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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류장 Sep 28. 2018

나와 너의 직업

딱 하루만 원하는 직업으로 살 수 있다면



마음대로 재능과 능력이 주어졌을 때, 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노동'보다는 '여가'에 가까울 것이다.

어제 오후쯤 주제를 골라두고 늦은 밤 S와 통화를 하며 한참을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위 '돈 많은 백수' 라거나 '건물주'부터, 

'대기업 회장이지만 그 하루를 휴가내겠다' 라던가 

풍요로운 복지를 누리는 '북유럽의 시인'까지 

대체로 그냥 직업이 없고 돈과 여유가 풍족한 상태를 이야기하다가, 

어릴 때 '장래희망'란을 채울 때는 1순위, 2순위... 얼마나 하고 싶은 직업이 많았던가가 떠오르더라. 


S는 하루쯤은 타로술사가 되어 타로카드에 정말로 사람의 인생이 읽히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 특별했던 중학교 때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좋아하는 것에 빠질 수 있는 한 깊이(사춘기 여중생의 호기심과 열정이란 얼마나 깊을 수 있는것인지..!)파고들던 친구들이 많았던 중학시절이었다. 

한 분야를 좋아했다하면, 직접. 온몸으로. 시간을 들여. 풍덩 빠지던 친구들.

그 중 타로동아리, 코스프레동아리가 정말 인상깊었는데, 따로 동아리 만들 것도 없이 책 덕후이던 나는 친구들의 분야에 다양하고 얕게 기웃거리며 자잘한 것들을 돕곤 했었다.

지적 목마름에 허덕이던 나는 지역을 박차고 나왔고, 나와는 사뭇 다른 진로들을 선택한 그 때의 여중 친구들은 현재 사회의 각기 다른 분야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용, 사진, 건축, 의류, 애견, 일러스트, 고고학, 요가, 편집, 외식, 종교계에 이르기까지..쓰다보니 끝이 없겠다.

물론 삶의 여정과 굴곡이 많이 달라 요즈음에는 거의 연락이 끊겼거나, 다시 연락해 만나기에는 시간의 강이 한없이 흘러버린 친구들이 대다수다. 


내가 살던 동네는 빈곤층과 부유층이 섞여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어렵고 힘든 친구들, 초등학생 때부터 가출을 일삼거나 성폭력을 당한 친구들을 가까이서 지켜봐야했고, 사회의 지도층인 부모님 밑에서 일찍부터 유학을 떠나 마약에 손을 대 본 친구도 있었다. 담배 정도는, 별 이야깃거리도 아니었다. 친구 엄마네 트럭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친구 아빠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그 시절. 

아무리 비열하고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도 그 속은 약하고 상처로 으스러진 상태라는 것도 비교적 일찍 알았다. 

다양한 어른들과 그들이 사회적약자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통해 겉으로 아무리 치장하고, 좋은 말을 하고, 돈과 명예가 많아 보았자 인격은 삶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알았다. 


이런 어린 시절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사람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그가 자라온 생애와 어린시절이 빼놓지 않고 있는 이유다. 스티브잡스도 그 유명한 스탠포드 연설에서 이야기했듯이, 삶의 모든 순간들은 하나의 점이다. 나의 점들을 연결해보니, 나는 인간의 약함에 대하여, 영혼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탐구하며 선한 세상을 위해 내가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주제를 정해놓고, 더 다양하게 상상해보고 싶었다. 

'존경하는 강경화 장관님의 수행비서로 24시간 살아보기' (그녀의 멋짐을 1%라도 내 것으로 배울 수 있다면..!)

'아프리카 사파리의 여행작가로 낮에는 초원과 들판을 누비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보기'

'구호지역에 가서 어린 난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데 보탬이 되기'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내 마음 속에 가장 먼저, 확고히 떠오른 것은 '수녀'였다.

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더 많이 꿈꿔보려고 했는데. 이보다 좋은 것이 생각나질 않는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온종일 기도하고 노동하고 봉사하며 바삐 보내야할 것이었다. 

나를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 품 안에서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쉬지않고 일하고 기도하는 수도생활.

어쩌면 그 하루가 또다시 점이 되어 내 미래를 바꾸어 줄 것이다. 

더 깊게 사랑할 힘과 희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당신이라면, 

딱 하루, 원하는 직업으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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