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며

by Hwan

퇴사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나를 붙잡는 건 책임이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안정이라는 울타리를 지켜야 했다. 책임을 생각하면 퇴사라는 선택은 무모해 보였다. 지금의 자리를 지키는 일은 당연한 의무로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책임은 무게로 바뀌었고, 그 무게는 나를 한 곳에 붙들어 두었다. 그러나 책임만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균열이 생겼다. 내 안에는 더 이상 숨기기 어려운 또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하고 싶은 일, 가보고 싶은 길, 잃어버렸거나 감춰두었던 욕망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욕망은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책임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장이고, 부모이고, 조직의 일원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순간 이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책임은 지켜야 할 것들의 이름을 부르고, 욕망은 잃어버린 나의 이름을 부른다.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없기에 우리는 흔들린다. 책임의 목소리는 언제나 논리적이다. “지금의 자리를 놓치면 다시 되돌아오기 어려워”, “안정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야”, “너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버티며 살아” 그 말들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단단하게 나를 붙잡았다. 반면 욕망의 목소리는 선명하지 않다. 명확한 계획을 제시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보상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은근한 뜨거움을 만들어내며 속삭인다. “조금 더 나답게 살고 싶은 건 욕심일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어디에 있을까” 그 목소리는 흐릿하지만, 무시하기에는 너무 오래 버려져 있었다.


한동안 나는 욕망을 외면했다.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책임을 져야 하는 내가 욕망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갈수록 마음속에서는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책임만으로는 살아지지 않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책임과 욕망은 서로를 부정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책임이나를 붙들었다면, 욕망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책임은 삶을 유지하게 하고, 욕망은 삶을 살아 있게 한다. 둘 중하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둘의 균형을 찾기 위해 흔들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욕망이 흔드는 날이 있었다. 책상을 정리하고 회사 문을 나서는 상상을 하며 마음이 순간 가벼워졌다. 상상이 현실이 되면 무서울 텐데도 나를 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감정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만큼은 책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고 싶었다. 책임의 무게가 욕망의 목소리를 잠재울 필요는 없었다. 두려움때문에 욕망을 지워버리면 결국 살아 있는 나를 지우게된다. 욕망을 따르는 삶이 반드시 퇴사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퇴사를 결심하지 않아도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은 이미 한 걸음의 변화였다.


지금도 책임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다. 무게가 완전히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누군가가 대신 정답을 알려줄수도 없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책임을 지키면서도 욕망을 외면하지 않는 방향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퇴사를 하지 않아도 욕망을 숨기지 않는 삶은 가능하다. 작은 시작으로도 충분하다. 하루의 단 한 시간이라도 나에게 온전히 쓰는 시간, 미뤄왔던 배움이나 즐거움을 더하는 선택, 내 안의 욕망이 숨 쉴 수 있는 틈을만들어주는 일. 그렇게 조금씩 삶의 중심을 되찾는 과정 속에서 책임은 짐이 아니라 선택이 되고, 욕망은 죄책감이 아니라 생명의 신호가 된다.


책임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간은 고통만 있는 시간이 아니다. 흔들린다는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살아 있는 감정을 계속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흔들림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책임을 지키면서도 나를 지켜낼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흔들림 덕분에 아직 나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책임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욕망의 불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나로 살아가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