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의 문장들

(제23화) 머리 염색

by 보리수

설날 연휴도 지났다.

어른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 형제들끼리 따로 명절을 안 챙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음력 12월과 1월에 친정 부모님 기일이 있다 보니 그날을 가족모임처럼 모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첫해에 기일은 우리끼리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면서, 어설픈 우리들에게 할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리워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니 두 번째 기일부터 조금씩 눈물이 줄어들었고, 이번에는 나이 든 형제들과 훌쩍 커버린 내 자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는 이제 정년퇴임하며 머리 염색을 안 하기 시작했고 나도 뭐 젊어 보이려고 발악하는 것 같아 염색을 안 하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되어간다. 사실 염색하면 머리가 가렵고 뾰루지도 나고 염색 후 흰 부분 올라오는 게 신경 쓰였는데 갑자기 신경 쓸 일 많은데 이것까지 내가 신경 쓰고 살아야 하나 싶어 지며, 염색을 안 하겠다고 대단한? 결심을 했다.

이게 뭐 대수라고... 매번 염색도 귀찮고 천연 염색해야 그래도 두피가 살만한데 그건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했다.

남편은 머리가 안 새는 좋은 유전자를 네 자식 중 유일하게 혼자 타고났다. 혼자만 청년머리에다가 동안인데 나와 함께 다니면 이제 나보고 어머님이라고 하게 생겼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그 말이 행여 들릴까 봐 젊어 보이고 싶어서 주름 개선 화장품도 찾아 바르고 했는데 애정도 식었는지 이제는 더 늙어 보여도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내가 속상해할 일도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마누라를 늙어 보이게 만든 남편이 나한테 미안해해야 할 거 같은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거지... 싶었는데 나에게 늘 아는 척해주는 나보다 한 10살 하고 한 대여섯 정도 많은 어르신께서 “ 일부러 머리 희게 염색 한 거지? ” 늘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다니시는 그분께서는 나의 앞부분의 흰머리와 대체적으로 희끗한 머리가 갑자기 보였나 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나를 보며 상대적으로 나이 들었다는 생각에 서글퍼지시려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예전에 그런 글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었고.

자식의 희끗희끗한 머리를 보며 자식의 늙어 감을 가슴 아파하는 부모님 마음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훨씬 젊고 생생해 보이려고 나름 애를 썼던 거 같다. 게다가 나와 남편을 보면 엄마는 늘

“ 너도 어려 보이는 얼굴인데 네 남편은 정말 젊어 보인다. 네가 신경 많이 써.”

생전 부인을 위해 뭘 사주는 사람이 아닌 사위의 모습에 ‘네가 너를 아껴라.’라는 말로 나는 가름하면서 ‘아니야 엄마, 이번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딸이 좋은 남편과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 엄마 마음이 편한 걸 너무 잘 알기에 좋은 점을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엄마가 몰랐겠나. 자상한 아버지에게도 크게 서운한 점이 있었는데 이렇게 딱 봐도 무뚝뚝한 사위가 딸에게 얼마나 잘하겠나. 속 안 썩이면 그 걸로 다행이지 하셨을 거다.

어제 꿈에는 바쁘게 작은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주는 초등학교 시절 꿈을 꿨다. 다 학교 들어간 빈 운동장에 크기도 작은 아이가 자기만 한 가방을 메고 당황하며 가는 뒷모습을 보며 걱정하던 꿈이다.

다시 그 시절로 가면 나는 아이에게 어떤 모습의 엄마로 기억되길 원하나? 꿈이 깨고 나서 둘째 나이가 30을 향해 가는데 어쩌자고 그런 꿈을 꿨을까? 헛웃음이 나오면서 다시 그 시절을 곱 짚어 봤다.

작은애는 그래도 큰 아이를 경험하고 나서라 내가 극성을 부리지 않았다. 큰 아이를 보며 든 생각이 할 때 되면 다 하니까 늦는다고 조바심 낼 것 아니구나. 게다가 기질이 고집이 세니 자신이 받아들일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되겠거니... 하는데 이건 내 생각이고 아이는 어떻게 그 시절을 기억하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좀 급한 성격이다 보니.

작은 아이가 가끔 올라와 점점 허옇게 변하는 엄마 머리를 보니 어느새 엄마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이 드나 보다. 요즘 들어 부쩍 운동하라고 잔소리다.

나도 집안 일 하다가 문뜩문뜩 보이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아까도 뭘 찾느라 구글에 저장된 사진을 훑어보는데 ‘검정 머리가 훨씬 젊어 보이긴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듦이란 무엇인가? 시간을 그만큼 보냈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낸 시간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인 세월이 내게 쌓여 있으니 그만큼 여유 있게 세상을 볼 수 있어야 될 텐데 난 점점 조급해진다.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는 나의 활동시간 때문일 수 있다.

어느새 앉았다 일어났다 의 속도가 느려지고 누웠다 일어날 때 허리를 쭉 펴며 근육을 깨워줘야 하는 순간. 이게 점점 힘들어질 텐데 하는 지레 걱정에 노화의 속도를 가늠해 보면, 생각보다 빨리 내 몸이 노화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신경도 늘어지는 것 같고. 건강검진에는 이상소견이 없지만 알 수 없는 곳에서 삐그덕 거리며 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 증세들이 나온다. 신경과를 가야 할 일도 부인과를 가야 할 일도 점점 쌓여가고 있다.

우리 집 나이 든 동물들 병원은 데려가도 내 몸 아직 움직이니 병원 가기가 왜 그리 귀찮은지. 부모님 기일에 모인 형제들을 몇 달 만에 보니 서로 말은 안 해도 나이 듦이 보여 안쓰럽다. 내 자식들도 느린 반응 한말 또 하는 이 어른들의 대화가 재미있는 모습으로 보이나 보다. 부모님이 보시면 어떤 마음이셨을까? 벌써 봄이 오지만 난 내복을 못 벗는다. 아직은 춥다. 하루는 짧고... 시간이 빠르다. 나의 넋두리가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여기서 멈춰야겠다. 벌써 저녁을 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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