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균형감을 되찾는 시간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피정이란,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로 세상으로부터 물러가서 자신을 둘러보고 고요함을 찾는다는 뜻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으로 가서 쉬는 것을 말합니다.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천주교 버전 템플스테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쉬지 않으면 안되게 창조되었지만 대개는 잘 쉬는 법을 모릅니다.
그저 소비적인 휴식이 아닌, 영혼의 샘을 채우는 창조적인 쉼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입니다.
가톨릭에는 다양한 종류의 피정 프로그램이 있고, 각 신자들은 내게 필요한 것을 신청하여 다녀오곤 합니다.
이번에 다녀온 피정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컨셉으로 준비된 것으로, 한 수녀원의 농장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주님의 숲'이라는 주제로 아름다운 하늘과 땅, 정성껏 돌보아진 꽃밭과 농작물을 돌아보며 생명의 경이로움과 소중함을 가까이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더없이 유쾌한 사람들과 가득한 웃음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조용한 곳에서 잘 준비된 기도를 하노라면
마음 속 찌든 때는 깨끗히 지워지고 사랑, 감사, 평화와 같은 희망차고 밝은 공기로 내 안이 가득 채워집니다.
이 행복을 한 번 느끼고 나니 한 달에 한 번은 꼭 피정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비신자인 친한 친구가 참여를 원해 한나절 피정에 초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피정을 다녀오면 늘 행복해하는 저를 보고 내심 궁금했었던 모양입니다.
불편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하던 제 마음과는 달리 친구는 피정 내내 즐겁게 웃고, 미소지었습니다.
끝나고 나서는 수녀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다며, 에너지를 많이 얻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마음을 열어준 친구에게도, 친구의 마음을 살뜰히 보살펴주신 하느님께도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 하나 분별하면서
사람으로 가득차 피로하고 지쳤던 내 마음을 하느님으로 가득 채우는 피정을 통해
영혼이 충만해지는 기쁨을 느낍니다.
게다가 피정에서의 식사는 얼마나 정성스럽고 맛이 좋은지!
몸과 마음을 풍족하게 하는 피정이 주는 이토록 행복한 마음.
사소하거나 평범할 수 있지만, 저만의 커다란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