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들이 편안함에 이르시길…
<나의 아저씨>. 이 드라마를 남들보다 뒤늦게 만난 탓에 몰아서 보는 바람에 심장 한켠에는 아직도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남자라는 족속은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한다고 하지만 조금만 더 일찍 이 작품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싶다. JTBC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최고로 애정 하는 드라마였다면 tvN의 <나의 아저씨>는 감히 말하건대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인 것 같다. 조금은 늦었지만, 내가 느낀 그 감동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그 남자의 동선
주인공 박동훈의 하루는 지하철에서 시작된다. 매일 아침 치러지는 생존을 위한 발버둥.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좀 짠하다. 대기업의 건축구조기술사인 그는 이론과 실재 모두 출중한 인재이지만 회사 내에서의 정치를 못해서 만년 부장의 위치에 머문다. 더럽고 치사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도 본인이 맡은 일을 등한시하는 법은 없다. 회사와 집, 그리고 정희라는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에 들러 한 잔 하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의 전부다.
지긋지긋한 3형제
3형제 중 둘째인 동훈은 늘 첫째 상훈과 막내 기훈 사이에서 꼽사리 낀 존재 같다. 직장에서 쫓겨나 두 번의 장사를 시도하면서 재기를 꿈꾼 형은 쫄딱 망하고, 깐느 영화제의 혜성처럼 나타난 기훈은 수년째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머문다. 한 마디로 둘은 고학력의 흰 손들이고, 결국 깜냥 것 해나가는 것은 둘째 동훈뿐. 그래서 언제나 고독에 쩔어있다.
바보 같기만 한 고집쟁이
가족이라고 의지할 곳은 없지 그렇다고 팔순이 가까운 노모에게 하소연을 할 수는 없다. 회사 내에서는 서로 으르렁대는 상사들이 우글거리고 그들은 기득권 챙기기에 바쁘다. 대표이사는 새파란 학교 후배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기를 자르려고 눈이 뻘개서는 눈치만 보고 있다. 어느 한 곳에 줄을 서는 건 체질에 맞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매일을 살아내는 정석만 고집하는 바보다.
그 여자의 동선
또 다른 주인공 지안의 하루 역시 지하철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명을 다하면 환생한다는데 그렇다면 본인은 아마 삼만 살 정도 됐으리라 믿는 그녀. 왜 태어나는지, 왜 이 세상을 떠도는지 알 길이 없다는 듯 표정은 늘 어둡다. 동훈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그녀는 늘 냉소적 표정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행동 때문에 베일에 쌓여있다.
지긋지긋한 삶
가족이라고는 청각장애가 있는 노조모뿐. 돈이 없어 조모가 입원한 병원에서도 쫓겨나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야말로 연명하는 삶을 산다. 물론 지안을 외면한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손길도 단 4번이면 손 털고 떠난다. 뿐만이 아니다. 지안은 꺼내 놓을 수 없는 악몽 같은 과거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엄청난 빚이 있다는 것. 모친이 유산처럼 쥐어준 빚의 멍에는 고스란히 그녀가 떠안았고, 채무자는 늘 돈을 갚으라고 닦달하기 일쑤에 폭력까지 가하니 결국 위기의식을 느낀 어린 지안은 결국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그 벌로 채무자의 아들에게까지 빚을 갚는다.
<나의 아저씨>는 이처럼 다른 듯 닮은 남녀, 젊은이와 중년의 삶을 다룬다.
동훈의 가족을 보면,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 뛰어나서 조금은 부산스럽긴 하지만 형제애가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 부럽고, 그의 친구들 역시 가족 이상의 끈끈함으로 맺어져 있어서 관계의 이상향을 보여준다. 앞서 동훈의 신세가 처량하다고 했는데 그 처량함과 고독은 회사에 있을 때가 제일이며, 못 잡아먹어 안달인 상사들의 으름장은 극에 달한다. 필자는 이런 부분을 만나면서, 마치 드라마가 아닌 현실을 보는 듯한 착각을 갖게 됐고, 또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와도 일정 부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팍팍한 동훈의 삶을 촉촉하게 바꾼 장본인이 바로 지안이다. 이대로 가다간 성실하고 착하기만 한, 한 남자의 생이 끝날 것 같아서 냉철하고 영민한 지안이 나선다. 물론 처음부터 지안이 동훈에게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빚에 허덕이던 지안은 도준영 대표이사의 사주를 받아 동훈의 사생활을 캐기로 하고 도청을 감행한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인간 박동훈의 진면모를 깨달은 지안은 자신이 진짜로 도와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나의 아저씨>라는 타이틀이 참 잘 어울린다.
낯섦에서 어우러져감으로 가는 직행 열차는 역시 밥… 밥이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사랑 서막 역시 밥으로 시작되지 않았는가. 나도 밥을 참 잘 먹는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밥 좀 사주죠.”하는 지안의 시크한 언행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둘은 몇 번의 밥과 술을 함께 하며 서로를 알게 됐고, 심간에 있던 적대감 역시 풀게 됐다. 물론 지안의 도청이 관계가 깊어지는 데 있어 견인차 같은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도청은 비록 불법행위에 지나지 않으나 드라마 상에서나마 대리 만족하게 했다.
왜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서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다는 상상을 해보지 않나…
그 과정에서 치부 역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훈과 지안은 서로의 결점에 대하여는 침묵하는 대신 조용히 돕는다. 둘은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결코 묵과할 수만은 없는 문제들. 즉, 과거의 살인 이력과 놀라운 빚의 액수, 그리고 아내의 외도와 사내에서의 부조리 같은 무거운 사안들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다만 침묵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파이팅!”이라고 짧게 외쳐주거나, “(과거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위로를 건넨다.
이는, 나이와 서열을 따지는 한국 특유의 수직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걸 의미하기에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언제부터인가는 삶 가운데 칭찬과 높임은 사라지고, 깎아내리기에만 급급한데 그런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조금만 더 곁길로 새보자면, 만일 두 사람이 사랑으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리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지안은 동훈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동훈 또한 지안 못지않은 헌신을 보여줬다. 특히 동훈의 눈빛에선 지안을 향한 무언가가 가득했다. 아마 ‘절절함’이란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물론 그것은 처음엔 측은지심과 동정에서 비롯됐다고는 해도 나중엔 분명 윤희를 바라보는 눈빛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기존 로맨스에서는 달달함만을 추구했다면 이 드라마 성향상 가볍게 그리지만은 않았을 터. 묵직하고 담담한 새로운 형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상상도 해 본다. 그렇긴 해도 드라마의 결말에는 이의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얹으려 한다. 세상에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 그러므로 좀 더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를 부러워할 수 있다. 허나 그것은 오로지 개인의 생각일 뿐. 가진 자는 그 나름의 애환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베짱이 라이프를 살아간다 한들 저마다 총알구멍만큼의 상처는 존재한다는 것.
모든 부모는 아무리 제 앞가림 잘하는 자식이라고 해도 더 주지 못해 애달파한다는 것.
우주에서 바라보면 푸른 점에 불과한 행성에서 아등바등 살아내느라 망각하는 이치를 드라마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흔히 요즘 하는 말로 본인이 좋으면 무엇이든 앞에다가 ‘인생’을 붙이곤 하는데 <나의 아저씨>는 그런 의미에서 쓰는 것도 옳긴 하겠지만, 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의 ‘인생 드라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냈으니까.
빈말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진심으로 고맙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신 이선균, 이지은 씨께도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편안함에 이르시길…
본문 이미지는 tvN 수목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포스터 이미지이며 출처는 tvN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은 CJ ENM에 있음을 밝힙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