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의 문장들

(제22화) 졸업식

by 보리수

졸업식.

나의 입학과 졸업식. 그리고 한참 뒤에 아이들 입학과 졸업식. 여러 번을 치렀다. 지난 금요일엔 작은아이가 졸업식을 했다. 코로나로 큰아이는 졸업식을 혼자 치르고 사진도 아이들과 찍고 굳이 오지 말라 하기에 가지도 않았는데 작은아이 이번 졸업식은 학교에서 성대하게 치르기도 했지만 초대입장권에 인원제한까지 한다 하니 궁금했다.


게다가 아빠가 졸업한 모교라 더욱 감회가 새로워 가고 싶었다.

졸업장 입장부터 졸업식 식순부터 좋은 구경이었다.

학부모 석에 앉아 아래 학사모며 석사모 박사모를 쓴 졸업생들과 나를 포함하여 미처 전달하지 못한 꽃다발을 든 학부모들과 일가친척들을 보고 있으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라는 곳에 치열하게 경쟁하여 들어와서 과연 몇 퍼센트가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아가고 있을까?

우리 작은 아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쳤나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아이들이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는 걸 보니 나나 남편의 교육에 대한 믿음은 별로 잘못됨이 없었다. 좋은 대학이라고 정해놓은 것에 의미부여 말 것. 대학을 목표로 할 게 아니라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를 선택하자는 데 의견은 동일했기에 이 것에 대해 부부싸움의 여지는 없었다. 그저 고등학교 공부한 성적으로 그에 맞는 전공을 찾아 원서를 내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는데 그 마저도 학교에서 제안한 것과 부모와 차이가 있어 따로 뒤지고 찾는 노력은 기울여야 했다. 물론 엄마로서 욕심이 잠깐 나기도 했지만, 솔직히 난 대학을 다니면서 불만이 많았다. 밖에서 보이는 타이틀과 내부에서 공부하는 내용이 상응해 주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대학이름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개인적 경험 때문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냥 대학을 위해 달리기는 하지 말자는 게 강했는데 원서 쓰다 보니 잠깐 흔들리기도 했지만 학교를 다닐 아이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욕심이다 싶었다. 그냥 걷기로 충분하다. 앉아 있지만 않다면. 하지만 가끔 앉는 것도 괜찮을 수 있다. 자신의 속도를 알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어 보인다.

내 조카를 봐도 그러니까.


교육에 좋은 환경은 필요하다. 하지만, 각자에게 좋은 환경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단지 사람들이 보이는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달리다 보니 목적을 잃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목표하나로 달리다 보니 몇 퍼센트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모두 다 돌진하고 있다. 걷고 싶어도 잠깐 앉아서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그러다 대학 와서 아이들은 쉼표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런데 달리기를 열심히 하지 않은 아이들 중에는 의외로 나중에 달리고자 하는 욕구를 갖기도 하고 주변을 보며 자신의 창의력을 증장시킬 수도 있는 거다.

인생은 알 수 없다.

요즘같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앞으로 어떤 일이 우대받고 필요한 일인지 예측이 힘들다. 대학 입학하던 그때 다르고 졸업하고 한참 취업을 고민하던 시기와 대학원을 진학해서 졸업한 지금 시기가 겨우 2년 남짓 지났지만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변해 있었다.

부모가 아이들을 세상에 적응시켜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에 적응하는 걸 보는 것조차 따라가기 힘든 세상이다.

부모의 지식으로 고등학교까지는 아이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지만 20세 이상부터는 아이들도 자신의 앞날을 좌충우돌로 해치고 나아가야 하는 건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겪어야 할 성장과정인 것 같다.

앞머리가 회색으로 희끗해진 모습의 엄마와 남편과 아이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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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노견을 큰 아이가 재택 하는 집에 맡기고 졸업식에 달려가서 모처럼 여유 있게 졸업식에 참여하고 저녁도 같이 먹고 카페도 갔다. 이과적인 성향의 가족이라 기념사진도 대충 핸드폰으로 얼굴 몇 방 찍고 나왔다. 줄 서서들 기념적인 곳에서 사진 찍는 가족들을 보니 우리는 너무 빨리 나왔다. 지금 보니 사진이 몇 장 없다.

고맙게도 노견은 잠을 잘 자 주었다. 밤늦게 큰 아이 집에서 노견을 데려와 집에 눕히니 12시가 넘었다. 집에 동물들을 챙기고 씻고 누우니 두시다. ‘으아’ 너무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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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음 한쪽엔 늘 노견이 누르고 있어서 외출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저녁 먹고 함께 작은 아이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하다. 장애가 있어야 극복하고자 노력을 하고 그 걸 넘어가는 과정에 행복도 느끼며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이 된다. 이건 만고에 진리인가 보다. 부족하다 싶은 공부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세상을 탐구해 가는 결과의 하나인 아이의 졸업식에서 부족함을 느끼게 해 줘 미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이 마음을 털어 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감동의 대화도 나눴다. 돌아보면 내 내면은 늘 시끄러웠는데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내 내면의 요동을 잠재우는 데 집중해야 하는 나이인 것 같다.

고마움을 품은 채 조용한 부모로 그 옆을 지키다가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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