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툴루즈 로트렉 展

by Goodlife

200428 <신세계>


오늘은 전시회를 보러 가려고 벼르고 별렀던 날이다. 정우철 님 도슨트를 꼭 듣고 싶었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계획했다. 일부러 사람 많은 시간은 피하려고 제일 첫 시간 도슨트를 예약하고 들으러 갔다.

나는 항상 전시회를 볼 때 내 페이스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크게 없어도 내가 그림을 보고 느끼는 내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는 도슨트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도슨트는 진짜로, 진짜로 신세계였다.


사실 이번 <툴루즈 로트렉 전> 도슨트를 듣기로 결심했던 건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도 없어서였다.

모네나 고흐 같은 유명한 작가들은 학창 시절부터 조금씩 주워들은 지식으로 그냥 본다고 쳐도 이름마저 생소한 작가를 무턱대고 보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정우철 도슨트는 본인이 말했듯 그 작가의 인생을 들려줌으로써 작가와의 경계를 허물고, 작가의 삶을 느끼게 해 주었다.

도슨트의 해설을 듣고 나니 갑자기 툴루즈 로트렉의 오랜 친구가 된 것처럼, 마치 그를 오래 알아왔던 사람처럼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가득 생겼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이 그림을 그렸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고 나니 그림을 보는 게 훨씬 재밌었다. 오디오 가이드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도슨트에 대한 찬양은 이 정도로 넘어가고, 툴루즈 로트렉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이 작가를 정말이지 사랑하게 됐다. 요즘 말로 하면 로트렉은 ENFP가 아니었을까? 도슨트 님의 소개가 참 인상 깊다.

“인생은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면서 그러한 자기 인생을 지독하게 사랑했던 사람”

사람들은 포스터를 4초 이상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쁜 걸 떠나서 보는 순간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이 돼야 한다.

그래서 로트렉은 포스터를 단순화하고 색의 사용을 최대 5가지 정도로 제한했다고 한다. 선 몇 개만으로도 강렬한 특징을 담은 포스터들이 참 멋졌다.

로트렉이 한평생 존경했던 화가가 드가라고 한다. 드가는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다르게 실내에서 간접조명을 받은 인물들을 중점으로 그렸다.

로트렉은 인물, 특히나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인물의 뒷모습에 집중한 드가의 화법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따라 그리기도 무진장 따라 그려서 드가가 로트렉을 엄청나게 싫어했다는데, 로트렉은 따라다니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 본인만의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런 로트렉을 보고 드가가 한 말이 참 인상 깊다.

“로트렉은 내 옷을 가져가서 자기 몸에 맞게 재단해 버렸다. “

로트렉은 항상 이쁘고 인위적인 것보다는 일상적인 것, 인간의 삶의 본질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장애를 앓고 있는 본인은 사람들이 외적인 요소들이 아닌 진실한 내면을 봐줬으면 하는 소망이 그의 작품에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 “

“I have tried to do what is true and not ideal(나는 이상적이 아닌 진실된 것을 하려고 노력했다.)“

전시회 기획에 있어서 인상적이었던 건, 섹션 중간중간 로트렉의 인물 사진이 벽면에 크게 프린트되어 있는데 한 섹션에서는 그게 거의 천장 아래, 그러니까 관객의 시선보다 훨씬 높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로트렉을 어쩔 수 없이 올려다보게 되는데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로트렉을 상징화시킨 기획자의 의도에 정말 감탄했다.

또 마지막 섹션에는 앞서 봤던 일부의 원본 포스터를 포함한 로트렉이 작업한 포스터들의 레플리카가 한 곳에 모여있어다.

툴루즈 로트렉의 첫 전시가 열린 기념비적인 전시인만큼 기획자는 그의 모든 포스터를 한데 모아 전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모든 포스터를 모아 보니 단순화, 해학, 풍자와 같은 그의 특징과 개성을 명확히 알 수 있어 좋았다.

출입구 바로 앞 구역에는 로트렉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의 그의 사진들이 모아져 있었다.

나는 어쩐지 이 섹션이 참 짠하고 묘하게 슬프면서도 친밀하게 느껴졌다. 오랜 친구와 인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로트렉은 인생의 아름다움은 일상 속에 있다고 했다.

오늘 하루도 작은 행복한 일상이 모여 온전한 하루가 됐음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크고 작은 영감을 많이 받을 수 있길, 무기력해지지 않길, 계속해서 이런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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