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ise of Lif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현 Jun 21. 2023

네팔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던 그날의 나

Ep.2 신이 필요한 순간 (2)

이 출장은 규모가 제법 되는 NGO가 요청해 온 건이었다. 내가 담당했던 NGO의 언론 담당자가 네팔 대지진 5주년을 맞았다며, 식수 시설과 학교 건립을 알리는 출장 기사를 요청해 왔다.


네팔, 주말 낀 4박 5일. ‘설마 내가 매주 병원을 갔는데 요사이에 돌아가시겠어?’ 했다. 종종 과거의 내 말과 생각을 돌아보면, 진짜 ‘한 치 앞을 못 보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장 전날, 오랜만에 저녁 약속을 나갔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상태가 좀 이상해. 내일 아침에 일찍 올 수 있어?”

“내일 아침 비행기라 어려울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음 연락 줘. 로밍해 가니까. ”


다음 날 예정대로 난 네팔에 갔고, 일정대로 하루를 수도인 카트만두에 있다가 다음날 신두팔쵸크라는 울트라 오지(이자 취재처)로 갔다.


거친 산길을 따라 4~5시간, 서스펜션은 거의 없는 듯한 사륜 구동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은 고됐다. 가드레일 하나 없어 운전자가 핸들만 잘 못 돌리면 바로 요단강 건널 각이었다.


생애 첫 개도국, 서른이 넘도록 미술관 있는 나라=박물관 있는 나라=제국주의 지배국만 다녀온 난 예술촌년이었다.


정말 아름답던 신두팔초크의 노을

신두팔초크의 호텔(말만호텔..ㅜㅜ)에 들어서니, 서울에서 미팅 때 본 구호팀 사람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국제구호팀은 국재재난 현장에 돈이나 물자를 보내는 걸 결정하고, 자주 현장을 두루 살피는 이들이다. 이번 취재의 왕빠꼼이이자 ‘기사멘트 딸 때’ 필요한 취재원이라, 반갑게 인사했다.


여기 NGO는 기독교기반의 단체라 만났던 모든 직원이 친절했다. 솔직히 너무 올바르고 친절해서 일처리가 좀 더디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기도를 했다. 생경한 광경에 나는 시시때때로 물었다.


“신과 함께 사는 느낌은 어때요?”


한 대리님은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 개념을 이야기해 주며 주님과 함께 한 순간순간에 의미를 찾으려 한다고 답해주셨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니체처럼 신을 부정하며 사는 게 최고라 여겼던 과거의 허세절은 나’를 내려놓고 싶었다. 아마 시나브로 예술뽕이 꺼지고 가족의 죽음과 병환을 겪으며 지쳐가고 있던 듯하다.


그날 밤, 구호팀 남자직원과 홍보담당 여자 직원과 셋이서 맥주 한 병을 놓고 수다를 떨었다. 이미 출장 열흘차에 들어선 구호팀 간사는 또래 동료와 편한 대화 자리가 그리웠던 것 같았다.


대학에서 공부한 얘기, 연애한 얘기, 네팔 얘기... 해외 출장을 가면 취재원들과 금세 친해지는 마법 같은 시간이 생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였다. 영화계 취재원과는 또 다른 느낌이 좋았다.


방에 돌아와 소풍 가는 아이처럼 “내일 취재하러 간다, 잘해야지 헤헤”하며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서울발 카톡이 와 있었다. 와이파이도, 로밍도 잘 안 터지는 곳에서 겨우 들어와 있던 텍스트 카톡.


“나현아 할아버지 지금 임종실 가셨어. 곧 돌아가 실거래.”  


“나현아 지금 전화 안 되니?”


-신이 필요한 시간 (3)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