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가기 한 달 전
네 살 아이의 아빠가 물었다. 그 정도 나이 되면 애랑 감정싸움하지 않아? 일곱 살이랑 감정싸움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없어요 그런 거. 친구 남편의 차를 얻어 타고 오면서 선배맘다웠던 그 말을 뱉고 몇 주 뒤 확신을 비웃듯 아이는 엄마의 요구에 대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이제 세수하고 양치하자, 어린이집 갈 준비 해야지. 가고 있는데 왜 그 말하는 거야! 하려고 하잖아. 인상을 팍 쓰고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그에 반해 준비에는 진전이 없고. 속이 탄다. 어린이집 등원 차량 올 시간이 가까워져 준비하자고 하면 짜증내고 내복 바람으로 가자 하면 싫다 하고. 할 말을 잃는다. 대체 어쩌라고. 듣기 싫으면 알아서 하든가. 늘 끝은 있는 법. ‘싫어’ 시기가 지나더니 - 이 병은 특정 나이에 걸리는 게 아닌가 보다 - 싫어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잘 해가는 듯 싶더니 여덟 살에는 다른 양상으로 다시 나타났다. 더 세게.
요즘 아이는 엄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를 꽥 지른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식을 먹고 싶다기에 배고픈가 보다, 밥 차려 줄게 밥부터 먹자고 하면 빼액. 일정 때문에 외출 준비해서 나가자고 하면 빼액. 아빠와 함께 씻으라면 엄마랑 나중에 씻겠다고 빼액. 엄마랑 씻자고 하면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씻겠다고 빼액. 빽빽빽.. 하루하루 반복되니 나도 예민해져 갔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하고 아이의 얼굴을, 눈을 보는 날이 줄었다. 어제는 아침부터 하고 싶은 요구들을 늘어놓는 걸 듣는데 머릿속이 뒤틀리는 것 같아 믹스커피를 한 번에 세 개 탔다. 타 지역으로 이사 와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한 달 반 가량 남은 기간이 애매해서 가정 보육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와 지낸 지는 2주가 다 되어 간다. 잘못된 선택이었나. 어디든 보내야 했을까. 아이도 지루하고 엄마는 더 지루하다.
어젯밤에는 침대에 누워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우리 서로한테 고쳤으면 하는 습관을 이야기해 보자. 지금 계속 서로한테 짜증내고 있잖아. 아이는 엄마가 먼저 시작하라고 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가 선수 쳤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는 거냐고. 응.. 그리고 아침밥을 꼭 먹자. 기관에 다니지 않으니 아침잠을 실컷 자고 아점을 먹는데 그것조차 간식이나 시리얼로 때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아이는 모두 수긍했다. 이제 엄마 차례. 엄마는 없어. 진짜 없냐고 되물으니 아이는 잠깐 고민하고 대답했다. 예쁘게 말하기. 그래 꼭 고쳐보자 약속하며 아름답게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세수하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세수할 시간을 정하자고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윽박질렀나 보다. 아이는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어제 약속을 상기시켰다. 엄마가 깜빡했어, 미안해. 사과하고 다시 톤을 재정비하고 말했다. 계란 만둣국을 끓이려다 물에 빠진 만두는 싫다길래 군만두로 바꾸고 멸치육수에는 계란국을 끓였다. 조용하게 보내려나 기대에 차서 기분 좋게 만두를 입에 넣는 순간 아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만두는 자기가 다 먹으려고 했다는 거다. 그러더니 만두를 뱉던가 하나를 더 구워 달라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분명 여덟 살이고 아직 아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상한다. 그 순간에는 그 사실을 잊는 건가. 아무튼 만두에는 손대지 않기로 약속하고 다음번에 그런 생각이 들면 먼저 말해야 엄마도 안다고 알려주면서 만두 사건은 일단락됐다.
키즈카페에서 이름을 열 번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며 갑갑함이 끓어오르던 차에 오은영 박사님을 만났다(유튜브 알고리즘이란! 놀랍고도 신비롭다). 아이가 따르면 될 뿐 예쁘게 따를 필요는 없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이는 점차 다듬어질 테니 믿음을 가지고 이 과정을 견뎌야 한다고. 좋아요와 구독을 누르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집 안에서 엄마랑 단 둘이서만 있어 심심했던 아이는 주체되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고도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늦어 외식을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놀자는 아이에게 그만 놀고 쉬자는 말을 삼키고 터덜터덜 따라나섰다. 사탕 뽑기 기계에 동전을 넣어 사탕을 뽑았다. 아이는 사탕을 손에 쥐고 나서야 엄마를 놓아주었다. 내일은.. 자주.. 아이에게 달콤함을 선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