게 몇 개 썰어넣은 후에 찍었다)
5. 3번에서 손질해놓은 야채를 한켜 쌓고 4번에서 만든 양념을 드레싱 한다. 반복한다.
6. 완성된 열무김치. 풋내 날 때 바로 먹어도 좋고, 맛 들여 먹고 싶으면, 한 그릇씩 미리 꺼내놓았다가 살짝 맛 들여서 먹는다. 나는 풋내 나는 열무김치는 첫날만 좋다, 다음날부터는 바로 익혀서 먹는 걸 좋아한다.
열무김치는 주로 입맛 없는 봄철부터 초가을까지 담가먹는다. 옛날 엄마 시절엔 겨울에 먹던 김장 김치 떨어졌을 때랑 김장김치 담기 전에 담아먹었다고 하셨지만, 요즘에야 겨우내 묵은 김치에 질렸을 때쯤, 입안에 개운하고 상큼하게 풋내 나는 야채가 먹고 싶을 때 담아먹는 것 같다. 나 새댁이었을 때 , 한창 애둘 키우느라 바쁘고 뭘 할 줄 아는 것도 없었을 때 어느 봄 5월엔가 언니가 담가줬던 열무김치가 그렇게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종시에서 식당 하시는 시이모님이 담아주셨던 열무김치가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었던 기억이! 그리고 우리 엄마가 담가주신 열무김치가 내 인생에 기억나는 열무김치다. 나도 언젠간 내가 직접 열무김치 담그는 날이 오겠지만 최대한 그때가 먼 날이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