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람들은 대구로 여행 온 타지인들에게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물어본다고 한다. “대구에 뭐 볼 게 있어 오능교?” 겸손한 건지 자조적인 건지 모르지만 내겐 과거 천주교의 근거지였던 대구의 성당들과 선교사 사택 등 근대문화유산 건물과 오랜 역사를 지닌 구도심이 있어 흥미롭다.
언뜻 대구와 미술은 매칭이 안 되는 것 같지만 2011년 대구미술관이 생긴 이후 대구는 새로운 문화 도시로 서서히 변신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대구미술관에서 이인성미술상이 열리는데 그동안 강요배, 윤근택, 공성훈, 윤석남 등 굵직한 작가들의 과거 작품과 신작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최근에는 간송미술관이 개장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동대구 역에서 가까운 대구 수창동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처럼 옛 담배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겸 레지던시를 겸한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사실 여기는 대구 현지인들보다 외지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더 많다는 숨은 명소다.
'대구예술발전소'는 1923년 대구 원도심 한복판에 지어진 연초제조창이었다. 1999년까지 담배제조공장으로 운영하다가 폐쇄되었는데 2013년 대구문화창조발전소에서 이 건물을 대구예술발전소로 리모델링하여 개관했다. 청년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전시공간 제공은 물론 지역민들을 위한 공연, 글쓰기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단 내부로 들어서면 엄청난 규모에 놀라게 된다. 5층 규모에 연면적만 해도 2만 평에 이른다는데 한때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중추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지금은 깔끔하게 리모델링되어 옛 공장의 흔적은 내부 열기를 외부로 배출시키기 위한 터빈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5미터에 달하는 높은 층고로 인해 대형 설치작업 전시도 무난하고 넓은 홀과 여러 작은 공간으로 다양한 전시와 예술제를 개최해 왔다. 이 정도면 테이트모던 갤러리처럼 과거 공장을 활용해 성공한 갤러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할 것 같다.
이곳을 방문한 것은 두 번째였다. 2017년에 처음 다녀갔는데 과거와 비교할 때 주변이 상전벽해급으로 변모했다. 옛 연초제조창이었던 대구예술발전소 바로 옆에 대구 도심 내 대규모 성매매 지역인 '자갈마당'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었다. 1909년 공창이 들어선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으로 유지되어 온 100년의 아픈 역사와 애달픈 여성들의 삶이 담긴 곳이다.
2017년 과거 성매매 업소였던 곳을 갤러리로 바꾼 '자갈마당 갤러리' 의 모습.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갤러리로 이용되다가 철거되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는데 당시 이곳에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라는 곳이 있었다. 한 때 성매매업소로 사용된 3층 건물을 대구 중구청에서 도심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전시공간으로 임대해 주었다. 당시 성매매가 이루어지던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소재로 한 것도 있었다. 공장이나 대사관 건물, 법원이 미술관으로 쓰인 건 봤어도 성매매업소가 갤러리로 사용된 것을 목도한 처음이자 마지막 체험이었던 것 같다.
과거 공창지역이었다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뀐 수창동 일대
이곳 관계자들 말로는 대구사람들보다는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 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집창촌이었던 이곳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사람들이 찾아오길 꺼려하는 이유도 있을 것 같다.
대구예술발전소 14기 작가들의 작품.
대구예술발전소는 1층부터 4층까지는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고 5층은 작가들의 레지던시로 이용되고 있다. 2층에 자리 잡은 ‘만 권의 책’이란 뜻의 만권당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글쓰기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6층에는 옥상 정원이 조성되어 대구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니 꼭 들르기를 권한다.
대구예술발전소 입주작가 프로그램도 어느새 14기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바로 전시할 수 있어 작가들에게는 천국이 아닐까 싶다. 운이 좋으면 작가들이 복도에서 작업하는 광경도 지켜볼 수 있다.
실을 이용해 예술 행위에 의미룰 둔 '수행의 시각화'를 재현한 임도 작가와 잡초를 채집해 사진 출력 이미지로 재구성한 최근희 작가.
와 1층에서 4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실에서는 전국 단위로 선발한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선 보인다. 특히 올해는 미디어, 영상, 설치작가의 입주율이 높아져 전시 구성이 다채롭다. 매일 10시와 3시에 도슨트 투어도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현대미술 작품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작가들의 레지던시가 위치한 5층, 1층 복도에서 3명의 작가가 협업으로 페인팅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때 대구는 ‘보수의 성지’ 혹은 ‘고담 대구’란 오명을 쓰고 변화가 없는 답답한 도시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대구예술창작센터에 오면 대구에 대한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고 뜨겁게 달구는 젊은 에너지가 넘쳐난다. 과거 공구상가거리와 사창가와 마주하던 곳에 예술을 침투시켜 지역 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영감을 주는 곳으로 자리 잡은 대구예술발전소가 대구의 명소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대구예술발전소 입주작가 4기 변지현 작가의 페인팅인 'Moon Flower'. 포토존으로 인기가 좋아 4층의 상설 전시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