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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Jul 28. 2018

기사 제목에 문제 내지 말아주세요

이제 따옴표만 봐도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초등학교 다닐 땐 매일 종이신문을 펼치는 게 일상이었다. 일단 20쪽 중후반대에 위치한 스포츠면부터 살핀 뒤, 앞뒤에 있는 문화면과 TV편성표를 확인했다. 헤드라인은 언제나 간결하고 명확했다.


"마해영 극적 끝내기... 삼성, LG 꺾고 16년 만에 'V2'"

"TG, 동양에 완승... 챔피언까지 '1승'"


기사 제목에 붙어있는 작은 따옴표를 보자. V2와 1승, 핵심을 간추리는 단어였다. 작은 따옴표는 언제나 그렇게 쓰여왔다. 시간 없는 독자들을 위한 최후의 배려. 아버지는 기사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하시곤 했다.


"브댓아, 봐라. 큰 제목은 기사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핵심요약이야. 사람들 다들 아침에 출근한다고 신문 못 읽는 경우 많잖아, 그치? 그 밑에 소제목은 짬이 좀 더 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고.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충분할 때 밑에 내용을 전부 읽는 거지. 제목은 독자를 위한 배려야."


제목은 간결해야 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의에 회의를 느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초딩 때 수시로 들락거리던 스포츠신문 홈페이지 또한 그랬다. 말이 신문이지 사실상 가십지와 다를 바 없는 그 곳에서도 따옴표는 적절히 활용 되었다. 이를 테면 "첼시 - 리버풀, 챔피언스리그 티켓 두고 '빅뱅'!" 이런 식으로. 별 쓰잘데기 없는데 느낌표를 붙이는 등, 황색언론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기본은 지켰다. 클릭 한 번 할 때마다 나오던 성인광고로 구시렁거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양반이었다.


참으로 배부른 불평이었다.

다음 뉴스탭에서 '이것'을 검색한 결과

지금은 어떨까? 당장 다음 뉴스탭에서 '이것'을 검색한 결과다. 여섯 개의 기사 중 '이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된 건 두 개 밖에 없다. 그나마 하나는 사진 뉴스라고 하면 세 개. 절반에 가까운 인터넷 뉴스가, 이제는 '시간이 흘러 넘치는 나그네'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안희정이 말한 '이것'이 뭔데?

'미스터 션샤인' 속 역사 왜곡이 뭐 때문인데?

BTS가 뭐만 보면 힘이 나는데?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할 망정 증폭 시키고 있다. 기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다 (물론 편집자가 제목을 정한다면 편집자가 이야기꾼이다). 안희정의 '이것'은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빼앗은 게 아니라는 변론'이었고, 미스터 션샤인 속 역사 왜곡의 이유인 '이것'은 '로맨스'였으며, BTS가 보기만 하면 힘이 난다는 '이것'은 '아미밤'이었다. BTS 응원봉인 그 '아미밤 (Army Bomb)' 말이다.


아이돌이 자기 응원봉 보고 힘 난다는 것까지 기사로 쓴 현실이 안쓰럽다만 하루이틀 일도 아니니 넘기도록 하자. 안희정과 미스터 션샤인을 다룬 두 기사는 각자의 분야에서 의미가 있었다. 안희정 기사는 재판 당시의 상황과 양측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했으며, 미스터 션샤인 기사는 역사 왜곡의 문제점을 짚어 주면서 기자의 솔직한 의견을 밝히는 칼럼이었다. 개인적으로 내용이 제목의 '어그로'에 가려 빛을 보지 못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이것'이 궁금하지, 기사 전체를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희정이 재판정에서 "이것"이라고 말한 것과 기사제목을 "이것"으로 뽑는 건 별개의 문제다. 법정에서의 도치법은, 판사와 방청객의 궁금증을 유발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더욱 강력하게 전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기사는 아니다. 왜 제목으로 궁금증을 유발하는가. 기사는 이야기가 아니다. 팩트를 전달하는 소식통이다.


조회수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관심을 끌고 싶을 게다. 기사의 질과 상관없이 조회수만 많으면 본전은 치는 거니까. 근데 이런 제목이 기사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닷컴'이란 이름을 단 정론지의 인터넷 기사들에서도 따옴표로 사람 낚는 모습을 이따금씩 봐왔다. 독자는 시간이 없다. 쓰잘데기 없는 궁금증을 위해 관심없는 기사를 클릭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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