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 That Sep 10. 2017

추억팔이가 나빠?

추억은 값을 매길 수 없기에 위대하다

'추억팔이'를 향한 세간의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물론 '팔이'라는 단어 자체가 포함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사람들은 추억팔이를 괜히 '좋은 시절 다 간 사람들이 다시 관심 얻어 보려고 일으키는 행동'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추억팔이는 나쁘지 않다. 대상을 불문하고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를 이용하는 건 당연지사니까.


과거가 아직까지 기억 되고 회자 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그리움'이다.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절대적 존재는 그 시절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관객은 그들을 보며 각자의 추억을 회상한다. 누군가에게는 학창시절이, 누군가에게는 군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청춘이 다시 눈앞에 아른거린다. 과거는 다시 되돌릴 수 없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내 손으로 일구어 나갈 현재와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기에, 그 자체로 미화되어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의 존재가 지친 이에게 치료약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현실에 지친 세대에게 잠시나마 향수와 환상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문제일까. 나는 젝스키스의 재결합 공연을 통해 추억의 가치를 체감했다. 상술했듯 추억팔이는 결코 나쁘지 않다. 도리어 감동과 기쁨을 안겨주는 지친 일상의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젝스키스는 단 3년의 활동으로 16년간 기억에 남을 수 있었다.

젝스키스는 2016년 토토가로 컴백해 수많은 팬을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한 몇 안 되는 90년대생 중 하나였는데, 이는 내가 젝키 해체 이후 팬이 된 드문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4년간 몇 번이나 젝키 재결합이 어쩌고 하는 설레발을 들었던 나는, 마침내 공식 재결합 발표가 나자 미친듯 발광하며 토토가 현장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젝스키스의 동선을 확인하며 방송국도 가고, 결국엔 월드컵경기장으로 향하는 바람에 오전부터 휴대폰 배터리를 죽였다. 이 날의 만남이 내게는 처음이었지만, 대다수의 다른 이들에게는 간만이었다. 그들은 예전에 하던 방식 그대로 젝키를 맞을 준비를 했다. 예전만큼 활기가 없을 나이임에 분명한데도, 그들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우비를 입고 풍선을 들며 응원구호를 연습했다. 내 옆자리 분은 이 날을 위해 다른 핑계를 대고 연가를 썼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나든 그들에게 젝키란 존재는 일상 이상이었다. 존재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관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어떤 가수든 '추억팔이'라고 비난 당할 자격은 없지 않을까. 추억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다. 토토가 현장의 팬들에겐 그 추억을 완성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젝키였고, 그 때문에 거짓말이 들통날 위험을 감수하며 자리에 나왔다. 그들이 간직한 그리움은, 첫만남이었던 내가 가진 설렘보다 훨씬 크고 깊은 종류의 것이었다. 16년이란 세월이 그리움에 가중치를 더한 것이다. 오랜 세월 묵혀진 추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었다. 외려 그 부피가 더욱 컸다.


추억을 안겨준 가수와 팬 사이의 가장 큰 장점은, 가만히 있어도 감회에 잠길 수 있다는 점이다. 젝키의 토토가가 그랬다. 게릴라콘서트 형식을 딴 멤버들이 안대를 차며 인터뷰하는 순간부터 팬들은 과거를 생각하며 웃음 지었다. 추억은 현재의 보정효과를 내기도 한다. 관객들은 멤버들이 변하면 변한대로, 변하지 않으면 또 그 상태 그대로라고 좋아했다. 요컨대, 옛날의 모든 기억은 현재를 더욱 예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추억은 상상 이상의 효과를 가진다.

'Com' Back'을 필두로 토토가 콘서트를 시작한 젝키는 이후에도 히트곡 퍼레이드를 펼쳤다. '폼생폼사', '커플'이 흘러나올 때 팬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구호를 외치고 풍선을 흔들었다. 과거에 필적하는 정도였을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 기력이 쇠한 현재와 활발하던 과거의 차이를 메운 것 또한 추억이었다. 젝키가 파는 추억은 갈수록 위대해졌고 팬들은 모습을 드러내는 추억에 기꺼이 응답했다. 진정한 '추억팔이'의 가치였다.


그들의 1집 수록곡 중 '기억해 줄래'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세기말 젝키 콘서트에서 언제나 엔딩을 장식하던 곡이었다.

 


너를 나의 전부로 만들지는 말라고 했던 네 말
아마도 오늘을 준비했기에 눈물을 보인 거야

나 안녕 이라는 말로 너를 떠나겠지마는
기억해 줄 수 있니 우리 서로 사랑한 것을


어린애다운 순수함이 묻어나는 멜로디, 또한 엔딩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노랫말. 이 노래는 덕분에 해체 전 마지막 공연에서도 어김없이 엔딩이었다. 그렇기에 팬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노래의 전주가 흐르고, 고지용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좌석에서 열심히 노란 풍선을 흔들던 팬들이 일제히 울먹이는 광경을 보았다.


'끝'을 의미했던 노래의 기억이 그 때를 기점으로 재정의 된 것이다. '기억해 줄래'는 그 순간부터 희망찬 미래를 알리는 서곡, 혹은 종장의 비참함을 지워준 지우개가 되어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건 없을 지도 모른다고. 그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가 있는 한, 아름다움이라는 건 오직 그들의 존재만이 만들 수 있는 걸 지도 모른다고.

 

추억팔이가 욕을 먹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게 지금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20년 전의 고만고만한 가수가 느닷없이 컴백해 옛날의 고만고만한 히트곡을 부른다 해도, 그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위대한 일이다. 사람들은 안겨준 추억만큼 그를 되돌려 받을 자격이 있다. 젝스키스가 그 예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누구를 막론하고 대중 앞에 다시 서는 걸 환영한다. 어느 누군가는 분명 그 소식에 감복해 버선발로 뛰어 나갈 테니까. 추억팔이 공연에는 현재에선 찾아볼 수 없는 감성의 무게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