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 That Jun 24. 2018

우리는 오늘도 희망을 본다

엄밀한 가능성의 존재는 나를 웃게 해

2패. 오늘도 졌다. 대한민국은 스웨덴과 멕시코에게 졌고, 2연패로 짐을 쌀 채비를 했다. 손흥민의 원더골은 무의미 했고, 결국 우리는 패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한국이 16강을 갈 경우의 수는 단 하나였다. 독일이 스웨덴을 잡고, 3차전에서 한국이 독일을 꺾으며 스웨덴 또한 미끄러지길 바라는 것. 그렇다면 골득실 싸움으로 갈 일이었다. 실낱, 아니 그보다도 작은 바늘구멍이었다.


크로스의 골은 독일도 살렸지만 한국도 살렸다 <출처 연합뉴스>

바깥에서 응원전을 마친 나는 국가대표의 미래를 운운하며 친구와 뒤풀이를 가졌다. 한국은 끝났어, 이제 4년 뒤를 기약해야지. 건설적인 토론이었지만 내심 실망으로 가득했던 뒤풀이였다. 영 우울하고 멜랑꼴리 한 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두 경기 다 이길 수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까 오던 잠도 순식간에 달아났다.


한국은 독일을 이길 수 없다. 설령 이긴다고 해도 다른 나라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참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1퍼센트 남짓 될까? 그토록 우러러 보던 독일을 1승 제물로 본다는 게 우스웠고, 최강팀을 꺾은 뒤에도 다른 나라 결과에 안달복달 해야 한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독일이 스웨덴을 꺾어도 우린 못 간다. 나와 친구는 토론의 끝자락엔 결국 같은 뜻을 공유했다.


독일이 1:0으로 이기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옵니다, 3사 해설자는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걱정은 독일이 아닌 스웨덴에 쏠린 터였다. 두점 차로 지면 어쩌지, 세점 차로 지면 어쩌지. 막상 우리 중 누구도 독일이 못 이긴다는 가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취골은 스웨덴의 몫이었다.


가능성. 0이 아닌 확률이라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가능성에서 희망을 찾고, 때로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웃기도 한다. '행복회로'의 기본은 확률 속 희망, 즉 가능성이었다. 모두가 대표팀 욕을 하면서도, 그렇게 축구협회 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스웨덴이 선취골을 넣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 했다. 3사 해설자는 90분간 명예 독일인이 되었으며, 결정적 순간에는 애국의 정신으로 있는 힘껏 샤우팅을 했다.


우리는 한국의 16강을 바라보고 독일을 응원했을까. 엄밀히 말하면 그건 아니다. 우리 모두 힘든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 사실상 0에 수렴하는 확률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희망'을 안고 마지막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명예 독일인으로 만들었다. 독일이 이기면 우리는 3일간 더 행복할 수 있었다. 그간 세웠던 수많은 16강 시나리오를, 전량 폐기하지 않고 조금이나마 보관할 수 있었다.


마치 로또와 같았다. 안 될 걸 알지만 혹시 몰라 긁어놓는 기분. 일주일 간 당첨되는 단꿈에 젖으며, 번호추첨을 기다리는 기대감에 하루하루를 기다리는 기분. 우리의 모습 또한 그랬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싶었고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독일의 동점골에 주먹을 불끈 쥐었으며, 후반 45분까지 계속되는 공방전에 머리를 뜯고 숨을 죽였다.


그리고 후반 50분, 토니 크로스의 결승골이 터지자 대한민국의 16강이 확정된 양 기뻐했다. 우리는 '가능성'을 살렸다. 어찌 보면 16강보다도 기쁜, 단꿈을 살리는 토니 크로스의 한방이었다. 멕시코전 패배의 여파는 단숨에 날아갔으며, 마치 대한민국이 1승을 챙긴 것처럼 포효하고 끌어 안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다른 나라 경기에 이렇게 몰입하고 본 건 일본 상대편 이후로 처음이었다.


우리는 아직 현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1퍼센트 남짓 되는 가능성에 수요일을 기댈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친구는 즉시 골득실을 계산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손흥민의 마지막 만회골이 참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가능성'은 지나간 일에 의미를 찾고 긍정 또한 심어준다. 절망으로 가득할 뻔 했던 마지막 독일전. 덕분에 나는 수요일에도 땀을 쥐고 축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1퍼센트의 가능성, 때로는 그게 100퍼센트보다 더 기쁠 수도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전을 보고 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