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홍지윤 스타일>, 금호미술관

by 이선

주말에 금호갤러리애서 열리는 <홍지윤 스타일>(2025.2.16. 까지)을 보러 갔다. 지난달 29일에 개막한 전시는 작가의 30년 작업세계를 돌아보는 기획전이었다.

전시장 들어가자마자 대형 캔버스에 형형색색 화려한 색감이 관객을 향해 쏘는 에너지로 인해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다. 페인팅, 사진, 오브제,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출판, 패션이 뒤엉킨 현장은 어디서 한바탕 굿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색동꽃과 문자의 이미지는 자수로도 재현되었다.

1970년생인 홍지윤은 사업가 아버지와 의상디자이너 어머니를 둔 덕에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홍대 동양화 전공자라 그런지 그의 작품세계의 바탕은 전통 수묵과 고풍스러운 서간체 문자다.

이후 강렬한 색감의 아크릴로 매체를 확장하고 거대한 화선지 위에 색동꽃을 그려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구성했다.


선명한 원색과 형광색상도 사용해 기존 동양화의 규범을 뛰어넘으면서도 한국화의 정서를 재해석하고 있다. 거대한 화폭에 담긴 둥글둥글한 꽃 형상과 텍스트가 난무하면서 만물이 교차하고 우주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작업도 계속해 왔다. 전시장에는 회화, 설치작품은 물론 미디어 아트도 함께 볼 수 있다.

'퓨전 동양화'라고 이름 붙인 홍지윤의 동시대 미술은 대형 설치,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협업, 출판 등으로 확장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프로젝트인 2017년 광화문 미디어 파사드 작업인 <빛나는 열정>(2017).

미리 알았더라면 구경 갔을 텐데 놓쳐서 아쉬웠다,

백령도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힌 무용가의 장구춤 퍼포먼스 및 설치작업이 결합된 영상물 <난무>(2009). 장구 가락과 시원한 풍경이 어우러져 청량감을 준다.

아이패드로 그린 드로잉을 다시 회화로 옮긴 아날로그-디지털의 경계를 넘는 <별, 꽃, 아이>(2024)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이라고 한다.

지하 1층에 펼쳐진 <분홍 인생>(2020)을 맞닥뜨리면 작가의 무한한 에너지와 열정의 끝은 어디일까 가늠이 안 될 정도다. 고인이 된 모친의 의상실인 '스왕크(Swank)'에 대한 헌정이자 작가의 세계관을 한데 담은 소우주처럼 보인다.

얼핏 보면 윤석남의 <핑크룸>과 연장선상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분홍인생>은 멕시코 소설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1989)에서 영감 받았다고 한다.

오래전 이 영화를 봤었는데 남미 특유의 마법적 리얼리즘과 멕시코 요리를 통해 여성의 욕망과 사랑을 표현한 페미니즘 문학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보고 소설도 읽고 싶어졌다.

홍지윤은 소설을 통해 어릴 적 의상실을 운영했던 모친과 그곳에서 오색창연한 옷감들과 놀던 자신을 떠올렸다고 한다.

재봉틀을 이용한 자수작업과 직접 디자인한듯한 의상도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작가의 유산인 것 같다. 그의 작품의 원천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모친은 196-70년대 최고의 디자이너였던 노라 노의 제자로 뛰어난 패턴사였다고 한다.

홍지윤의 어머니도 한때 일본 유학을 꿈꿨지만 집안의 반대로 좌절되자 자신이 누리지 못한 걸 딸에게 실현시켜 주었다. 어머니의 지원 하에 작가는 독일 유럽 등지의 미술관을 순례하며 서구미술을 경험했고 독일, 이탈리아에서 전시 및 레지던시를 했다.

해외 체류 경험은 작가의 작품세계가 한국화의 경계를 넘어 동시대성을 획득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경계를 넘어선 종이와 색채의 실험은 사공의 뱃노래와 오페라가 만나고, 장자와 남미의 문학이 만나고 카모플라주와 한복이 한데 어울리는 홍지윤 스타일을 직조해 냈다.

2024년 한 해 미술계 이슈 중 하나는 여성미술가들, 페미니즘 미술이 아닐까 싶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기획전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미술가들>(내년 3월까지)이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전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을 선보여 그동안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한 원로 여성화백들의 작품들을 재주목했다. 출판계에서도 한국 페미니즘 미술을 총정리하는 책들이 2권이나 나왔다. 9월에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읽기: 한국 여성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가 나온데 이어 10월에 <그들도 있었다-한국현대미술사를 만든 여성들>도 잇따라 출간되었다.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세계를 그린 홍지윤의 작품도 충분히 페미니즘 미술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는데 도록이나 작가의 인터뷰 그 어디에도 페미니즘 미술가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다. 모든 경계를 허무는 작가 본인이 그런 담론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그럴 거란 짐작이 든다. 향후 작가의 세계에선 어떤 것들이 접속해 원융하고 폭발할까 기대하며 전시장을 나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