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
행복에 대한 명언은 많지만 회의주의적인 나는 와닿는 문구가 별로 없었다. 노력한다고 될까? 하는 생각. 행복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유년시절. 불안이 큰 기질. 기타 등등. 지혜와 처신,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 훨씬 와닿았다.
재작년에 친구의 동생이 유튜브를 한다기에 구독하고 영상 몇 개를 봤다. 일상 브이로그였다. 생각 없이 보는데 끝날 무렵 영상 속 여자가 말했다. 행복한 사람은 있는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을 사랑한다. 그러면서 본인은 현재 일상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 말이 퍽 인상적이었는지 마음이 복잡하고 짜증이 올라올 때면 가끔씩 생각났다. 내게 없는 것을, 아이에게 당장 없는 것 중에서 있었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사랑해서 행복하지가 않구나, 하면서.
오늘도 이 말이 떠오른 날이었다. 오전에 일도 하고, 공부도 조금 하고, 독서 모임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만 있으니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아서 환기를 시킬 겸 밖을 나섰다. 아이가 축구 클럽에 다녀오는 날이고 저녁도 엄마와 함께 나가서 먹기로 되어 있어서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동네서점으로 가서 업무에 도움 되는 실용서를 찾다가 없어서 과학 코너, 미술 코너, 역사 코너.. 느릿느릿 서점 안을 돌고 있었다. 목적 없이 책을 둘러보는 일에 심취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축구 클럽 코치님이었다.
“OO가 보이지 않아서요. 놀이터까지 다 둘러보았는데도 없네요.”
“정말요? 아.. 정말 없나요?”
“네. 어머님.“
“데려다줄 순 없는데.. 아 참.. 뒤에 차 탈 아이들 기다리고 있죠. 네, 제가 직접 데려다 줄게요!”
평화롭던 마음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굳은 표정으로 서점을 나섰다. 멀리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을 보며 내달리고 길을 건너자마자 속도를 줄였다. 집에는 일단 없고.. 학교로 향하고 있는데 아이 친구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학원차 갔어?” “어..”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 몰랐어!” “그래.. 어디야?“ 최대한 감정을 빼고 얘기하려 했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 친구가 열심히 장소를 설명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전화를 다시 걸어 아파트 이름과 동을 듣고 걸음을 옮겼다.
이 아파트는 310동이 없는데.. 건너편 저 아파트인가? 길을 건너고 얼마 걷지 않아 아이와 아이 친구가 보였다. 벤치에 앉아서 친구가 하는 휴대폰 게임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불시에 아이가 놀고 있는 곳을 찾아갔을 때 다른 친구들은 뛰어노는데 친구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던 아이를 세 번 정도 목격했던지라 또 그러고 있구나 실망스러웠다.
“오늘은 학원 못 가겠다. 일단 집에 가자. 친구야 잘 가~” 인사를 주고받고 아이의 짧은 변명을 들었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이 친구는 더 놀면 안 되냐며 두 번 조르더니 빠르게 포기하고 떠났고, 아이는 심통을 부렸다. ‘지지 말자. 감정적이 되지 마.’ 감정을 빼고 훈육해야 된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상기했다. “오늘은 축구학원 가지 말자. 대신에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계속되면 그때는 학원 못 갈 것 같아. 그리고 내일은 5시까지 놀다가 집으로 와.“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타협이 필요 없다 판단했다. 이번이 두 번째였으므로 그리해도 마땅하다며.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각과 겹쳐서 바로 외식하러 나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앉아있는데 아이가 뾰로통했다.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짧게 얘기했고 그 사이 아이가 대화에 끼어들어 대답해 주다가 말꼬리 잡기로 번졌다. 역시나 그만둬야하는 쪽은 나겠지. 멈추려고 해도 아이가 자꾸 이어가서, 아이에게 뭐라고 하니 “너 너무 길게 한다.”라며 엄마가 조언을 더했다. 아이는 할머니 조언 속 단어로 다시 나를 공격해 왔다.
식사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뛰어가버리며 바뀐 신호 안에 재빠르게 길을 건너갔다. 그 사이 엄마와 아이 육아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쓸데없는 것까지 다 알려준다! 쟤는 무관심하게 대해야 돼~“ ”소아정신과 의사가 그러는데 교통교육을 안 시키고 운전대를 잡게 하면 안 된대. “ ”그런 거 가르쳐줘 봤자 안 지키는 사람은 안 지키고.. “ 엄마의 오랜 패턴이다. ”또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고 가지 말고“ 잠시 침묵 뒤에 갑자기 정신과 의사가 자살률이 높다고 했다. 몇 년 간은 이런 대화 패턴에 화가 나서 엄마말이 틀렸다고 우겨댔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는 더욱 귀를 닫았다.
어떤 대화에도 똑같은 결론으로 귀결되는 말을 반복했다. 엄마는 몇 가지의 생각으로 사고회로가 굳어있었다.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엄마를 바꾸려는 노력은 포기하자. 바꾸려고 애를 쓸수록 엄마는 더 단단하게 버텼다. 지난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 되고, 그러면 엄마 자신의 마음이 너무 아플 테니.
“그 상황에서는 아무 얘기하지 말아 줘. 뒤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건 받아들일게. 나도 들어야지.”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그래 어차피 너도 말해봤자 안 바뀌는데 뭘.” 또..
샤워를 하며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받지 못한 것, 엄마가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해야 할 일은 하고 놀아야 된다는 이 신념을 어떻게 현명하게 가르친단 말인가. 엄마에게 받은 적 없는 교육을 내 아이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있다. 거품이 몸에서 씻겨 내려가서 물을 껐다. 아이가 곧바로 씻으러 들어갔고 평소와 다르게 빠르게 씻고 나왔다.
책 다섯 권을 기대한 아이에게 책을 원하는 만큼 읽고 싶다면 아홉 시까지 취침 준비를 끝내야 하는 거라고 알려줬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지각하지 않을 거란 걱정을 접고 원하는 만큼 책을 읽어주는 대신에. 반복되는 이 패턴 속에서 행복은 없다. 아무래도 나는 없는 걸 사랑하는 쪽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