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3 Tue
출발 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준비한다 싶었는데 자리 널널하겠지 하고 현장 예매를 하려고 했던 김포공항행 리무진은 다음 차까지도 전부 매진이었다. 결국 엄마에게 헬프 요청을 해 엄마가 김포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는 길 내에 엄마가 야속했다. 전날 내가 예매한다고 했는데 왜 평일이라 자리 많을 거라며 내일 가서 하라고 했는지. 리무진을 탔으면 내가 일일이 네비 안 봐도 그냥 눈감고 편히 갔으면 편했을 것을. gps는 왜 또 이상하게 잡혀서 이상한 길로 가는 것 같은지. 엄마는 국내선 국제선 표지판이 있는데 왜 이렇게 헤매는지.
공항에 도착해서는 잘 갔다 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침 요가도 포기하고 날 데려다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돌아가는 길 조심해서 가라는 말 한마디 없이 괜히 짜증 섞인 말투로 ‘나 갈게’ 한마디만 하고 쌩하니 내려버렸다.
완벽하게 여유로워야 하는 이번 여행이 시작부터 꼬인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다행히 출발 시각 15분 전에 도착하여 곧장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도 비행기 이륙하는 건 봐야지.
나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그 순간이 좋다. 있는 힘껏 달려가다 탁 하고 발아하는듯한 느낌. 내면의 숨기고 있던 어떤 감정이 팡 하고 터지는 듯한 느낌. 잠재된 가능성이 발현되는 느낌. 그 순간만 느끼고 바로 잠들었다. 눈을 뜨니 그새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한 시간 진짜 잘 잤다.
제주공항에 도착해서는 바로 숙소 가는 택시를 탔다. 공항에 줄지어 서있는 택시들 사이에서 카카오 택시를 부르기도 애매해서 정류장에 서있는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말했는데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기사님은 디앤디파트먼트라는 생소한 단어에 그게 어디냐며 되물으셨다. 서울에서 출발지와 도착지를 미리 찍어 놓고 기사님을 호출하는 카카오택시에 너무나도 익숙해있는 나는 기사님께 “네비를 찍으시는 게 낫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기사님은 한눈에 봐도 제주에서 오랜 운전 경험이 있으신, 내비게이션 같은 건 전혀 사용하지 않고 으레 아시는 길로만 다니시는 분 같았다. 숙소 주변에 알만한 큰 건물 같은 게 없냐고 물으시기에 아라리오 뮤지엄이 있다고 하니 알아들으셨다. 불안하지만 아시겠지 하며 그냥 갔다.
피곤해서인지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는데 기사님께서는 두 번 세 번 내가 가는 숙소가 아라리오 뮤지엄의 맞은편에 있는지 옆에 있는지 뒤쪽에 있는지 물으셨다.
나도 처음인데 내가 어떻게 아나.. 보는 방향에 따라 옆이고 앞이고 뒤인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난감해서 그냥 내비게이션 대로 가달라고 말씀드렸다.
기사님은 본인은 한 번도 내비게이션을 작동한 적이 없으신 건지 나보고 틀어달라고 했다. 결국 내 휴대폰으로 네비를 크게 틀고 가는 와중에 귀로만 들으시니 자꾸만 경로를 이탈하신다. 짜증이 한계점에 달했다.
나는 이러려고 택시를 탄게 아닌데 그냥 편히 가고 싶어서 택시를 탄 건데 왜 처음 와보는 내가 길까지 알려주고 있어야 하는 건지 화가 났다.
결국 돌고 돌아오니 기사님이 말한 아까 그 빨간 건물의 아라리오 뮤지엄 바로 옆에 숙소가 있었다.
자꾸자꾸 한 박자씩 틀어지는 것 같은 이번 여행에 괜스레 기사님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감사합니다란 말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엄마도 김포공항이 초행길이었다.
엄마가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회사에서 상사 앞에서 실시간으로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하느라 허둥대는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엄마가 당황할 때 짜증스러운 말투로 뭐라고 할게 아니라 괜찮다고 했어야 했다. 엄마의 잘못도 아닌데 따지고 보면 전날 예매하지 않은 내 잘못인데.
나는 또 그렇게 엄마에게 감정을 편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기사님에게도 좀 더 친절할 수 있었다. 기사님도 처음 들어보는 목적지였다. 내비게이션 트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분이었다.
결국 거기서 거기인 곳을 나는 왜 정확하게 가주지 않는다고 신경질적이었을까.
지나고 보니 내 행동이 후회스럽다. 왜 좀 더 다정할 수 없었는지, 왜 좀 더 여유롭게 웃어넘기지 못했는지. 그들도 다 처음인 일인데. 왜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없었는지.
누구에게나 다 처음은 있고, 처음 해보는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은 드물다.
처음인 사람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기를. 그래서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우리는 모두 능숙하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하려는 이들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