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불안한 삶의 현실
나는 29살 7년 차 직장인이다. 한 달 뒤면 30살이 된다.
7년 동안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다니면서 나름 인정도 받고 잘 지냈다. 대기업에 다니는 동안 나는 미국 뉴욕 지사에서도 근무를 했고 인정도 받으면서 좋은 생활을 보냈던 거 같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여타 직장인들처럼 출근과 퇴근을 하고, 점심시간이면 맛있게 밥을 먹는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거나 잘못 살아온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되어 가는 대로 내 삶을 놓아두지 않고 싶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통해 깨지고 아파할 것이다. 내 인생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뒤 없이 탐구하며 도전하고 싶어졌다.
나는 TV에 50대, 60대의 비참한 삶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들이 처음부터 고시원을 전전했을까? 아니다.
그들의 과거를 보면 화려하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임원인 분들도 있었다. 그럼 그들이 열심히 살지 않았는가? 아니다. 그들도 치열하게 살았고, 견뎠다. 근데 왜 노후는 그렇게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인가.
나는 그 이유를 직장에만 몰두한 삶이 아닐까 싶다.
직장은 현재의 나의 수준을 '착각'하게 만든다. 이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따박따박 고액의 연봉을 주고,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 하며 서로를 높여 존중하고, 가끔 회식비로 비싼 오마카세까지 먹을 수 있게 한다. 그뿐만이던가? 회사에서 자잘 자잘하게 주는 복지는 엄청 큰 것이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건강검진부터 내 돈 들이지 않고 소소한 사치를 누릴 수 있는 복지포인트까지. 이 모든 혜택을 내 손으로 회사가 아닌 '밖'에서 이루고자 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다들 회사 가기 싫다고 난리지만 결국 이른 아침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삶에는 가혹한 벌이 있다. 바로 '유한하다'라는 점이다.
연차가 쌓이면 점점 알아야 하는 것도, 책임져야 하는 것도 많아지고 서로 눈치를 보며 내 위치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목소리도 높일 줄 알아야 한다. 먹기 싫은 술을 마시기도 해야 하며 상사가 주는 면박에도 웃어넘기며 나를 한 없이 낮추고 비위를 맞춰야 한다. 이렇게 노력하더라도 모두가 다 남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누군가는 결국 도태되고, 잘리고,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것이 내가 결코 부족해서가 아닌 그저 찰나의 선택들이, 운명들의 장난으로 만들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밀려날 수 있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의 오해로 갑자기 승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밀려난 사람들은 입사부터 퇴직까지 모아 놓은 돈으로 남은 생애를 먹고살아야 한다. 즉, 지금 내가 400-500을 번다고 해도 그 돈은 지금의 내돈이 아닌 내 노후에 써야 하는 돈을 미리 가불 받은 셈이다.
나는 그게 벌써부터 걱정이다.
다들 어린 나이부터 대기업 다녔으면 엄청 능력 있고 똑똑한 줄 안다. 하지만 스스로 느껴지는 나는 점점 보잘것 없어진다. 이 회사 밖에서 나는 과연 이 정도 대우를 받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겠는가. 결국 준비 없이 나오게 되는 순간 나 역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그런 퇴직 후의 무료한 혹은 비참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강했다.
나는 29살, 박차고 나가기 전 준비를 몰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