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 안중근을 다룬 또 하나의 시대극이 탄생했다. 예전에 나온 안중근 영화들은 모두 '안중근'의 이름 석자 혹은 안중근의 대명사격인 '영웅'을 제목을 썼는데 이번에는 도시 이름 '하얼빈'을 전면에 내세워 차별성을 강조했다.
연출이나 극의 전개 때문인지 관객들 사이에선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나뉜 상태인데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내겐 <하얼빈>이 대중영화의 외피를 쓴 예술영화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오프닝의 전투신에 깔린 배경음악은 좀 과한 부분이 있어 살짝 거슬렸고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듯 편집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영화를 예술의 반열에 놓은 건 야외촬영 부분과 미장센이다. 물론 주연, 조연이 따로 없던 배우들의 명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를 보는 것 같던 오프닝의 얼어붙은 강을 걷는 장면부터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 로렌스>를 떠올리는 사막 장면은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자연풍광도 아름답지만 하얼빈과 블라디보스토크를 묘사한 고풍스럽고 서늘한 도심 풍경도 빼어났다.
하얼빈이 아닌 동유럽 라트비아에서 촬영했는데 오래된 근대건물이 거의 방치된 채 보존되어 있는 듯한 외양이 100년 전 그곳에 있는 것처럼 실감 났다.
영상미의 절정은 실내장면에서 더욱 부각된다. 빛과 그림자를 드라마틱하게 사용했던 바로크 화가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바로크의 대가 카라바조의 작품들과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독립군들의 비밀 회합 장면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광채를 부여해 각 인물들의 얼굴을 비추며 극적인 긴장감을 잘 살리고 있다.
어두운 장소에 모인 인물들은 한데 뭉쳐져 있는데 그들의 얼굴은 강한 콘트라스트의 그림자에 반쯤 가려져 있어 표정이나 눈빛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서로 의심하는 가운데 누가 밀정이고 진짜 동지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인해 내적인 동요와 깊이감을 더한다. 각 인물들의 불안한 감정과 들키지 않으려는 속내가 그대로 전해졌다.
특히 밀정의 정체가 드러나는 흔들리는 밤기차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에 속한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엄청난 결과로 동지들에게 추궁당해 번민하는 안중근(현빈)에게 예수의 형상도 겹쳐져 한 폭의 종교화 같은 느낌도 들었다.
강한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극적인 요소를 전달하는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들
고흐의 초기작인 <감자를 먹는 사람들>. 색감이 거의 없고 어두운 실내를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표현한 독특한 작품이다.
시종일관 쿨톤의 차가운 색감이지만 뜨거운 내용으로 인해 내겐 펄펄 끓는 얼음 같던 영화였다.
스크린 그대로 떼어가 포스터로 만들어 붙여놓고 싶던 장면도 한 둘이 아니었다.
<하얼빈>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많은 영화 장면들을 엽서나 포스터로 만들어 나눠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엔딩씬에서 흐르는 안중근의 독백은 요즘 시국과 딱 들어맞아 가슴 속 소용돌이를 만든다.
배경과 미장센도 아름답지만 이 장면 때문에라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한다.
"어둠은 짙어 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민호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는데 이 영화를 기획할 때만 해도 2024년 12월의 요동치는 정국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공교롭게 영화가 계엄과 탄핵 정국에 관객들과 만나게 된 게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와 감독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천운으로 다가왔다.
계엄 선포 이후 매주 이어지는 집회에서 봤던 수 천, 수 만 개의 형형색색 응원봉 불빛이 떠올랐다.
100년도 훨씬 전에 죽은 자가 영화로 환생하여 21세기의 산자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절감했다.
2025년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딛고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희망하며 극장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